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심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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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충청타임즈
  • 승인 2006.05.25 22: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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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네르바의 그물
조금은 때 지난 얘기가 될지도 모르겠지만, 지난 11일 독일 월드컵 본선에 출전할 23명의 최종 엔트리(entry)를 발표한 아드보카트 감독의 선수 선택 기준을 돌아보고자 한다.

유럽축구 경험, 월드컵을 치러본 경험과 기본 능력을 중시한다는 ‘능력(ability)’, 머리 좋고 축구를 즐기는 젊은 선수들에게 창조적인 축구를 기대한다는 ‘두뇌(brain)’, 그리고 포백(four back)과 더블 수비형 미드필더는 자기희생이 필수조건이라는 ‘협력(cooperation)’의 세 가지 선택기준이었다.

그 어느 것 하나에도 소홀함을 보일 수 없는 그야말로 ‘ABC’ 전략이라고 생각한다.

그 중에서도 두뇌의 기준에 대해 다시 말해 보자. 단순히 머리가 좋아야 운동도 잘한다는 식의 논리로는 뭔가 서운한 구석이 있을 수도 있다.

모든 선수들이 박주영처럼 중학교 시절 IQ 검사에서 150이 나온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이 부분에서 지식(knowledge)의 두뇌가 아닌 지혜(wisdom)의 두뇌를 강조하고 싶은 마음이 오늘따라 굴뚝같다.

영화 ‘인디애나 존스’ 시리즈 중의 한 장면을 잊지 못한다.

감옥을 탈출하는데 가까스로 성공한 고고학자 부자(父子)는 적의 비행기에 추격당하는 또 다른 위기에 처하고 만다.

젊고 유능한 아들에게 늙고 힘 빠졌으며, 고집스럽기까지 한 아버지는 언제나 갈 길을 막는 골치 아픈 존재였다.

둘이서 맨몸으로 적의 비행기를 따돌린다는 것은 가당치도 않은 일이다.

바닷가 모래톱은 도망치는 다리를 무겁게만 만들뿐이고, 아버지는 여전히 느리고 짜증스럽기만 하다.

아들은 덤벼드는 전투기를 향해 권총을 발사하다가 총알이 떨어지자 이내 모든 걸 포기라도 하는 듯 전투기 쪽으로 권총을 던져버린다.

이를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던 아버지는 들고 있던 낡은 가죽가방에서 우산을 꺼내 펼쳐들더니 갑자기 해변의 갈매기 떼를 향해 달리기 시작했다.

깜짝 놀란 갈매기들은 하늘로 날아오르다가 비행기의 프로펠러와 충돌하여 비행기를 추락시킨다.

입을 딱 벌린 채 할 말을 잊고 있는 아들에게 아버지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중세시대 교황 중에 이런 시를 지은 이가 있었단다.

공중에 나는 새들과 땅의 나무들로 나의 무기를 삼으리라.”제법 오래된 기억이라 그 영화장면의 내용을 대충 정리한 아쉬움도 없진 않지만, 지식과 지혜의 차이를 말하고 싶을 때면 내가 빼놓지 않고 들게 되는 대표적인 예화(例話)이기에 소개했다.

지식만으로는 부족하다.

더구나 극단적인 지식, 시대의 흐름을 읽지 못하는 지식은 피곤하다.

그러한 지식은 아무리 목소리 높여 외쳐도 편협적인 시각의 추종자들만 낳을 뿐이지, 넘쳐나는 지식 시장(市場)에 대한 실학적(實學的)이면서도 생명력 있고 의미심장한 토론을 가로막고 만다.

지식만을 기준으로 삼는 허영으로 가득 찬 자존심은 버리고, 아주 겸손하게 몸을 낮추어 미네르바(Minerva)에게 악수를 청해 보자.‘진리는 어디에 있는가’/책속에 있는가?/도서관, 그 많은 책들 속에 있는가?…. 젊음 그 속에 있는가?/진리는 어디에 있는가?//미네르바의 박쥐는/왜 어둠에 나는가를/미네르바의 부엉이는/왜 어둠에 눈을 뜨는가를//진리여 말하라/지금 우리는 한없이 젊다.

/진리여, 말하라. (김춘수, ‘미네르바여, 지혜의 여신이여’ 중에서)미네르바가 고기를 잡으려고 그물을 던진다면, 그는 고기를 차별하지 않을 것이다.

다시 말해서 덩치 큰 고기만을 잡는다는 것도 아니고, 아니면 잔챙이까지도 싹쓸이하고 만다는 것도 아니다.

다만 필요한 고기만을 선별해서 잡을 것이란 생각이다.

그게 바로 지혜의 유연성이요, 포용력이기 때문이다.

한 달 전쯤 무용계의 아카데미상이라 불리는 ‘제14회 브누아 드라당스’에서 최고 여성 무용수 상을 받은 국립발레단의 수석무용수(principal dancer) 김주원은 어느 인터뷰에서 후회 없이 매 순간에 최선을 다해야 한다는 생각으로 살아왔다는 말로 지혜의 향기를 물씬 풍겼다.

그는 자신의 뛰어난 발레테크닉과 돋보이는 신체구조와 풍부한 무대경험에 승부를 걸었다고 말하지 않았다.

‘청천 하늘엔 별도 많고, 우리네 살림살이 말도 많다’는 아리랑 가사도 있지 않은가. 누구든 지혜의 등불을 꺼뜨려서는 안 될 일이다.

아, 빛을 바라는 어두움이여!/청주기계공고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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