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난한 행복
가난한 행복
  • 충청타임즈
  • 승인 2011.02.07 2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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낮은 자의 목소리
정효준 <광혜원성당 신부>

명절은 잘 보내셨습니까?

기세등등했던 동장군이 명절로 모인 가족들의 훈훈함에 꼬리를 감춘 듯했습니다. 서로에게 복을 빌어주고, 선조의 고마움을 되새기고, 가족의 평화와 안녕을 기원하는 이 마음들이 세속적인 계산과 이기심으로 변질되지 않도록 함께 노력하는 한 해가 되기를 기원해 봅니다.

사실 '복 많이 받으세요'라는 인사에는 '너보다' 혹은 '나보다'라는 말이 빠져 있습니다. 시간이 흘러가면서 나보다 복을 더 받는 듯한 사람 때문에 배 아파하고, 너보다 열심히 살고 있는 내가 복을 누리지 못함에 화가 나는 시간이 찾아오는 것 같습니다. 첫 마음을 유지하라고 가르치신 선조의 지혜를 되새기며, 기쁜 마음으로 복을 빌어 준 이 시간을 오래 오래 간직하기 위해 노력합시다. 내년 복을 빌어줄 그날까지 말입니다.

'개구리가 되지 맙시다.'라는 소재목의 글을 읽은 적이 있습니다. 그 글에서는 개구리가 호숫가에서 혀로 날아다니는 파리를 잡아 먹는 이야기를 하면서 개구리가 되지 말자고 말하고 있었습니다. 사람은 도저히 흉내낼 수 없는 개구리의 몸부림을 왜 따라하지 말자고 하는지 궁금한 마음으로 읽어보았습니다.

개구리가 날아다니는 파리를 잡아 먹을 수 있는 것은 개구리의 눈에 움직이지 않는 다른 것들이 보이지 않기 때문이랍니다. 개구리에게는 잔잔하게 움직이는 호수와 호수 주변을 아름답게 꾸미고 있는 들꽃들이 보이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자신이 잡아야 하는 파리만이 보이기 때문에 그것을 잡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쯤되면 왜 개구리가 되지 말아야 하는지 알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들은 호수 주변의 아름다움을 볼 수 있는 능력이 있습니다. 그럼에도 애써 그 아름다움을 외면한 채 내가 보고 싶은 것, 내가 가지고 싶은 것에 눈을 고정하고 살아가는 경향이 있는 것 같습니다. 어쩌면 세상이 가르치는 경쟁이라는 구도는 그렇게 시선을 고정하도록 다그치고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래서 남들보다 먼저 파리를 잡는 사람이 성공하는 것이고, 행복한 사람이라고 말하는 것 같습니다. 과연 그것이 행복일까요?

예수님께서는 산상설교라는 가르침을 통해 행복에 대해서 말씀해 주고 계십니다.

"마음이 가난한 사람은 행복하다."

사실 '가난'이라는 단어를 마음에 담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닌 것 같습니다. 가난은 왠지 궁핍함의 표현인 것 같고, 성공보다는 실패에 가까운 단어인 듯 보이기 때문입니다. 그런 가난을 왜 예수님께서는 행복의 첫 자리에 놓으셨을까.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가난에는 자유로움이 있습니다. 어디에도 얽매이지 않고, 구속받지 않는 자유로움입니다. 분명 방종이나 헛된 용기를 의미하지 않습니다. 예수님께서 당신 삶을 통해 이 자유를 온전히 보여주셨습니다. 불의에 타협하지 않고, 자유롭고 용기있게 아버지 하느님의 뜻을 드러내셨습니다. 세상은 이런 예수님을 패배자로 만들기 위해 노력했고, 급기야 십자가 형벌을 통해 무너뜨리려 했습니다.

하지만 그 십자가 위에서 '내가 세상을 이겼다'하신 예수님께서는 지금도 신앙인들의 가슴에 승리자로, 구세주로 살아계십니다. 또한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가난은 내어줌으로써 완성됩니다. 당신의 살과 피를 내어줌으로써 완성하신 그분의 가난은 실패도 아니고, 궁핍함도 아닙니다. 바로 행복으로 향하는 온전한 길인 것입니다.

나눔으로써 행복해진다는 사실을 모르는 사람은 없습니다. 단지 용기가 없기 때문입니다. 이거 아니면 모든 것이 끝날 것 같은 두려움이 그 용기를 앗아간 것입니다. 하지만 지나간 세월 속에서 드러난 사실은 그 두려움이 아무것도 아니었음을 말해 줍니다. 오히려 용기 내지 못한 자신이 어리석게 느껴지곤 합니다.

지금 무엇을 쥐고 계십니까. 지금 어느 파리에 시선을 고정하고 계십니까. 잠시 시선을 돌려 주변의 아름다움에 행복을 느껴 봅시다. 잠시 손을 놓고 자유로움을 느껴 봅시다. 행복은 바로 여러분 옆에서 여러분이 고개를 돌려 바라보기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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