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 스트레스 고스란히… 우리도 명절이 괴롭다
아내 스트레스 고스란히… 우리도 명절이 괴롭다
  • 연지민 기자
  • 승인 2011.01.31 21:2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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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들도 할말 있다.
명절이면 으레 등장하는 말이 있다. 여성들의 명절 증후군이다. 집안일에, 손님 접대에, 휘청이는 가정경제까지 생각하면 머리가 지끈지끈 아프다. 여기에 어설픈 살림 솜씨로 치러야 하는 명절 차례상은 시댁 식구들 눈치까지 보게하니 스트레스가 이만 저만이 아니다.

하지만 이런 아내를 말없이 지켜봐야하는 남편들도 명절 스트레스에 시달린다. 가장으로, 아들로, 삼촌으로 일인다역을 맡아야 하는 중압감에 남편들도 명절이 무조건 즐거운 것만은 아니다. 아내의 명절 증후군에 가려진 남편들의 스트레스를 각자 다른 입장에 있는 3명의 남성들에게 들어보았다.

◈ 짐 나르고 청소하고 가족간 의견조율도

장손 심억수씨(청주 금천동)

오남매 중 장손인 심억수씨는 명절이면 은근히 신경이 곤두선다. 차례지낼 제사상 준비에 아내의 일손을 덜어주기 위한 세심한 배려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맞벌이 부부인 심억수씨는 명절보다 명절 전 준비 단계부터 남편들의 스트레스가 시작된다고 말한다.

"명절 전부터 같이 장도 봐주고, 짐도 날라주곤 합니다. 장손에 큰집으로 아버지 형제분들과 조카, 제수씨가 명절이면 오니 집 안 대청소도 무척 중요한 행사예요. 청소가 힘든 게 아니라 청소를 해야 한다는 것 자체가 스트레스예요

명절이면 잠깐 오가는 방문객도 주인 입장에선 보통 신경쓰이는 게 아니다. 제수씨들 앞에서 점잔 빼랴, 찾아오는 손님이 많으니 집안 흠 잡히지 않을까 걱정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아무래도 명절이면 거의 집안일은 여자 몫이니 아내가 힘들죠. 더구나 장손에 부모님까지 모시니 준비할 것도 많고, 아내와 의견충돌이 일어나기 쉬워요. 가족 간에 충돌이 생기지 않도록 교통정리를 잘하는 것도 남자들의 역할입니다."

며느리가 시댁 식구들과의 견해 차도 남자들에겐 피해갈 수 없는 스트레스다. 가족회의 내용을 아내에게 일방적으로 통보했다가 몇 번 다툰 뒤로 집안에 대소사 전권을 아내에게 일임했다.

"가족이 만나기 힘들다 보니 명절 때 집안일을 상의하잖아요. 아내 입장에선 그게 서운했나 봐요. 일은 죽도록 하는데 논의할 때 쳐주지도 않는 느낌을 받게 되니 다투게 되더라고요. 이후로는 크고 작은 일도 동생들에게 모든 걸 형수와 상의하도록 했죠. 그러니 편해지더라고요."

이렇게 준비해 둬도 아내를 위한 배려는 남아 있다. 친정 나들이길이다. 장인장모님께도 성의를 다해야 하는 것은 물론, 적절한 시간에 친정집에 가게 하는 것도 중요하다.

"아내의 집 식구들도 명절에 다 모이게 되니 얼마나 친정에 가고 싶겠어요. 차례지내고 손님을 맞다 보면 꼼짝할 수 없게 되죠. 적당한 시간에 아내를 친정집에 보내주기 위해 설거지도 해 주고, 어머니 눈치 안 보고 친정집에 갈 수 있도록 분위기도 잡아줘야 합니다."

명절이면 아내의 눈치도 보게 되고, 집안일도 다른 때보다 더 거들게 된다는 심억수씨. 몸이 고달픈 여자들과는 달리 남자들의 명절 스트레스는 마음에 달렸다며 남편들의 명절 증후군을 들려줬다.

◈ 부모님 용돈·세뱃돈 경제적 부담도 커져

차남 김낙영씨(청주 금천동)

차남이라고 명절이 부담스럽지 않은 것은 아니다. 3남매 중 둘째인 김낙영씨 역시 명절 스트레스가 장남 못지 않다.

"장남보다야 명절에 대한 부담은 덜하지만 아내 비위맞추기는 보름전부터 시작됩니다. 평소에 기분이 좋아야 시댁에 가서도 즐겁게 보낼 수 있잖아요. 미리미리 분위기 좋게 만들기 위해서 집안일도 도와주며 아내의 기분을 맞춰줍니다

사전에 아내의 비위를 맞췄다고 끝이 아니다. 오랜만에 만나는 만남이다 보니 호주머니 사정도 남자들에겐 알게 모르게 스트레스다. 작은아버지로, 삼촌으로, 아들 노릇을 해야 하는 남편들의 심적 부담은 경제적 능력에 따라 목소리도 달라진다.

