3월의 향기
3월의 향기
  • 심익수 <시인>
  • 승인 2011.03.22 22: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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生의 한가운데
심익수 <시인>

우암산 기슭의 소로를 따라 걷다 보니 어느새 땅이 많이 녹아 있다. 얼었던 강물도 풀린다는 우수도 지나고 머지않아 개구리가 입을 뗀다는 경칩이니 벌써 봄은 우리 주위에 다가와 있다. 들판 여기저기 푸릇푸릇 새싹이 돋아나고 바람엔 훈기가 실려 있다.

내가 느끼기에는 시간이 정지되어 있는 듯 그날이 그날인 것 같았는데 세월은 오차 없이 계절을 순환시키고 있었다.

우암산에는 여러 갈래의 등산로가 있지만 어떤 등산로를 택하든 길게 잡아 한두 시간 내외 코스다. 우암산 등산은 그냥 산책하는 기분으로 다녀오기에 딱 좋은 곳이다.

봄을 시샘하는 눈발이 흩날린다. 며칠 따뜻했던 날씨 탓에 이제는 추위가 아주 가버렸을 거라고 성급하게 고개를 내밀던 새싹들이 때 아닌 눈발에 한껏 놀라 몸을 움츠린다.

사계절 중 겨울은 유독 우리 곁에 길게 머무는 느낌이 든다. 좋은 것들은 더디게 왔다가 빨리 사라지고 괴롭고 불필요한 것들은 빨리 왔다가 오래 머문다는 생각이 드는 것처럼 사는 게 버거워 한여름에도 마음이 추운 사람들에게는 겨울은 결코 반갑지 않은 계절일 것이다.

누가 쌀쌀맞고 차가운 겨울이 아니랄까 봐서 겨울은 떠나가는 마지막 순간까지도 제 성깔을 버리지 못한 채 끝내 심술을 부린다. 떠나는 것들은 왜 항상 아픈 상처를 남기고 떠나야 하는지 도통 그 속내를 모르겠다. 자연도 그렇고 사람도 그렇다. 제 아무리 눈발이 흩날리고 귓불을 스치는 바람에 얼음이 박혀 있어도 3월은 축복처럼 지상으로 봄을 산란하고 있다. 아기들의 천진한 눈망울처럼 신비하고 무궁무진한 꿈과 희망을 안은 봄이 태어나고 있다. 이제 더 이상 어깨를 웅크리고 종종걸음 칠 일은 없을 거라는 기대를 가져본다.

봄 여름 가을 겨울이 오고 가는 것처럼 인생사 또한 만남과 헤어짐으로 가는 것인데 어찌 매일 가슴 아픈 이별만 있겠는가. 겨울이 떠나면 봄이 찾아오듯 우리의 가슴에 아픈 상처를 남기고 떠난 사람이 있으면 누군가는 우리에게 꽃보다 더 환한 웃음을 웃게 해 줄 이가 있을 것이다.

지금은 입 다물고 있어야 할 시간

귀 막고 눈 가리고 묵묵히 참선에 든다

겨울바람이 아무리 불러도 돌아보지 말 것

모질게 따귀를 때려도 그 자리 벗어나지 말자

습기는 저 밑바닥에 깊숙이 감추어 두고

지금은 심장의 고동 소리도 잠재울 때

그동안 그를 기다린 날들이 겨울이라면

이제는 그를 만나 봄이고 싶다.

서로 방법을 몰라 빗겨만 가다가

아니 서로 억지로 다른 곳을 보다가

남풍과 북풍이 소리 없이 섞이는 날

너의 칼날은 무뎌지고 나의 묵언은 끝이 난다

누그러진 바람이 나를 흔들고

지상으로 전하는 햇볕의 화해의 권고에

따뜻한 기운 스멀스멀 전해져 오면

이제는 그를 용서해도 되겠다.

봄을 기다리는 마음을 시로 적어 보았다. 머지않아 모진 바람도 잦아들 것이다. 이미 봄은 시작된 지 오래임을 알기에 바람이 제 아무리 한겨울 흉내를 내며 성깔을 부려도 때가 되면 스스로 물러날 바람의 존재를 알기에 떠나는 계절의 마지막 앙탈을 느긋하게 받아주는 여유를 보인다.

겨울의 끝이 보인다. 긴 겨울이 가기에 얼른 마중하고 싶은 봄이지만 눈발에 퍼렇게 멍든 봄은 선뜻 안기지 않고 새침데기처럼 모른 체한다. 어느새 3월의 향기는 내 마음에 덕지덕지 쌓인 떠난 사람에 대한 미련의 먼지들을 털어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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