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 시나리오 작가의 죽음
젊은 시나리오 작가의 죽음
  • 충청타임즈
  • 승인 2011.02.11 09:45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충청논단
정규호 <문화콘텐츠 플래너>

'창피하지만 며칠째 아무것도 못 먹어서 남은 밥과 김치가 있다면 저희 집 문 좀 두들겨 주세요.'

한 젊은 시나리오 작가가 죽었다.

그녀의 나이는 이제 겨우 서른두 살. 21세기의 대한민국에서, 이런 처참한 쪽지를 남겨두고 굶어 죽은 것이다.

설날을 며칠 남겨두지 않은 지난달 29일, 이 땅 대한민국에서는 아무에게도 도움을 받지 못한 채 자신의 작은 월세 방에서 서러운 젊은 인생을 마감했다.

연극과 영화를 공부한 나는 미국의 극작가 아서 밀러가 1949년에 발표한 극본 '세일즈맨의 죽음'을 떠올리는 치졸한 낭만에 몸서리를 쳐야 했고, 그 사실을 차마 알지 못하던 설 연휴 기간에는 무려 3편의 영화를 봤다.

그녀의 이름은 최고은. 문화예술계에서는 최고라고 일컬어지는 한국예술종합학교를 졸업했고, 재학 중이던 2006년 '격정 소나타'라는 작품의 시나리오와 감독을 맡아 아시아나국제단편영화제에서 '단편의 얼굴상'을 수상한 재원이었다.

그런 그녀가 지병과 굶주림을 견뎌내지 못하고 비참하게 죽어갔다.

그녀의 죽음 뒤로 숱하게 이어지는 한국 영화판의 구조적 문제니, 최소한의 인간적인 권리조차 보장받지 못하는 시나리오 작가의 열악한 현실이니 하는 논란은 이미 유명을 달리한 그녀에게는 더 이상 아무런 소용이 없다.

다만 차마 탄식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은 이 땅, 더군다나 경제가 최우선의 화두이며 불과 몇 개월 전만 해도 G20정상회의에 들떠 선진국을 자랑하던 대한민국에서 지성이 충만하고 말 그대로 전도양양한 젊은 여성 시나리오 작가 한 명이 굶어 죽었다는 것이 현실이라는 거다.

우리는 늘 좌절하지 않고 주저하지 않으면 더 나은 내일이 올 것이라는 희망을 말한다.

'세일즈맨의 죽음'에서 주인공 윌리는 말한다. "생각해 봐. 집을 사려고 평생 일했어. 마침내 내 집이 생겼는데 그 속에 사는 사람이 하나도 없는 거요."

그의 아내 윈다도 "여보. 오늘 주택할부금을 다 갚았어요. 오늘 말이에요. 그런데 이제 집에는 아무도 없어요."라고 말한다.

성실하게 살아가다 보면 반드시 성공한다는 신념으로 세일즈에 몰두했음에도 극복하지 못한 가족들과의 관계, 그 안에는 사람들 사이에서 고립된 섬에서 탈출하지 못하고 스스로 목숨을 끊을 수밖에 없는 비극이 우리를 자극한다.

최고은, 그녀도 굶주려 죽을 때까지 끝내 버리지 못한 희망이 그녀의 가슴을 뜨겁게 ?岵?것이다.

그리고 우리는 그녀의 죽음조차 세월에 묻어버리며 다시 일상에 내몰리며 침몰하고 있을 테지.

그저 희망은 어떻게든 살아남은 자들의 몫일 뿐이라고 자위하면서 말이다.

늦은 밤 TV오락프로 무르팍 도사를 찾아온 이 시대 최고의 작가 공지영의 재기발랄함이 자꾸만 최고은의 죽음과 오버랩되는 것은 그나마 내 치졸한 낭만을 위로하려는 눈속임이 아니고 무엇이랴.

나는 지금 설날 다음날 내 아파트 현관에 붙여 두려고 했던 입춘대길(立春大吉) 건양다경(建陽多慶)의 글귀를 뚫어져라 바라보고 있다.

오로지 나, 그리고 나와 직접적으로 관련된 내 가족만을 위한 강복의 기원이 지금, 이 젊은 시나리오 작가의 죽음 앞에 가당키나 한 것인가.

우리가 살가운 마음과 따스한 눈길로 주변을 둘러보지 못하는 사이 서러움에 복받쳐 죽지 못하고 살아가는 이들은 또 얼마나 많은 피눈물을 흘리고 있을 것인가.

아까운 사람들이 자꾸만 죽어 나가고, 또 얼마인지 그 숫자를 헤아리기도 감당하기 어려운 소와 돼지, 닭들이 무수히 죽임을 당하는 21세기 대한민국의 현실에서 서럽지 않은 것은 또 무엇이 있겠는가.

한 글자씩 써 내려 갈 수밖에 없는 최고은, 그녀의 문자와 그로 인해 얻어지는 모든 세상의 말과 배우들의 대사들이 차라리 허무하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