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92주년 삼일절에 즈음해
제92주년 삼일절에 즈음해
  • 충청타임즈
  • 승인 2011.02.25 00: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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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린광장
3월1일이 무슨 날인지 대한민국의 국민이라면 누구나 다 알고 있듯이 92년 전 1919년 3월1일 세계만방에 대한 독립선언을 한 매우 뜻 깊은 날이다.

3·1운동이 왜 발생하였는지 우리는 분명히 알고 그 의미를 계승 발전시켜야 할 것이다. 약육강식, 우승열패, 서세동점의 시대상에 즈음하여 대한제국의 위정자들은 당시의 현실을 제대로 직시하고 대책을 세워 국권을 보존하여야 했음에도, 내부적으로 부정부패, 사리사욕, 당리당략, 무사안일, 사대주의에 묻혀 망국의 길을 가고 있었으며, 외부적으로는 열강들의 압력과 분열책을 제대로 파악 못 해 결국은 일제의 식민지로 전락하고 말았다.

대한제국을 강제합병한 일제는 대한제국을 완전한 식민지로 통치하려고 사상 유례없는 혹독한 무단 통치를 강행하여 민족의 얼을 송두리째 말살하려 하였다. 3·1운동은 일제의 압제와 굴레에서 벗어나 민족의 자유와 평화로운 생활을 되찾고자 하는 민족의 거대한 용트림이었다.

애국선열들이 국권상실을 전후하여 국내외에서 광복의 그날까지 부단한 독립투쟁을 벌였으나 우리는 국권회복을 자력으로 달성하지 못하여 한민족 누구도 원치 않는 열강에 의한 남북분단이 되어 현재에 이르고 있다.

국권회복은 독립선언을 하고 만세를 고창한다 하여 되는 것이 아니다.

물론 하지 않는 것보다는 백번 나은 것이지만 그보다는 국권을 상실하지 않도록 대처하는 것이 최선의 방책이었을 것이다. 그렇다고 최상책 운운하고 수수방관할 수 없다. 최상책이 없다면 차상책이라도 쓰는 것이 현명한 것이며, 이를 위해 우리 민족은 맨주먹으로 분연히 일어나 전국 방방곡곡에서 남녀노소, 빈부귀천을 막론하고 거족적인 독립만세 운동을 전개해 나갔다.

3·1운동의 결과 상해에 대한민국임시정부가 수립되었고, 1945년 광복의 그날까지 민족의 부단한 독립투쟁을 전개하는 구심점 역할을 하였다.

조국광복이 연합국의 승리로 일본이 패망하여 이뤄졌지만, 선열들의 끈질긴 독립투쟁과 숭고한 애국정신이 없었다면 오늘의 대한민국은 존재하지 못했을 것이다. 대한민국 존재의 원천은 3·1운동에서 찾아야 하며 또한 선열들에 대한 감사의 마음을 한시도 잊으면 안 된다.

작금의 시대는 세계 경제위기, 국익을 우선한 민족과 국가 간의 갈등을 비롯하여 사리사욕 및 당리당략에 치우친 정치의 후진성, 남북문제, 구제역 파동, 환경문제, 세대 및 지역 간 갈등, 가치관의 혼돈, 극단적인 이기주의 팽배 등 사회 문화 전반에도 위기가 도래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자유와 평화를 누리고 인간답게 살려면 민주적인 부강한 국가가 전제되어야 가능한 것으로, 부강한 국가가 되려면 경제발전이 선행되어야 하며 또한 올바른 국가관 및 민족사관이 정립되어야 한다. 올바른 국가관 및 민족사관이 결여된 경제발전은 사상누각에 불과하다. 3·1운동 정신을 이어받아 불의에 굴하지 않는 정의와 질서, 어떠한 탄압에도 비폭력으로 대응한 평화의 정신으로 거족일치해 매진한다면 작금의 난제는 능히 극복될 것이며 민족의 앞날에 서광이 비칠 것이다.

지금은 바야흐로 겨울의 끝자락으로 봄으로 가는 길목에 있는 시기이다. 신춘에는 만물이 소생하듯 민족도 활기차게 웅비하는 계기가 되길 빌면서 제92주년 삼일절에 즈음하여 3·1운동의 의미를 되새겨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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