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스민 혁명과 리비아 사태
재스민 혁명과 리비아 사태
  • 남경훈 기자
  • 승인 2011.02.27 21: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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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의 주장
남경훈 편집부국장

시민혁명의 꽃 바람이 사막의 모래바람을 일으키고 있다.

튀니지에서 시작된 재스민 향내는 리비아에서 피비린내로 진동하면서 고비를 맞고 있다.

21세기 이후 세계 곳곳에서 일어난 민주화 혁명은 꽃 이름에 자주 비유된다. 2003년 옛 소련의 땅에서 발발한 그루지야의 '장미혁명'이 대표적이다. 시민들이 장미를 들고 시위를 벌였다. 2004년 우크라이나의 '오렌지혁명', 2005년 키르기스스탄의 '튤립혁명'으로 이어진다.

지난해 튀니지에 '재스민혁명'이 일어났다. 재스민은 튀니지의 국화라서 붙여진 이름인 듯하다. 물푸레나뭇과(科)로 '봄을 맞이하는 꽃'이란 뜻의 영춘화(迎春花)다. 꽃 이름대로 얼어붙은 독재의 땅에 봄소식을 전하고 있는 것이다.

재스민 향기는 이집트로 번져 무바라크를 퇴진시키고, 리비아로 확산됐다.

무아마르 카다피의 42년 철권통치를 종식시키려는 시위대가 리비아 제2 도시 벵가지를 비롯해 8~9개 도시를 수중에 넣고 여세를 몰아 수도 트리폴리까지 진출해 있다. 정부군은 탱크, 헬기, 전투기까지 동원해 무차별 총격을 퍼붓는 대량 학살극을 자행함으로써 국제사회의 비난을 자초하고 있다.

카다피는 군을 장악하고 "나는 물러서지 않을 것이며 서방의 압력에 맞서 끝까지 싸우다가 순교할 것"이라고 광기를 보여 미증유의 유혈 참극을 빚지 않을까 염려된다. 이런 무차별적인 대응에도 국제사회가 이를 섣불리 판단하기가 어렵다는 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북아프리카와 중동의 민주화 시위가 튀니지를 거쳐 이집트의 독재정권을 무너뜨릴 때만 해도 '아직은 강 건너 불'로 여겨졌다. 그러나 리비아는 이집트나 튀니지와는 달랐다.

리비아의 모래폭풍은 한순간에 세계경제를 휘청거리게 했다. 이집트 사태는 오래 끌지 않았다. 짧은 기간에 진정되는 모습을 보이고 있지만 리비아 사태는 장기화 조짐을 나타내고 있다. 카다피 정권이 물러난다 해도 민주화된다는 보장이 없고 부족 간의 싸움이 장기 내전으로 번질 가능성이 높다고 전문가들은 진단한다.

이는 리비아 정부가 이집트 무바라크 정권과 달리 정보를 철저히 차단해 소셜네트워크서비스가 큰 위력을 발휘하지 못했다는 데 원인이 있다. 더욱이 외부 언론은 한 곳도 발을 내딛지 못했다. 또 친미 성향의 무바라크 정권과 달리 카다피 정권은 2006년까지 미국 등 서방과 20년 넘도록 대립하면서 내부적으로 통치권력을 강화해 온 점도 차이로 꼽힌다.

이 같은 리비아 사태가 한국에 미치는 영향이 만만치 않아 걱정이다. 국제 유가는 심리적 마지노선인 배럴당 100달러를 돌파했다. 30개월 만에 최고기록을 갱신했다. 정부가 올해 국제원유가를 평균 85달러를 전제로 5% 성장률, 3% 물가안정 목표를 제시했는데 유가가 이미 100달러를 넘어섰으니 경제 운용에 치명적인 차질을 빚지 않을 수 없게 됐다. 물론 주식시장도 혼란스러웠다.

이와 함께 리비아는 우리의 최대 건설 시장이기도 하다. 국내 건설사들의 수주규모가 53건 108억달러에 이르는 것으로 집계되고 있다. 한국인 근로자도 2만명 이상 진출한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내전이 장기화되면 공사대금을 받지 못하는 것은 물론이려니와 최대 건설시장을 잃을 수도 있다.

더욱이 충북 대표적 건설사인 원건설이 리비아를 중심으로 의욕적인 사업을 전개해 왔다는 점에서 지역경제 차원에서도 무관치 않다.

여기에 모래바람을 일으킨 재스민 혁명이 중국에 상당한 영향을 미치고 있고, 북한에도 이상조짐이 있다는 소식까지 들린다. 재스민 향이 올봄 어디까지 퍼질지 궁금해진다. 리비아 문제는 이래저래 우리와 뗄 수 없는 일이 돼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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