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의 발자취를 따라서 <12>
작가의 발자취를 따라서 <12>
  • 연지민 기자
  • 승인 2010.11.25 21:3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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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병산 (청주)
한평생 청빈한 삶…위대한 '거리의 철학자'

청주출신 문인… 동서양 철학에도 조예 깊어

가난한 독신 자처… 발산공원에 문학비 건립

청주 가경동 발산공원에는 두 개의 문학비가 나란히 있다. 충북문단의 기틀을 마련한 신동문 시인과 민병산 문인의 문학비다.

시인으로 활동하다 절필로 마감한 신동문 시인. 철학자로 평생 독신을 고집하다 생을 마감한 민병산 문인. 교분이 두터웠던 두 문인의 시비는 그 자체만으로도 충북 문단의 역사인 셈이다.

민병산은 청주 출신의 문학인으로 동서양 철학에 조예가 깊었다. 동국대를 졸업한 뒤 잠시 충북신보(현 충청일보) 기자직과 청주상고 강사직에 몸담았다가 상경한 후, 1960년부터 신구문화사에서 3, 4년간 위촉직 업무를 맡아본 것이 직장 생활의 전부로 그 이후에는 줄곧 문필생활로 일관했다.

청주에서는 1957년 1월, 문우 신동문, 이설우, 화가 정창섭, 윤형근, 언론인 송경호 등과 함께 충북문화인협회(충북예총의 전신)를 결성하는 등 충북문단의 기초를 마련했다.

하지만 그의 이력 뒷면을 살펴보면 민병산의 삶은 그리 순탄하지만은 않았다.

민병산네 집은 민구관(閔舊官)댁으로 불려졌는데, 당시 충청북도 제일의 부호였다고 한다. 그의 큰할아버지는 구한말에 괴산군수와 청주군수를 지낸 민영은이었으며, 아버지도 일본 와세다대학 정경학부를 나온 엘리트였다.

그가 살았던 상당구 문화동 집은 1천평이 넘는 대저택으로 연못도 있었고, 중앙공원의 압각수가 정원수였다고 한다. 부(富)로는 남부러울 것 없는 그였지만, 집안 내력은 그가 탄탄대로의 삶을 포기한 채 평생 가난한 독신으로 살게 했는지도 모른다.

민병산 추모집에 실린 '우리 시대의 마지막 로맨티스트, 참인간 민병산'에 그의 발자취가 그대로 드러난다.

"민병산 선생은 1928년 충북 청주 땅의 큰 부자로 소문난 대지주 집안의 맏아들로 태어나셨다. 선생은 학창 시절부터 많은 책을 탐독하며 자기 응시의 내향적 세계로 몰입해 들어가기 시작했다. 계속되는 독서와 사색과 성찰과 관조에서 얻어진 그의 글과 언행은 뭇 사람들의 옷깃을 여미게 하였으니, 그의 일생은 우리들이 긍정적으로 말할 때의 선비 정신, 바로 그것으로 일관된 삶이었다. 선생은 늘 맑은 정신으로 자신을 살피며 부끄럼 없는 생을 영위하려고 자세를 가다듬어왔다. 사치를 극도로 멀리했으며, 행동을 조심하며, 겸손한 자세를 잃지 않았으며, 자신에게는 까다로우리만치 엄격하면서도 타인은 따뜻하게 대하는 인정 많은 깨끗한 선비였다. <중략> 거리의 철학자로, 그가 좋아하던 키에르케고르와 같은 독신자로, 우리나라 제일의 위인전기 장서가로, 문필가로, 서예가로, 바둑 애호가로, 그리고 칼국수 집과 전통 차와 목각의 집을 두루 어루만지며 소요하던 인사동의 대부代父. 헐벗은 사람들, 힘없고 지친 사람들을 조용히 위로해 주던 민병산 선생은 이 시대의 마지막 로맨티스트였다."

이후 역사인물 탐구에 매진한 민병산은 1960년 '새벽'에 글을 투고하며 그의 역사관을 보여줬다. 나폴레옹의 인생관, 소크라테스, 공자, 토마스 제퍼슨, 원효 등을 '새벽', '세대', '여성중앙', '자유공론', '금성출판사', '신구문화사' 등에 백여 편의 전기물을 발표했고, 출간했다.

가난을 선택하고 철저하게 문인의 자세로 살다간 민병산 선생은 어쩌면 역사 속에서 개인의 삶을 가장 인간답게 살다간 분이지 않을까.

◈ 민병산(1928-1988)은 누구

청주 출신으로 철학·역사·문학·예술·과학 등 다방면에 걸쳐 해박한 지식을 갖춘 문인이다.

충북신보사(현, 충청일보) 편집국 기자, 청주상업고등학교(현, 청주대성고등학교) 강사, 문우였던 시인 신동문의 권유로 신구문화사에도 잠깐 근무했으나 평생을 독서와 집필로만 일관했다.

갑부의 아들로 태어났지만 청빈한 삶을 자처하며 가난하게 살았다.

1988년 9월 19일 회갑을 하루 앞두고 타계했다. 저서로는 민병산 산문 유고집 '철학의 즐거움'이 있다.

지난 2000년 12월 청주시 발산공원에 수필 '으능나무와의 對話' 일부분을 새긴 민병산문학비가 세워졌다.

청주 출신으로 철학·역사·문학·예술·과학 등 다방면에 걸쳐 해박한 지식을 갖춘 문인이다. 충북신보사(현, 충청일보) 편집국 기자, 청주상업고등학교(현, 청주대성고등학교) 강사, 문우였던 시인 신동문의 권유로 신구문화사에도 잠깐 근무했으나 평생을 독서와 집필로만 일관했다. 갑부의 아들로 태어났지만 청빈한 삶을 자처하며 가난하게 살았다. 1988년 9월 19일 회갑을 하루 앞두고 타계했다. 저서로는 민병산 산문 유고집 '철학의 즐거움'이 있다. 지난 2000년 12월 청주시 발산공원에 수필 '으능나무와의 對話' 일부분을 새긴 민병산문학비가 세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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