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노니'인가, '베냐민'인가?
'베노니'인가, '베냐민'인가?
  • 이근형 <포도원교회 담임목사>
  • 승인 2011.02.21 21: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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낮은 자의 목소리
이근형 <포도원교회 담임목사>

한 여인이 난산 끝에 죽었다. 여인은 그 아기의 이름을 '베노니'라 부르며 죽었다.

그 뜻은 '슬픔의 아들'이었다. 고통 중에 해산했으니 아들의 이름을 그렇게 부른 것이 이해가 될 법하지만, 그 아기를 낳기까지의 그녀의 삶의 역정은 훨씬 그 이상이다. 처녀시절 자신의 외사촌 오라비가 불쑥 자기 집에 찾아와서는 머슴을 산다. 그러고 나서 처녀의 아버지와 외사촌 오라비가 그의 머슴살이 7년간의 품삯으로 처녀와 결혼할 것을 계약한다. 그러나 그 계약에는 처음부터 아버지의 기만이 숨어 있었다. 7년 뒤, 결혼식을 치르고 보니, 신랑이 초례를 치른 여인은 그녀의 못생긴 언니였다. 아버지는 못생긴 큰딸을 먼저 시집보내고 싶었던 것이다. 아버지의 농간으로 처녀는 언니에게 신랑의 첫 부인의 자리를 내주며, 자신 땜에 7년의 머슴살이를 더해 14년의 머슴살이를 치르는 그 남자의 아내가 된다. 고통은 이것이 시작일 뿐이다. 언니가 아들들을 쑥쑥 낳는 동안 그녀는 십여년 넘도록 불임이라는 고통의 날들을 보낸다. 드디어 아들을 낳았지만 이미 언니는 7남매를 거느린 '승리자'요 자신은 이제야 초산이다. 그 후 16년, 그토록 기다리던 둘째아이를 잉태하여 만삭에 이르렀지만 수십릿길에 이르는 남편의 여행에 동행하는 육체적 고통 끝에 그렇게 아기를 낳으며 죽어간 것이다. 그녀에게 있어서 아들은 '슬픔'말고는 아무 의미도 없었던 것일까?

그런데 아이의 아버지는 아이의 이름을 '베냐민'이라고 지었다. '오른손의 아들'이란 뜻이다. 우리 식으로 치면, '능력의 아들'이다. '베노니'와 '베냐민'. 이것의 다른 표현은 절망과 희망이다. 한 아들의 이름을 짓는데 부부의 견해 차가 이토록 다른 이유가 있었다.

아이의 아버지의 이름은 야곱이다. 아내의 이름은 라헬. 야곱은 쌍둥이 중 동생으로 태어났지만 늘 형의 자리가 부러웠다. 장자의 자리가 자기 것이 아닌 것이 열등감으로 자리를 잡고 있었다. 그런 피해의식은 형을 속이고 아버지를 속이면서 가정에 불화를 일으키게 되었다. 장자의 명분을 얻고야 말겠다는 집념은 급기야 한 집에서 살기 힘든 살기등등한 분위기에 이른다. 부모의 설득에 따라 형의 눈을 피해 외삼촌의 집으로 향했다. 허리춤에 있는 한 병 기름이 전부인 노숙자. 그 노숙의 현장에서 그는 그의 인생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만남을 갖게 된다. 그리고 그에게 일생일대의 희망의 약속을 듣는다.

그 약속을 듣고 힘을 내서 걷고 또 걸어서 도착한 곳이 외삼촌의 집이었다. 거기서 성실히 일해서 두 명의 아내와 동시에 가정을 이루어 이십여년 만에 금의환향을 했다. 소와 양과 가축들이 떼를 이뤘으며, 11남 1녀의 자녀, 그리고 종들도 꽤나 많이 거느린 거부가 된 것이다. 아버지의 집을 떠나기 전 그토록 살기등등했던 형과의 화해도 성공적으로 이루어 놓았다. 그런데, 이번에는 더욱 처참한 소식에 치를 떨어야 했다. 하나뿐인 딸이 강간을 당한다. 그리고 그 남자를 보복한답시고 두 아들이 살인자가 된다. 자식을 키우는 아비로서 이보다 더 처참한 비극은 없을 것이다. 그런데 바로 그 죽고싶을 만큼의 고통 속에 있을 때, 이십 수년 전, 단신으로 노숙자의 신세였을 때 만난 그 만남을 또 맞이하게 된다. 그리고 그때 받았던 희망의 약속을 다시 재확인 받는다.

그가 첫 번째와 두 번째에 받은 희망의 약속은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너를 지키며 너를 이끌어 이 땅으로 돌아오게 할 것이다."

이 약속의 주인공은 하나님이었다. 아내가 아기를 낳으며 죽어가는 상황, 그 지독한 절망의 현실 앞에서도 그는 결코 희망을 포기할 수 없었으며 그 희망의 근거가 분명히 있었다.

오늘 우리 사회에 가장 필요한 건 돈이나 권력이 아니라 희망이다. 누군가는 '억지로라도 희망을 가져야 한다'고 한다. 일리가 있다. 그러나 억지로가 아닌 근거가 있는 희망은 얼마나 더 명확한가? 우리가 빨리 희망의 근거를 찾아야 한다. 아들의 이름을 '베냐민'으로 지은 야곱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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