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심천
무심천
  • 윤승범 기자
  • 승인 2006.05.18 23: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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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모 방송국 프로그램에서 일명 ‘노예 할아버지’의 사시는 모습이 방영되었다.

스무 살 나이부터 노예 생활을 하던 것이 어언 50년이 됐단다.

팬티 한 장으로 수 십년을 보내고 먹을거리는 음식물 쓰레기통에서 찾고, 세수는 하수구에서 하며 사셨단다.

어디 그 분 뿐일까? 무심한 우리 눈에는 보이지 않지만, 소외된 이웃들이 얼마나 많이 살고 있고 그리고 돌보아지지 않는 경우는 또 얼마나 많을까.무릇 한 나라의 백성이 된다고 함은 백성된 의무를 이행하고 그 의무의 이행에 따르는 권리를 가질 수 있음이어야 한다.

그러나 아무리 생각해 봐도 우리는 과중한 의무만 있고 받아야 할 권리는 못 갖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모든 정책에서 가진 것이 없는 자들은 소외되는 이상한 구조적 모순을 갖고 있다.

다 잘 살자는 정책을 만든다고 하면서도 정작 그 그늘 밑에서 눌리고 눌리는 백성들이 있다.

그리고 그들은 결코 헤어나오기 힘든 삶의 무게를 감당하고 있다.

산이 높으면 골이 깊다는 옛말이 틀린 말이 아니다.

남의 사정을 이해하고 봐주는 공동체적 삶이 아니라 내 삶만 중요하다는 사고를 갖고 있으니, 산은 점점 높아지고 골은 깊어만 간다.

이제 적당히 주변도 살펴 보자. 내 주위에 다른 노예 할아버지가 살고 있고, 버림받은 아이가 버려지고 있고, 음식물 쓰레기를 주워 먹는 걸인들이 또 있다는 사실은 분명하다.

국제 사회와의 관계도 중요하고 다른 나라에 군대를 주둔시키는 것도 장한 일이다.

그러나 대외적인 체면 때문에 흥부네 집 자식 밥 굶는 것처럼 제 집 식구를 돌보지 않는 것도 분명 잘못이다.

천 년 전 고려 시대 노래 한 구절이다‘6월 보름에 버려진 빗 같구나돌아보실 님을 따르겠나이다온갖 종류의 음식을 차려두고님과 함께 살아가고자 하는 소원을 비옵니다.

’- 고려가요 ‘동동’- 의역. 중략버려진 신세가 이빠진 빗 같아도 님을 따르겠다는 그 지극정성이 이 땅의 소외된 계층의 마음이고 형편이다.

모쪼록 그들에게 온갖 종류의 음식은 아닐지라도 최소한의 삶을 보장해 준다면, 그리고 살펴 준다면 이 땅의 백성들은 그럭저럭 살아갈 힘이라도 생길 것이다.

-차가운 11월에 얇은 이불을 덮고 누우니 슬프구나. 고운님 없이 홀로 사는 신세여- 버림 받은 자의 한탄이 깊기만 하다.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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