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사화
상사화
  • 충청타임즈
  • 승인 2011.02.11 09:45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타임즈 포럼
이진순 <수필가>

담 밑에 새파란 봄소식을 알리는 상사화 잎이 얼굴을 뾰족이 내밀었습니다. 전 반가워서 낙엽을 긁다 쪼그려 앉았습니다. 언 땅을 비집고 용맹스럽게 동장군의 눈을 피해 얼굴을 내민 상사화를 보는 순간 저도 모르게 감탄사를 터트리고 말았답니다.

두 손으로 감싸 안으며 "안녕" 하고 인사를 했습니다. 상사화는 눈을 깜박거렸습니다. 정확히 3센티는 올라와 세상을 살피고 있지 뭡니까.

해마다 제일먼저 봄소식을 전해주는 상사화는 날이 추워지면 저를 밤잠을 설치게 만든답니다. 오늘 서로 인사를 했으니 꽃샘추위가 물러나 개나리가 피고 매화가 만발하기 전까지 애간장을 다 녹일 듯싶습니다.

철부지 손자 녀석이 콧바람을 씌우고 나면 업어달라며 밖으로 나가자고 조르는 것처럼 말입니다. 코가 빨개지고 손이 꽁꽁 얼어 감기 들까 봐 안달하듯 안쓰러워 바람막이를 해서 상사화를 보호해야 될 것 같습니다.

잎과 꽃이 영원히 만날 수 없어 상사화란 이름이 붙여진 상사화는 지금부터 아무리 추워도 쑥쑥 커 올라와 봄바람이 인도하는 대로 왈츠와 탱고를 추며 사랑하는 님을 기다리다 누렇게 황달이 들어 상사병에 걸리게 될 것입니다. 더위에 잎은 흔적도 없이 녹아 사라지고 맙니다.

장마철이 되면 어느 날 긴 다리 중중 걷어 올리고 강보에 쌓인 꽃봉오리를 싸안은 여인의 모습으로 나타나 연분홍색의 꽃을 피워 올립니다. 전 해마다 이 꽃을 뜰에 심어 관찰을 하면서 잎은 남성이요, 꽃은 여인이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상사화 잎은 전쟁터에서 나라를 위해 몸 바친 젊은 청년의 넋처럼 보였습니다. 어찌나 용맹스러운지 일주일 전 동장군의 기세를 기억하실 겁니다. 그 꽁꽁 얼어붙은 땅을 헤집고 올라온 잎은 앞으로 닥칠 꽃샘추위 따위는 아랑곳없습니다. 그러나 전 해마다 가슴앓이를 합니다.

꽃은 여자로 태어나 전쟁미망인이 되어 유복자를 생산하고 시부모를 섬기며 살고 계신 여인으로 보입니다. 하필이면 소낙비 쏟아질 때 필 게 뭔지 처량하고 불쌍해 보여섭니다.

세상은 물가상승, 전세금 폭등으로 어려운 이웃들의 걱정이 떠나지 않고 있습니다. 더욱이 구제역으로 축산 농가들은 절망스러운 시간을 보내고 있습니다.

살아 있는 생명을 매장해야 하는 농민들에게는 자식처럼 아끼는 생명이니 얼마나 가슴 아플지 위로의 말씀조차 드리기 힘듭니다. 용맹스러운 상사화 잎처럼 희망의 끈을 놓아서는 안 될 것입니다.

봄의 전령사 상사화여 그대는 잎과 꽃이 영원히 만날 수 없어 애잔하지만 그래서 더 멋지고 사랑스럽습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