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찬 얻어주는 사랑
반찬 얻어주는 사랑
  • 충청타임즈
  • 승인 2011.01.17 21:45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낮은 자의 목소리
정효준 신부(라우렌시오) <광혜원성당>

요 며칠 사이 눈이 자주 왔습니다. 성당 올라오는 길에 경사가 있어서 매번 열심히 치웠는데, 하루는 저녁에 미사가 없는 날이라 게으름을 피웠습니다.

다음날 아침 아이들 소리가 나서 밖을 보니 전날 쌓인 눈길이 동네 꼬마들의 눈썰매장이 되어 있었습니다. 작은 꼬마 아이가 자신보다 덩치가 큰 누나를 재미있게 해 주겠다고 비닐포대를 들고 열심히 오르락 내리락 합니다. 대견하기도 하고 시골 성당이기에 볼 수 있는 풍경이기에 그날도 눈 치우는 것을 포기했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얼어붙은 눈이 녹지를 않아 주일 할머니들의 발걸음을 조심스럽게 했습니다. 눈을 꼭꼭 눌러 놓은 어린이들과 저의 어설픈 배려가 조금은 원망스러웠습니다. 누군가에게는 재미있는 일이 다른 누군가에게는 어려움을 줄 수 있다는 세상 이치를 되새겨 보았습니다.

한 해를 시작하는 요즘 자연은 또 다른 가르침을 주었습니다. 가르침의 사제관의 작은 옥상에 쌓인 눈에서 얻게 되었습니다. 아무도 발자국을 남기지 않았던 사제관 옥상에도 눈이 제법 쌓였습니다. '언젠가는 녹겠지'란 생각과 아무도 밟지 않아 예쁘게 쌓여 있는 눈이 보기 좋다는 나름의 합리화를 하며 일주일 정도를 두었습니다. 하지만 넓지 않은 공간인데 너무 게으름을 피우는 것 같아 저녁 식사를 하고 운동 삼아 치우기 시작했습니다. 깨끗하게 치워질 줄 알았던 눈이 중간 중간 얼어 붙어 불편함을 주었습니다. 보이지는 않았지만 조금씩 녹았다가 얼었다가 한 모양입니다. 눈은 다 치웠지만 오히려 지저분해 보였습니다. '그냥 둘 걸 그랬나' 싶었습니다.

지저분해진 옥상을 한동안 바라보았습니다. 지난 한 해의 내 모습처럼 보였습니다. 겉에서 보기에는 깨끗하고 새하얗게 보였던 시간들이 나도 모르는 악습들로 가슴속 저변에서 요동을 치고 있었다는 반성을 해 보았습니다. 또 마음의 포장들을 자주 벗겨 내지 않아 그 요동을 잠재우지 못했음을 반성했습니다.

어느 해부터인가 매년 새해 다짐은 똑같았습니다. '더 사랑하자' 지난 시간보다 조금 더 사랑하며 사는 것이 제 삶의 신조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이 다짐 안에 담긴 사랑의 의미를 함께 나눠 볼까 합니다.

어느 드라마에선가 사랑하는 사람들은 밥 먹을 때 반찬을 올려 주는 것이라고 한 꼬마가 말했습니다. 곰곰이 생각해 보니 수저로 밥을 떠서 먹여주는 것이 아니라 상대방이 떠 놓은 밥 위에 반찬을 올려주는 것이 진정한 사랑이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상대방이 밥을 맛있게 먹게 하기 위해 올려주는 그 반찬은 상대방이 좋아할 만한 음식을 올려주게 마련입니다. 때로는 맛보다는 영양을 생각해서 입에는 쓴 반찬을 올려주기도 합니다. 하지만 그 또한 그 사람을 위한 것일 때 더 의미가 있습니다.

요즘 세상에는 사랑을 한다고 하면서 상대방이 떠 놓은 밥을 치우고 손을 꽁꽁 묶어 놓은 채 내가 먹고 싶은 것을 상대방에게 먹이는 실수를 범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런 실수는 서로에게 불만을 가지게 만들고, 그 불만이 점점 커지면 아무것도 해 주지 않는 남이 되는 것입니다. 자신의 생각만이 진리인 양 상대방의 수저에는 관심이 없고 내가 떠 놓은 밥, 내가 올린 반찬을 배려라는 이름으로 포장해 상대방의 입에 밀어 넣는 것은 사랑도 아니고, 정의도 아닙니다. '더 사랑하자'는 의미 안에는 상대방의 수저에 무엇이 올려 있는지 더 관심있게 지켜보고 상대방이 먹고 싶어하는 것이 무엇인가 두루 살펴 정성껏 올려준 반찬을 맛있게 먹는 상대방의 표정에서 공유되는 기쁨이 담겨 있는 것입니다. 나아가 반찬을 올리는 나는 끊임없는 자기반성 곧 쌓인 눈을 자주 치우는 노력을 통해 스스로 진실 앞에 부끄럽지 않도록 노력해야겠습니다.

올해는 '더 사랑하자'는 결심에 한 가지 결심을 더해 봅니다. '자주 포장을 벗기자' 포장되어 예쁜 마음이 아니라 벗김으로 진실한 마음으로 더 사랑합시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