졸업식 풍경
졸업식 풍경
  • 충청타임즈
  • 승인 2011.02.09 21: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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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논단
오창근 <칼럼니스트>

옛날 초등학교 졸업식 날이 되면 후배들은 교실 바닥에 들기름을 바르고, 마른걸레를 쥐고 한 줄로 길게 늘어서서 교실과 복도를 왕복하며 광을 내었다. 그것도 모자라 촛농을 바닥에 문지르고 걸레로 반짝반짝 윤이 나도록 닦았다.

졸업식을 축하하는 교장 선생님의 훈화와 외부인사의 지루한 축사가 이어지면 몸은 뒤척이고, 눈은 졸업식을 찾은 부모님을 찾기에 바빴다. 별 감흥이 없는 식순이 끝날 무렵 재학생과 졸업생이 입을 모아 졸업식 노래를 합창하면 왠지 모르게 눈물이 흘러 손등으로 눈물을 훔치던 기억이 난다.

지금처럼 졸업과 동시에 가까운 중학교로 진학하는 경우가 드물었다. 여학생의 반은 근처 도시의 공장에 취직을 위해 떠나는 이별의 장이기도 했다. 마지막 배움의 장소라는 생각에 더 서럽게 울지 않았나 싶다.

졸업식 시즌이 되었다. 알몸으로 도시를 활보하는 청소년들의 모습이 사회문제로 대두되는 시점에 예방과 선도를 하기 위해 각 학교와 일선 경찰관들이 대책 마련에 고심하고 있다.

경찰청은 각급 학교 졸업식이 몰린 이번 달 8일부터 17일까지를 중점 관리기간으로 정하고 순찰과 선도활동에 나선다고 밝혔다. 폭력적·선정적 뒤풀이의 주동자뿐만 아니라 단순 가담자도 법률에 따라 엄정히 처벌한다는 방침을 밝혔다.

특히 청주에서도 '알몸 뒤풀이'로 곤혹을 치른 경험이 있어 촉각을 곤두세울 수밖에 없다.

성안길을 알몸으로 뛰어다니는 모습이 전국 방송에 소개되어 '교육의 도시', '양반의 도시'라 불리던 청주의 이미지가 훼손되었다.

선배의 강요와 전통이라는 명목 아래 눈살을 찌푸리는 행동조차 혈기왕성한 한때의 낭만이라 치부하기에는 도를 넘어섰다.

조선 시대 성균관 졸업식에서 임금이 내린 술을 마시고 군신 간의 결속과 동기 간의 우의를 위해 재학 중 입었던 푸른 도포를 찢는 '파청금 (破靑襟)'에서 유래했다는 설이 있지만, 현재 교복을 찢고 알몸으로 도로를 활보하는 일에 정당성은 부여하진 않는다.

교복에 밀가루를 뿌리는 것이 일제 강점기 때 군복과 비슷한 교복에 대한 부정적인 시각과 독립이라는 대의를 소박하게나마 실현했다고 하더라도 지금의 상황에서는 졸업한 학교와 선생님의 명예에 오물을 뿌리는 것 이상 이하도 아니다.

이렇듯 졸업식이 즐거운 축제의 장으로 승화되지 못한 데는 어른들의 책임이 크다.

성적에 따라 줄을 서야 하는 학교생활과 획일적인 교육 속에서 들러리 역할밖에 하지 못하는 대다수 학생에게 졸업식은 단순한 탈출구로밖에 인식되지 않기 때문이다.

학생 하나하나에 잠재된 능력을 발굴하는 것이 아니라 회색빛 교복의 틀 속에 갇힌 비생산적인 학교생활의 염증이 과격한 행동으로 표출되는 것이다. 자랑스럽지도 않는 졸업장과 암울한 미래에 대한 반항심이 반사회적인 일탈을 가져왔다.

졸업식장에 들어가지도 않고 가족과 사진을 찍고 돌아서는 대학 풍경은 학벌의 과잉으로 졸업이라는 의미가 퇴색해 버린 우리 사회의 슬픈 단면이기도 하다.

학교에 경찰관이 들어오고 배움의 장소인 학교가 밀가루와 깨진 계란으로 얼룩지고, 이를 묵묵히 쳐다볼 수밖에 없는 학교 선생님들의 모습 또한 우리 학교 교육의 현실을 보여주는 자화상이다.

요즘은 졸업 후에도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 휴대 전화기나 인터넷 등을 통해 소식을 전하고 만날 수 있는 시대다.

초등학교 졸업장이 전부인 학생들도 많았던 때를 생각해 보면 지금의 졸업식은 이별의 장이 아닌 단순한 절차에 지나지 않을 수도 있다.

억압의 상징으로 여기는 교복을 찢고 밀가루를 던져 일시적인 해방감과 일탈을 꿈꾸는 학생들의 모습을 보면서 소박했지만, 누구나 눈물 한 방울 흘리는 데 인색하지 않았던 작은 교실의 풍경이 그립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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