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목련
백목련
  • 정상옥 기자
  • 승인 2006.05.17 08: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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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월의 향기
5월에는 세상이 온통 꽃향기와 초록으로 뒤덮여 출렁이고 있다.

지천에 흐드러진 꽃들은 각각의 향기를 내고 그 곁을 지나는 사람들 표정도 꽃처럼 아름답고 평온해 보인다.

이쯤이면 나도 모든 일상 잠시 뒤로 미루고 오로지 꽃향기에 취해 꽃을 닮은 고운 사람이고 싶은 마음 간절하다.

해마다 어김없이 맞는 5월이지만, 느끼는 감정은 한해 한해 다른 것이 왜일까.청순했던 젊은 날의 5월에는 지천에 피어난 꽃의 아름다움과 소중함의 가치를 몰랐었다.

어느 특정한 날, 근사하게 포장한 장미 몇 송이에 시각의 의미를 두었을 뿐, 가슴으로 그윽한 아름다움을 느끼지 못했다.

자연에서 자생하며 피어난 들꽃이나 풀꽃 따위에는 더더욱 눈길을 주지 않았고, 꽃의 대열에 놓지도 않았던 편견적인 오만이 내게 있었다.

허나, 왜일까.한해 한해 지날수록 상품으로 만들어진 화려한 꽃보다는 자연과 어우러져 만개한 꽃을 만나면 가슴 깊숙이 찡해 온다.

아린 추억을 품고 사는 것도 아니고, 특별한 사연이 있는 것도 아니건만, 예쁘다는 표현을 하기 이전에 숙연함마저 들어 눈길을 잡는다.

특히 개천가 잡풀 속에서 제비꽃을 만날 때나, 딱딱하고 푸석한 보도블록 틈을 비집고 피어난 민들레의 노랑색 꽃을 보노라면 그렇다.

세파에 시달리고 고달픈 인생살이에서 환한 미소를 잃지 않고 살아가던 소시민의 작은 꿈과 희망이 피어난 것처럼 보인다.

우리 마을 한적한 도로 한편에 허름한 포장마차에서 서너 해째 빵을 굽는 남자가 있다.

그 사람은 겨울동안 빵을 굽다가 봄꽃향기에 취할 때쯤이면 슬그머니 사라진다.

함박눈이 몹시 내리고 바람이 불던 겨울 어느 날, 그곳에 들렸다.

빵 값을 지불하려는데 앉은 채 통 하나를 가리키며 알아서 넣고 거스름돈을 챙겨가란다.

좀은 언짢았지만 시종일관 밝은 미소로 대하는 모습에 속내를 달래며 돌아섰다.

며칠 후 역시 스스로 계산을 하라기에 나도 모르게 좀은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다.

자율의식이 몸에 배지 않은 습관에 꺼름칙하다 했더니 정중한 사과를 하면서 속사정을 얘기했다.

불우했던 어린 시절를 보내고 성인이 되어 등이 굽도록 일했지만 직장에서의 산재로 인해 투병생활 두어해 후 남은 것은 하반신 마비의 몸뚱이와 세상에 대한 미움과 원망뿐이었다.

심신에 아픈 상처만 남기고 곱지 않은 인연들로 엉켜버린 세상을 버리려고 몇 번의 자살을 시도하다 얻은 깨달음이 있었다한다.

잠깐 왔다가는 이승의 짧은 삶을 운명에 순응하며 욕심을 털고 살자 했더니, 그날부터 가슴 깊은 곳에서 감사한 마음이 일고 매사가 기쁨으로 돌아오더란다.

마음 한 번 고쳐먹으니 천당과 지옥을 구별하는 삶의 분별력이 생기더라며….지금은 비록 혼자서 일어서지도 못하는 신체지만 민들레 홀씨처럼 모진 세파 헤치고 인고의 세월을 견디었더니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가정까지 이루었노라며 함박웃음을 지었다.

건강한 사지육신을 겸비하고도 고단한 세상살이 힘겹다 투정하며 무미건조한 세상사 탓으로만 돌리던 알량한 내 삶의 모습이 무한히 부끄러워지는 날들이었다.

겉으로만 화려하게 치장되고 향기 없는 조화(造花)보다는 공들여 가꿔 주지 않아도 봄이면 어김없이 피어나는 들꽃들과 돌 틈을 비집고 묵묵히 꽃을 피어내는 민들레의 강인한 아름다움을 구별하는 혜안은 언제쯤이면 더 밝아질는지.이 봄에도 어디선가 인생을 해탈한 빵집 남자의 함박 웃음진 얼굴이 들꽃으로 곱게 곱게 피어나고 있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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