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위 거슬러 더 씽씽 돌아가는 보일러처럼
추위 거슬러 더 씽씽 돌아가는 보일러처럼
  • 충청타임즈
  • 승인 2010.12.27 2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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낮은 자의 목소리
강연철 음성 감곡성당 보좌신부

전국이 동장군의 기세로 꽁꽁 얼어 붙었습니다. 매서운 추위 앞에 사람들은 잔뜩 움츠려 있고, 평소보다 더 많은 에너지를 난방에 사용하고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가계부에서 연료비에 관련한 지출이 커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겨울일지라도 포근한 날씨가 계속된다면 연료비는 그만큼 줄어들 것입니다. 마찬가지입니다. 물 위에 배가 떠 있다고 할 때 배가 가려는 방향과 물의 방향이 같다면 배 위에 있는 사람은 힘이 들지 않을 것입니다. 허나, 배가 가려는 방향과 물의 흐름이 반대 방향이라면 그 배 위의 사람은 힘이 들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사회가 시끄럽습니다. 4대강, 인권, 비정규직, 대북정책, 교육정책, 복지정책, 어느 것 하나 국민적 합의가 이뤄진 것이 없고, 분열과 대립으로 이어지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 속에서 종교계 또한 가만있지 않습니다. 가톨릭 교회에서도 사회에 대한 목소리를 내고 있고, 심지어 주교회의까지 쓴 소리를 내셨으니 말입니다. 이런 현상에 대해 대부분의 신자들이 이해하고 따르지만, 어떤 경우는 노골적으로 불만을 표시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리하여 교회의 인가를 받지 않은 괴단체가 마치 가톨릭 교회의 신자를 대표하는 양 일간지에 반대의 광고를 실어 많은 사람을 불편하게 하기도 했습니다. 그들의 요구는 "교회에서는 하느님 이야기만 해 달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들은 하느님 말씀이 진정 무엇인지 알고나 요구하는 것인가? 하느님께서는 구약시대에 예언자들을 시켜 불의한 세상에 대해 정의와 공평을 선포하셨습니다. 신약에서는 예수님을 통해 하느님 사랑과 이웃에 대한 사랑을 가르치셨습니다. 그러므로 교회가 정의와 공평, 이웃에 대한 사랑을 말하는 것은 사회에 하느님 말씀 선포이고, 예수님의 가르침을 펴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사회가 정의와 공평, 사랑의 길로 나아가고 있다면, 교회는 사회에 대한 비난의 목소리를 내지 않았을 것입니다. 하지만, 지금의 사회는 교회가 나아가는 방향과 정반대의 길을 가고 있기에 목소리가 나올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추운 날씨에서는 많은 기름을 써 보일러를 돌리듯, 물을 거슬러 나아가기 위해서는 힘이 더 들어가듯, 교회가 열을 올리고 있는 것입니다.

조선시대의 학자 정약용은 이런 말을 했습니다. "시경에 있는 모든 시는 충신, 효자, 열녀, 진실한 벗 들의 간절하고 진실한 마음의 발로로서 임금을 사랑하고 나라를 근심하는 내용이 아니면 그런 시는 시가 아니며, 시대를 아파하고 세속을 분개하는 내용이 아니면 시가 될 수 없을 것이며, 아름다움을 아름답다 하고 미운 것을 밉다 하며 선을 권장하고 악을 징계하는 그러한 뜻이 담겨 있지 않은 내용의 시를 시라고 할 수 없을 것이다."

지식인이란 함께 살아가고 있는 시대의 아픔에 관해 눈감고 살 수 없는 것이며, 그들의 삶을 보고 함께 고민해야 함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동시대를 살면서 당면한 문제들을 외면한 채 사는 것은 진정한 지식인의 도리가 아님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친일파에 대해 부정적인 생각을 갖고, 그들을 비난합니다. 그들은 시대의 부정에 대해 눈감았고, 민초들의 고통을 외면했고, 동시대의 아픔에 대해 침묵하고 자신들의 사리사욕과 안락함을 추구했기 때문입니다. 이 시대를 살아가는 종교인, 지식인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잘못 가고 있음에 대해 동조하고 있거나 침묵하고 있다면 그들은 일제강점기에 일본에 동조하거나 그들의 만행에 대해 침묵했던 친일파를 욕할 처지가 못된다는 것입니다.

얼마 전 날치기 예산 통과로 결손가정 급식비가 삭감돼 가난한 아이들의 밥그릇이 눈앞에서 도둑질 당하는 꼴을 보았습니다. 이는 '도둑질 하지 말라'는 계명에 반대되는 행위입니다. 지금 눈앞에서 하느님의 계명이 짓밟히고 있는데, 누구 듣기 좋으라고 감미로운 말들로 하느님 말씀이라 포장해 앵무새 노릇을 하라는 말인가? 이는 종교를 모독하는 요구인 것입니다.

참된 지식인이라면, 참된 종교인이라면 양심상 그럴 수 없습니다. 지금 이 땅에 깔리는 어둠을 보고 촛불을 밝히며, 이 땅을 얼어 붙게 만드는 추위를 느끼고 보일러를 돌릴 줄 아는 움직임. 이것이 참된 지식인, 종교인의 몫이기에 교회는 작은 소리일지라도, 4대강에서, 용산에서, 국회 앞에서 외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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