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난 여자
바람난 여자
  • 충청타임즈
  • 승인 2011.02.25 00: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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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임즈 포럼
해맑은 햇살이 곱다. 문조가 수상 '쇼'를 하며 짝을 부른다. 거실에 레몬나무와 게발 선인장이 꽃을 피웠다. 봄이 오는 소리가 수런거린다. 일터에서 물러나 집안일에 재미를 붙이는 중이다. 여기저기 손볼 곳도 많고 정리를 해도 끝이 나지 않는다. 매일같이 비와 걸레를 들고 쓸고 닦는다.

30여년을 직업을 가졌다. 아내의 자리와 엄마노릇을 함께하느라 힘이 들었다. 집 안팎의 일을 완벽하게 할 수는 없었다. 대충 하고 살아야 했다. 아이들이 크면서 나를 도와 준 것이 전부였다. 그런데도 반듯하게 자라 준 아이들이 고맙고 한눈팔지 않고 열심히 직장 생활을 마감한 남편에게 고맙다고 하고 싶다. 가족들이 최선을 다했다는 것만 알아주면 고마울 뿐이다. 일손을 놓고 보니 화장하고 출근시간에 쫓기지 않아서 매우 행복하다.

액자도 여기저기 바꿔 걸어보고 꽃을 꽂아 장식을 하면서 여수를 떤다. 새록새록 살림살이에 흥미가 생긴다. 그릇을 몽땅 씻어서 소쿠리에 담아 햇볕에 말리고 스테인그릇과 사기그릇은 삶아서 소독을 했다. 마음안의 찌든 때를 닦아 낸 기분이 이러할까

20대 난 뜨개질을 아주 좋아했었다. 테이블보며 전화 받침 화병 깔개를 오색실로 코바늘 뜨개질을 했다. 풀을 먹여 곱게 다려서 보관하는 것이 취미였다. 일직을 하는 날이거나 출근길에 야생화를 접하면 꽃꽂이를 즐겼다. 운동장 가장자리에 싱싱하게 핀 빨간색과 노란색의 칸나 꽃을 잘라다 수반에 꽂았다. 교장실과 사무실이 환하게 보였다. 아끼던 화병 받침을 내다 깔았다. 보면 볼수록 아름다웠다. 직원들의 찬사와 교장 선생님의 환한 미소가 온종일 신나게 했던 추억이 떠오른다.

집 안 살림살이는 대충대충 하며 살았고 무엇 하나 제대로 한 것도 없이 세월이 흘렀다. 아이들도 훌쩍 커서 내 곁을 떠나버렸다. 머리허연 가을 여인이 되어 남편과 둘이서 이제야 신혼살림을 하게 되었다. 남편이 좋아하는 요리를 만들어 겸상을 한다. 머리 큰 아이들이 있을 때는 비좁던 방이 둘이 살기에는 너무 커서 허전하다. 인생이란 이렇게 별것도 아닌데 발 동동 구르며 억척을 부렸는지 쓴웃음이 나온다.

남편 손을 잡고 산책을 즐기고 싶다. 순간순간을 알차게 살고 싶은 충동이 생긴다. 일요일이면 다정하게 둘이 손잡고 성당에 나가 영혼에 영양제도 맞고 수영도 하고 산을 오르며 너그러운 마음으로 세상을 살펴보고 싶다. 그동안 못해 본 것들을 찾아서 평생 교육원 프로그램도 체험을 해볼 예정이다.

앞마당에 꽃을 심어 뜰을 가꾸고 마당 식구도 거느릴 것이다. 가곡 즐거운 나의 집 가사처럼 앞마당에 닭 치고 뒤뜰엔 꿀벌 개나리 진달래도 가득 심고 싶다.

조금 있으면 흐드러지게 명자나무와 살구 앵두꽃이 피면 우리 집은 꽃 궁전이 될 것이다. 보고 싶은 사람들을 초대하여 그동안 빚어 놓은 효소도 대접하고 요리 솜씨도 자랑하고 싶다. 아들덧?과 손자들의 재롱을 보며 아름다운 추억 만들기를 많이 하고 싶다.

전지가위를 들고 과일나무와 꽃나무 가지를 정리한다. 햇살은 따듯하고 까치가 노래하고 새들이 허공을 가른다. 청명한 하늘이 높기만 하다. 산비둘기 구구대는 소리가 달래와 냉이 봄나물 키우는 소리로 들린다.

바구니 들고 논두렁으로 나가 씀바귀를 캐러 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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