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심갈력
진심갈력
  • 강대헌 <충북인터넷고 교사>
  • 승인 2011.02.27 21: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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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임즈 포럼
강대헌 <충북인터넷고 교사>

아주 우발적인 상황이란 게 있죠.

라디오를 듣다가 일종의 생방송 사고라는 걸 경험했습니다. 프로그램 진행자가 청취자의 사연을 소개하던 중에 그만 목이 메어 멘트를 멈추더니, 곧바로 경쾌한 리듬의 아프리카 음악이 침묵을 대신했습니다. 한 곡으론 시간이 부족했든지, 다른 멜로디가 뒤를 따랐죠. 저는 꼼짝달싹하지 못한 채 라디오 앞을 떠나지 못했습니다. 10여분 정도를 적당한 긴장감으로 저를 꽁꽁 묶어 두었죠. 궁금했으니까요. 그런 경우엔 이러이러 해서 어땠다는 식의 해명이 따르게 마련이니까요.

"추억의 음악을 듣다가 저도 그만…죄송합니다." 진행자의 멘트는 간결했지만, 의례적인 틀을 벗어나지 않았습니다. 진행자 또한 청취자의 사연처럼 몹시 그리운 사람의 부재(不在)로 인해 순간적으로 슬픈 감정이 북받쳐 올랐던 것이리라 충분히 짐작이 되고도 남았죠. (그들에게 그리운 사람은 아름다운 추억을 남겨주고 돌아가신 아버지였습니다.) 예기치 않은 감정의 습격에 무력할 수밖에 없는 인간의 나약함보다는 '살아남은 자(the alive remains)'로서 감당해야만 할 몫에 대한 생각을 정연하게 가다듬고 싶군요.

여러 가지 이유로 많은 사람들이 우리들보다도 먼저 이 세상을 떠나고 있습니다. 질병과 사고의 이유로 그런 때가 대부분이긴 하지만, 다른 이유로 안타까움이 커질 때도 있죠. 지난번에 제가 썼던 글 '빵 굽는 타자기'의 시나리오 작가를 기억하시는지요 최고은 작가 말입니다. 물론 기억하실 것으로 믿습니다. (인간이 망각 없인 살 수 없다고 하지만, 쉬운 망각은 인간을 값싼 존재로 만들 수도 있음을 경계해야만 되겠죠.)

전도유망한 젊은 작가의 말도 안 되는 죽음 소식을 듣게 되었던 그때, '시가앓이'라는 신조어를 유행시켰던 김은숙 작가도 "옥탑방에서 새우깡 한 봉지로 삼일을 버텼다"는 배고픈 시절이 있었다는 얘기가 다시 부각되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예술가에 대한 부실하기 짝이 없는 사회적 안전망에 대해 성토를 하던 어느 시인은 자신의 직업을 '실업자(失業者)'로 고쳐 적고 나서야 보험에 가입할 수 있었다는 사례를 공개한 적도 있습니다. (보험회사에선 시인보다는 실업자를 더욱 높이 평가하며 대우해 주고 있군요. 배부른 시인은 이상한 사람인가 보죠?)

지난해 11월에 뇌출혈로 사망한 가수 이진원이 끄집어냈던 "도토리는 싫어요"라는 말도 쉽지 않은 논란거리였습니다. 그가 불렀던 노랫말엔 "지루한 옛사랑도/구역질나는 세상도/나의 노래도/나의 영혼도/나의 모든 게/다 절룩거리네"라는 쓰라린 고백이 감출 수 없는 송곳처럼 주머니 밖으로 삐져나와 있기도 했습니다. (현실에서의 자신을 대한민국 하위 70퍼센트의 인간으로 규정했지만, 노래하는 달빛요정으로 살다가 앞을 알 수 없는 인생이란 야구시합에서 끝내기 만루 홈런을 치고 싶다는 욕망을 감추지 않았던 그도 이젠 가고 없군요. 그의 발걸음이 편안하길 바랍니다. 그곳에선 더 이상 절룩거릴 일이 없겠지만 말입니다.)

살아남은 우리들의 몫은 정말 무엇일까요? 다시 용기를 내어 진심갈력(盡心竭力)해야겠죠. 마음과 힘을 있는 대로 다할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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