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망 만큼의 희망
절망 만큼의 희망
  • 충청타임즈
  • 승인 2006.05.24 22: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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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7일 하이닉스, 매그나칩 하청노동자 2명이 새벽에 15만볼트가 흐르는 고압선 송전탑에 올라갔다.

그리고 그날, 송전탑 밑에서 급하게 집회가 진행되었고, 하이닉스 하청노조는 정말로 급하게 소식지를 냈다.

그 소식지에는 어느 하청노동자가 쓴 글이 있는데 참으로 사람을 눈물나게 한다.

해고 17개월 동안 모든 벌이가 중단돼 너무나 힘든 데, 속모르는 아들이 아빠에게 졸라댄다.

“아빠, 회사에 다시 나가면 꼭 S-보드 사주세요.” 아이도 아빠의 해고상황을 아는지 어느새 “S-보드사주세요”가 아니라, “회사에 다시 나가면 S-보드 사주세요”다.

아이 아빠는 이런 아들을 두고, 무너진 억장을 부여잡는다.

그리고 다시, 아이 아빠는 1500만원 성과급을 받는 하이닉스 정규직은 고사하고라도 다시 일터로 돌아간다고 입술을 꽉 깨문다.

송전탑 위로 부슬부슬 비가 눈물처럼 내리던날, 걱정이 돼 찾아온 동료 노동자들에게 송전탑위의 노동자는 연방 걱정하지 말라고 거꾸로 다독거린다.

“우리는 땅을 밟고 살기 위해 올라왔으니, 걱정하지 마세요!”. 아! 15만 볼트 송전탑위에 올라간 노동자는 다시 땅을 밟고 살기위해 목숨을 담보로 내거는 구나.이렇게 하이닉스, 매그나칩 하청노동자들은 절망속에서, 아니 가장 극한 절망속에서 눈물로 희망을 써간다.

누구나 하청노동자가 옳다고 이야기하고, 거대기업인 이 하이닉스가 너무한다고 비난하지만, 아직 우리사회의 공식적인 법과 제도의 영역 바깥이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눈감고 있는 ‘발기부전’의 한국사회에 대해서 하청노동자들은 피눈물로 희망을 써가는 것이다.

오늘, 하이닉스 매그나칩 하청노동자들은 예전같으면 감히 그림자도 밟지 못했을 하이닉스의 대표이사실에 들어가 농성을 하고 있다.

이 농성의 종말은 개끌려 나오듯 경찰에 이끌려 나올 확률이 현재로서는 더욱 커보인다.

그러나, 하청노동자들은 아이에게 ‘S-보드’를 사주기 위해서라도, 땅을 밟고 살기 위해서라도 또 다른 희망찾기를 할것이다.

나는 안다.

고작 아이에게 ‘S-보드’를 사주고 싶은 아빠의 투쟁이 역사를 바꾼다는 사실을 말이다.

법과 제도의 경계선 바깥에 있는 비정규노동자들의 고통이 경계선 안쪽으로 진입하고, 그래서 꿈쩍도 않을 것 같은 발기부전의 한국사회가 이윤의 논리가 아닌 포용과 평등으로 일어나는데 하청노동자들의 작은 희망에서부터 출발할 것이다.

그러나, 어쨌든 하청노동자들의 희망은 소박하다.

이들의 소망은 여전히 정든 일터로 다시 돌아가는 것이고, 그래서 아이에게 S-보드를 사주는 것이다.

그리고 이런 이들 옆에서 눈시울이 뜨거워지는 동료 노동자들도 같이 소박하다.

어서 빨리 이 비극이 끝나기만을 바라는 소박한 동료의 마음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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