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사발언대
교사발언대
  • 충청타임즈
  • 승인 2006.05.16 21: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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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땐 그랬지
   
경기도 성남에서 교환 근무를 할 때의 일이다.

청주 친정에서 돌봐주는 큰아이가 아파 학교 일과를 일찍 마치고 부랴부랴 모란역 시외버스터미널로 가 청주로 오는 직행 버스에 몸을 실었다.

아이의 몸은 괜찮은지, 퇴원을 해도 되는지 나의 걱정의 걱정은 아랑곳 하지 않고 출발을 서두르지 않는 운전기사를 바라보며 출발 시각을 초조하게 기다리고 있었다.

막 버스가 출발하려는 찰나였다.

중년 여성 네댓 명이 급하게 차에 오르더니 안 그래도 더딘 버스의 출발을 지연시키고 있었다.

맨 앞자리에 앉아있던 나는 속으로 ‘선생님들 같네’하며 팔짱을 낀 채 그 분들이 얼른 자리에 앉기를 바라며 무심히 쳐다보고 있었다.

그런데 맨 마지막에 차에 오른 분의 얼굴을 보자 선생님들 같다는 나의 생각은 “어, 선생님!”이라는 말이 되어 입 밖으로 튀어 나갔다.

“선생님, 표경숙 선생님, 아니세요?”“네. 맞는데요. 누구시더라.”“선생님, 저 선우에요. 제가 봉명초등학교 4학년 때 담임선생님이셨어요.”너무나 놀라웠다.

초등학교 4학년 때 수줍기만 하던 나에게 자신감을 심어주고 재능을 발견해 키워주신 담임선생님을 경기도 성남에서 10여 년 만에 다시 만났던 것이다.

“선생님. 저, 기억나세요? 제게 정말 잘해주셨잖아요. 너무 뵙고 싶었어요.”“그래, 기억나지. 나고말고. 그때 봉명초등학교가 개교를 해서 너희들이랑 정말 열심히 했었잖아. 그때 너 말고 누가 또 있었지?”선생님과 나는 어렴풋이 기억나는 그 시절의 추억을 회상하며 유행가의 제목처럼 그땐 그랬지 하고는 여러가지 대화를 주고받았다.

성남의 어느 상가(喪家)에 동료 선생님들과 함께 오셨다 내려가는 길이라는 선생님은 가경동의 모 초등학교에 계신다고 하셨다.

“저도 지금 4학년 담임이에요. 애들이 말을 너무 안 들어서 정말 힘들어요. 선생님도 그때 저희들이 말을 안 들어서 많이 힘드셨죠?”“아니야. 너희들은 정말 착했어. 열심히 하고 말도 잘 들었지. 지금은 정말 힘들어. 그때가 좋았지…….”말을 흐리시며 옆에 계신 다른 선생님께 그때의 우리들 얘기를 하셨다.

그렇게 이런저런 얘기를 주고받으며 어느덧 청주 터미널에 도착한 선생님과 나는 다음을 기약하며 헤어졌다.

그랬다.

그땐 정말 그랬다.

스승님의 그림자도 밟지 않으려고 노력하지는 못했지만, 적어도 선생님께 말대답을 하지 않았고, 내주신 숙제를 꼬박꼬박 했으며, 선생님을 좋아하면서도 내색을 못한 채 어려워만 했었다.

아직 경력이 짧고 지도력이 없어서 그렇겠지만 요즘의 아이들이 하는 말대꾸엔 정말로 할말이 없어진다.

학원 숙제를 해야 한다고 시간이 없다며 숙제를 조금만 내달라고 조르는 것이 다반사이다.

선생님이 건네는 물건을 한손으로 받거나 존대어를 제대로 쓰지 못하는 아이들을 보며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인지, 과연 우리도 그때 그렇게 선생님의 속을 썩였는지 반성을 하게 된다.

우리 반 아이들에게 항상 하는 잔소리가 있다.

“얘들아. 어른한테는 ‘나는’이 아니고 ‘저는’이라고 해야 하는 거야.”“나도 말 좀 하자. 어떻게 선생님이 한마디 하면 너희들은 열 마디를 하니.”시대에 따라 많은 것이 변해도 사람이 지켜야 할 도리는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아무리 자신의 의사표현을 잘하고 창의성을 중시하는 자율적인 교육이 중요하지만, 기본마저 무너지고 있다고 생각하니 씁쓸하기 짝이 없다.

오늘도 동방예의지국을 이끌 아이들을 가르칠 생각으로 쓴 소리로 하루를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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