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 계율의 올바른 실천
불교 계율의 올바른 실천
  • 덕일 <풍주선원 주지>
  • 승인 2011.03.14 2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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낮은 자의 목소리
▲ 덕일 <풍주선원 주지>
덕일 <풍주선원 주지>

부처님은 '열반경'에서 계율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고귀한 옥은 땅속에서 나고, 청정한 계(戒)는 선행에서 나는 것이다. 지혜로운 사람이라면 청정한 계를 실천하여 생사의 벌판을 뛰어넘을 것이다."

또 '마하승기율'에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계는 위대한 뱃사공으로서, 능히 생사의 바다를 건네준다. 계는 시원한 연못과 같아서 온갖 번뇌를 씻어낸다. 계는 두려움을 없애는 방편이니 그릇된 마음에서 생기는 재앙을 제거한다. 계는 최고의 반려이니, 험악한 길을 무사히 통과하게 한다. 그러므로 계는 감로의 문이고 성자들의 처소이다."

계는, 지키면 지킬수록 마음이 편안하고 생활이 즐거워집니다. 그러므로 계는 마음의 보배이며 생활의 지혜로서, 어려움을 없애주고 재앙을 제거해 주며 두려움을 없애 주는 감로의 문이자 성인들이 사는 곳이라고 했던 것입니다.

불교에서 말하는 계율의 궁극적 목적은 하지 말라는 상투적 의미가 아니라 착한 일을 하고, 좋은 업을 짓고, 올바른 행동을 하여 큰 원을 성취하라는 적극적 의미가 내포돼 있는 것입니다. 남을 해치려는 생각보다 가엾게 여기고 이롭게 해 주려는 마음이 앞서고, 남의 재산을 빼앗으려는 생각보다 가난한 이웃을 도우려는 생각이 앞서며, 윤리를 무너뜨리고 부도덕한 행동을 하기 전에 청정하고 밝은 생각이 앞서고, 상대방을 속이고 거짓말하고 이간질하는 말보다 칭찬하고 아껴주고 올바르게 일러주고 화합시켜 주는 말을 먼저하며, 술에 취해 자신을 잃고 망령된 행동을 하기 전에 지혜롭고 유쾌한 마음으로 부끄러움 없는 생활을 하게 될 때 계율을 올바르게 실천하는 것임은 물론이고 우리의 삶이 보다 성숙되어 갈 것입니다.

우리는 계율의 참다운 의미를 되새겨 나와 남의 삶이 함께 원만히 성숙될 수 있도록 정신의 삶을 적극적으로 가꿔 가는 그런 사람이 되어가고 있는 것이 아닐까요

우리에게 정말 소중한 것은 즐거움입니다. 우리가 즐거울 때면 걱정도 근심도 외로움도 다 잊을 수 있습니다. 또한 미움도 시기도 질투도 다 사라집니다. 그리고 모든 것이 아름답고 사랑스럽고 귀엽고 정답게 보입니다. 즐거움은 바로 행복입니다. 생의 보람은 바로 이런 데 있는 것이고, 인생은 행복을 위해서 사는 것입니다. 즐거운 생활, 행복한 인생, 보람 있는 삶, 그 얼마나 아름다운 삶인가요.

산에 한 번 올라가 보세요. 만약 갈 시간이 없다면 봄빛 어린 산의 경치를 한 번 상상이라도 해 보세요. 울긋불긋 자연의 색동옷을 입은 산, 잠에서 깨어나 파릇파릇 돋아나는 새싹들은 우리에게 생명의 약동성과 희망을 불어넣어 주기에 충분합니다. 이렇듯 자연은 우리에게 무한한 희망과 용기를 줍니다. 우리도 다른 사람에게 희망과 용기와 행복을 나누어 줄 수 있는 지혜를 자연으로부터 본받아야겠습니다.

불교에서는 이런 자연과 같은 힘을 가지고 중생을 보살피는 사람을 보살이라 합니다. 부처께서는 '금강경'에서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보살은 무엇에 집착해 보시해서는 안 된다. 형상에 집착함이 없이 보시해야 하며, 소리나 냄새나 맛이나 촉감이나 생각에 집착하는 일 없이 보시해야 한다. 왜냐하면 보살이 어디에도 집착함이 없이 보시할 때 그 공덕은 헤아릴 수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자연은 우리들에게 한없는 아름다움과 갖가지 혜택을 주어 즐겁게 행복하게 해 주지만 스스로 뽐내거나 자랑하지도 않고 누구를 미워하거나 누구를 특별히 귀여워하지 않고 공정합니다. 그러므로 자연의 공덕은 가히 헤아릴 수 없는 것이죠. 이처럼 우리 모두 자연의 마음, 부처님과 보살의 마음으로 서로 베푸는 생활을 한다면 우리의 삶은 보다 밝아질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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