"경제 상황이 안 좋아서 형편이 넉넉지 못할 때는 움츠러들게 되는 게 남자들이에요. 조카들도 이제 대학생이니 만원 주던 용돈도 더 줘야 할 것 같고, 부모님이나 형제들에게 평상시 못했던 효도를 용돈이라도 드려 잘해주고 싶은 마음이지요. 하지만 이런 저런 이유로 뜻대로 잘 안 될 때 많이 속상하죠."

아내의 기분이나 경제적 사정에 비하면 집안일 도와주기는 오히려 쉬운 편이다. 음식장만이 쉽지 않지만 맞벌이 부부로의 경험은 부엌일이 스트레스가 아니라 자연스러운 일이 되었다고 한다.

"모이면 대부분 아들만 있어서 남자들이 꼬치 꼬이기나 부침전 등을 도와줍니다. 일손이 달리니까 안 할 수 없죠. 이따금 집안 분위기가 서먹해지면 회라도 떠가 소주 한잔 마시며 가라앉은 분위기를 띄우는 것도 차남의 몫이죠."

그런가 하면 부부가 서로 서운하지 않도록 양가 부모님께 비슷한 수준으로 선물도 마련한다. 곱게 기른 딸을 맞벌이하게 만든 것이 미안한 까닭도 있다.

"경제적으로 부담은 되지만 처 조카나 처가집 식구들에게 더 챙겨주려고 합니다. 시집와서 맞벌이하는 아내에게 미안해 처가집에 더 잘하려고 하는 거지요. 없어도 넉넉하게 드리려고 해요."

명절날 후유증에 시달리는 아내를 위해 마지막 서비스는 집안일이다. 평소 집안일을 잘하는 김씨지만 명절 후에는 저녁밥도 차려주고, 몸이 힘든 아내를 마음으로 거들어 주려고 노력한다며 한마디!

"명절에 여자들만 스트레스 받는 게 아니에요. 아내분들, 남자들도 스트레스 많이 받고 있다는 거 알아주세요. 그리고 힘들면서도 늘 시댁 어른들께 웃음과 애교로 대하는 아내 숙영씨, 사랑해요."

◈ 장거리 운전도 부담 가족 안전 신경쓰여

막내 김창재씨(청주 사직동)

나이가 들어도 막내는 막내라는 말처럼 명절에 가장 부담없을 것 같은 이가 막내다. 5남매 중 막내인 김창재씨는 명절에 느끼는 부담이 무엇일까.

"안동이 집인데 온 동네 어르신들께 인사드리는 일이 명절의 큰 행사였어요. 지금은 대가족 문화가 옅어지고 있어 아쉽지만 옛날에는 부담이 됐죠. 하지만 아내도 저도 사람을 좋아하는 성격이라 명절 스트레스보다는 만남 자체를 즐기는 편입니다."

집안의 막내다 보니 실수를 해도 이해해 주시는 편이라 명절은 즐겁게 보내는 편이라고. 하지만 부모님이 돌아가신 뒤로 고향을 찾아가는 마음이 가볍지만은 않다.

"부모님이 돌아가신 뒤로는 형네 집으로 가는 거잖아요. 특별히 형수가 까다로운 편은 아니지만 성격이 달라 마음 편하게 쉬었다 올 수 없지요. 부모님이 안 계시니 고아가 된 기분이랄까요?"

다 큰 어른이지만 부모의 빈자리는 남편들의 명절을 무겁게 한다. 여기에 명절 때면 교통체증이 겹쳐져 장거리 운전도 부담스럽다.

"교통이 좋아져 두 시간이면 되는 거리지만 처가집까지 이동하는 거리까지 따지면 장거리죠. 가족들이 이동하다 보니 안전 문제도 신경쓰입니다. 장남에 비하면 별거 아니죠."

이래 저래 보내는 명절이지만 아내와의 갈등은 사소한 곳에서 벌어진다. 아이들 교육을 우선시하는 아내는 명절도 보내면서 볼거리를 찾아가는 여행을 준비해 짐을 싼다.

"안동이나 서울로 명절 나들이를 가다 보면 아내는 아이들을 위해 인근에 있는 역사지를 찾아가고 싶어합니다. 시간내서 오기 나쁘니 왔을 때 보여주자는 심사지요. 아내의 마음을 이해 못하는 것은 아니지만 오랜만에 친구들과 만나 사는 얘기도 하고 싶고,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도 하고 싶은 남자들의 마음을 몰라줘 신경전이 벌어지곤 합니다."

가족들이 모이는 명절답게 일상에서 느끼는 자잘한 부담은 그러려니 한다는 김창재씨. 남자들도 마음의 부담을 줄이는 게 명절스트레스를 받지 않는 방법이라고 말한다.

"돈이 없다고 가족들 찾아가는 것을 꺼리지 말고, 없으면 없는 대로 명절을 즐기면 문제될 게 없다고 봅니다. 얼굴 마주보고 웃을 수 있는 가족이 있다는 게 얼마나 행복한 일입니까?"

화통하게 웃는 모습을 보니 명절 증후군도 싹 날아가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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