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의 나라 스리랑카(33) 가난한 삐끼
빛의 나라 스리랑카(33) 가난한 삐끼
  • 충청타임즈
  • 승인 2010.11.25 21: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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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승범의 지구촌풍경
윤승범 <시인>

가난하다고 해서 사람의 영혼까지 누추한 것은 분명 아닙니다. 그러나 주린 배에 채울 한 끼의 밥그릇을 위해 정신의 가치를 버려야 하는 모습을 보는 것은 슬픈 일입니다. 그럴 때면 미안한 마음까지 갖게 됩니다.

가난한 나라에는 속칭 '삐끼'들이 많습니다. 호객을 해서 밥을 먹는 사람들. 그렇게 사는 것은 어쩔 수 없다 해도 호객을 하며 사기를 치고 부당한 이득을 얻는 삐끼들 때문에 전 세계에 분포한 무수한 삐끼의 집단이 단체로 욕을 얻어 먹는 거겠지요.

스리랑카에서 삐끼를 만났습니다. 아주 점잖게 접근을 했습니다. 자기는 오늘 휴일이다. 회사 차가 있는데 원하는 곳을 안내해 줄 수 있다. 물론 무료다.

자기는 단지 한국에 대한 호기심이 많아서 그렇다. 같이 가기를 원한다. 감언이설은 충분히 달콤했습니다.

달콤한 것은 독이라 배웠거늘 너무 달콤해서 유혹에 빠지고 싶었습니다. '설마 죽이기야 하겠느냐. 더구나 물가 싼 이곳에서 저이가 바라는 대가가 얼마나 되겠는가' 싶어서 따라 나섰습니다.

현지의 헌털뱅이 버스만 타다가 같은 헌털뱅이지만 명색이 자가용 승합차를 타니까 헌털뱅이일 망정 안락했습니다. 시장도 가고, 해안가도 가고, 어부들이 그물을 건져 고기를 잡는 것도 구경을 하면서 한나절을 보냈습니다. 그 와중에 삐끼는 전혀 속내를 드러내지 않고 순진한 안내자의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점심 때가 됐습니다. 스리랑카 전통 음식을 먹고 싶다고 했더니 식당을 안내합니다.

스리랑카 여행 내내 질리게 먹었던 전통 음식이 나옵니다. 그러고 보니 스리랑카는 음식의 종류가 퍽이나 적었습니다. 두어 시간 기다려 천천히 나오는 부실한 점심을 먹고 조금 더 구경을 하고 '휘발유 값은 줘야겠다' 생각을 하고 있는데 돈을 달랍니다. 줬습니다. 다음날 다시 오겠답니다. 안 와도 된다고 해도 굳이 오겠답니다.

다음날 아침 일치감치 문 앞에서 기다리고 있습니다. 손바닥만한 동네라 도망갈 곳도 없고 할 것도, 갈 곳도 없어서 또 따라 나섰습니다. 작은 봉지를 부스럭거리더니 아주 작은 돌멩이 두어 개를 꺼냅니다. 이 동네 유명한 보석이랍니다. 내가 보기엔 그저 반짝이는 돌로밖에는 안 보였습니다.

그러더니 보석상에 가서 구경을 하잡니다. 미안한 김에 갔습니다. 보석은 많은데 허름했고 가격도 저렴했습니다. 몇 개 사 줬습니다. 자기는 아무 이익도 받지 않는답니다. 그저 이렇게 같이 있어 줘서 고맙답니다.

그렇게 이틀을 보내고 돈을 달랍니다. 안타깝게도 그가 요구한 금액은 너무 초라했습니다. 한 젊은 사내의 이틀치 용돈으로는 너무 왜소했습니다. 돈을 건네면서 생각을 합니다.

가난한 나라의 경제가 가난한 백성의 자존심을 짓밟고 있구나. 똑같은 인간임에도 불구하고 할 일이 없어도 주린 배는 채워야 하니 저런 서러움을 자처하는구나 싶었습니다.

스리랑카의 바다는 예뻤습니다. 그러나 밤 여덟 시만 되면 캄캄한 도시가 되고 돈을 쓰고 싶어도 쓸 곳이 없습니다. 아름다운 나라의 아름다운 사람들 사이에서 나는 한갓 부랑자처럼 어슬렁거립니다.

아름다운 풍경이 결코 주린 배를 채워주지 못합니다. 안빈낙도(安貧樂道)를 그리워하지만 주린 창자가 채워지지 않은 낙도(樂道)란 결코 아름답지 않다는 슬픈 사실을 배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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