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마음 속의 따뜻한 봄
내 마음 속의 따뜻한 봄
  • 충청타임즈
  • 승인 2006.05.23 23: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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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무지를 옮기게 되면 그 해의 봄은 더 춥다더니, 내게 있어 올 봄은 유난히도 추워 봄이 아름답다는 것을 제대로 느끼지도 못했다.

때때로 찾아오는 황사와 갑작스럽게 추워지는 날씨 때문에 옷을 어떻게 입고 다녀야 할 지 참 난감하기 그지없었다.

3월, 아직은 낯선 학교로 들어서면서 걱정이 이만저만 아니었다.

오래 되지도 않은 경력인데다 그동안 저학년 담임만을 하여왔기에 새로 담임하게 될, 나만큼이나 키가 크고 머리가 큰 6학년 친구들을 어떻게 다룰 것인지 걱정이 너무도 컸다.

생각다 못해 아이들에게 지면 안된다는 선배 선생님들의 조언에 따르기로 마음먹었다.

‘결코 지지 않으리.’싸움을 하러 전장에 나가는 장수는 아니지만, 그와 같은 마음으로 교실로 들어섰다.

그렇게 첫날부터 지지 않겠다는 굳은 의지로 수업에만 충실했고, 농담 한마디 던지지 않았다.

아이들의 태도는 나날이 달라졌고 내 마음도 조금씩 편해졌다.

내가 이겼구나.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드디어 해냈어. 선배 선생님들처럼 나도 해냈다는 뿌듯함이 밀려왔다.

그러던 3월의 어느 날, 누군가로부터 반 아이들이 하루 종일 주머니 속의 사탕을 만지작거리다 나에게 가까이 다가설 수 없어 건네지 못했다는 이야기를 전해 듣게 되었다.

말을 걸기가 어렵고 혹시라도 공부 이외의 행동을 하면 혼날까봐 걱정을 했기 때문이란다.

그러고 보니 녀석들은 어린이였다.

어른이 되어간다고 생각하여 약간은 두렵게 생각했던 녀석들이 아직 어린이였던 것이다.

그런 생각으로 아이들의 얼굴을 쳐다보니 아직 솜털이 보송보송했고, 웃는 모습 또한 순수하기만 했다.

자연스럽게 과거의 내 모습이 생각났다.

발령받던 첫 해, 나는 작은 아이들을 만나면서도 떨리고 기쁘고 설레는 마음이었다.

새내기 교사였기에 애당초 카리스마(?)를 기대할 수 없었던 내 모습에서 아이들은 친근감을 느꼈던 것 같았다.

무심코 언니라고 부르고 나서는 화들짝 놀라는 아이의 모습이 예쁘기도 하면서 우습기도 했었는데, 어느새 우리 반 아이들이 내가 무서워 가까이 올 수조차 없을 정도가 되었다니 아이들을 이겨 좋아만 할 것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친근하지 못한 선생님은 반쪽짜리 선생님이라는 것이 내 근본 생각이었다.

내가 정말 이긴 걸까. 알쏭달쏭했다.

다음 날부터 아이들을 이기겠다는 생각을 뒤로 물리고는 아이들이 다가설 수 있도록 내 주변의 공간을 조금씩 넓혔다.

어느 수학 시간. 그 시간이 끝나면 익힘책 검사를 하겠다고 했다.

화장실을 다녀오라는데도 아이들은 책상 앞에 웅크린 채 다하지 못한 익힘책을 풀었다.

그 모습이 어찌나 귀여운지 절로 웃음이 나왔다.

그래서 한 마디를 농담삼아 던졌다.

“쉬는 시간인데도 이렇게 공부를 열심히 하다니, 이런 분위기가 너무 마음에 드는 걸. 앞으론 쭉 이런 모습으로 공부해야겠다.

”내 말이 떨어지기 바쁘게 몇 명의 아이들이 일부러 자리에서 일어나 밖으로 나갔다.

나는 마음이 약해져 하교하기 전까지 검사를 받으라고 했다.

그때 한 녀석이 톡 튀어 나섰다.

“선생님. 다음 주에 검사하시면 안 될까요?”아이로 인해 교실이 갑자기 소란스러워졌다.

“야, 너, 이번 시간 끝나면 바로 내고 싶냐?”“아니에요, 선생님. 집에 가기 전에 내고 갈게요.”괜한 말을 꺼냈다며 농담 섞인 질책을 건네는 아이, 혹여 아이의 말 때문에 검사가 당겨질까봐 내 눈치를 살피는 아이들 때문에 그날의 검사는 다음으로 미루어지고 말았다.

그날 이후 나는 아이들을 반드시 이기겠다는 마음의 짐을 벗어던졌고, 아이들은 조금씩 조금씩 내게 다가와 우리는 서로에게 길들여지고 있다.

아마도 아이들은 아직 모를 것이다.

내가 항상 하는 말, 학생은 절대로 선생님을 이길 수 없다는 말과는 달리 이미 오래 전에 내가 그들에게 졌다는 것을.그렇게 근무지를 옮겨 유난히도 추웠던 내 마음의 봄은 아이들 때문에 따뜻하게 녹여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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