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대지 마라
나대지 마라
  • 충청타임즈
  • 승인 2010.11.16 0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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낮은 자의 목소리
강연철 <음성 감곡성당 보좌신부>

중학생 복사(미사 때 신부님을 돕는 평신도 봉사자) 아이에게서 문자가 왔습니다.

"신부님! 저 복사 언제예요"

학원에 다니는 중학생들은 시험 보기 한 달 전부터 시험기간이기 때문에 토요일 저녁이 되어도 학원에 붙잡혀 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토요일 저녁에 있는 복사단 회합에 나올 수가 없습니다. 대신 제게 문자로 자기 복사 당번이 언제인지 물었던 것입니다. 문자를 받은 때가 바쁜 때였기 때문에 최고 간단한 답을 보내게 되었습니다. 새벽미사 복사라는 의미로 'ㅅㅂ'이라고 보냈습니다. 나름 아이들과 소통한다는 생각에 그 또래 아이들이 사용하는 방식으로 답신을 보낸 것입니다. 그런데 아이에게서 뜻밖의 답변이 왔습니다. "신부님! 신부님이 어떻게 그런 말을 하실 수 있어요" 저는 오히려 아이가 왜 그런 반응을 보이나 이상했습니다. 그런데 나중에 알고 보니 'ㅅㅂ'은 휴대폰 문자나 인터넷 상에서 많이 사용하는 대표적인 욕 문자였던 것입니다. 제대로 알지도 못하면서 괜스레 흉내만 냈다가 아이에게 큰 실수를 한 경험이었습니다.

우리는 삶 속에서 그와 유사한 경험을 수 없이 하고 반복하곤 합니다. 제대로 잘 알지 못하면서 이야기하게 되고, 제대로 잘 알지 못하면서 반응을 보이게 됩니다. 그 반응이 나 혼자만의 오해로 끝난다면 큰 문제는 아닐 수 있습니다. 하지만, 오해가 진실인 양 증폭되어 큰 무리를 만들어 내고, 큰 힘을 행사하게 된다면 문제는 달라집니다. 많은 경우 일반 시민들은 어떤 현상에 관하여 깊은 통찰력을 가지기보다는 드러나는 현상에 관한 단편적인 지식만을 가지기 쉽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그들의 판단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는 것은 문자화된 신문기사와 편집된 방송보도입니다. 그러므로 언론은 도덕적이고 공정해야 하는 것인데, 그렇지 못하고 편파적인 보도를 일삼거나 군중을 선동하여 소기의 목적을 달성하려 든다면 사회적으로 큰 해악이 되는 것입니다.

요즘 저는 수요일 목요일 저녁을 기다립니다. SBS 드라마 '대물' 보는 재미에 푹 빠져 있기 때문입니다. 기성 정치인들의 실망스러운 모습만 보다가 가상의 드라마이긴 하지만, 진정 국민을 사랑하는 정치인을 볼 수 있어 마음이 흐뭇합니다. 국민이 원하는 이야기를 하고, 국민이 원하는 행동을 보여주는 드라마 속의 서혜림(고현정분)을 보면서 가슴이 뻥 뚫리는 기분이 듭니다. 2주 전인가 국민 토론회 장면에서는 '국민이 어버이이시니, 국민이 낳고 길러준 정치인이 잘못하면 회초리를 들어 달라'는 이야기를 했습니다. 저는 그 장면을 보면서 '저런 마음을 가진 국회의원, 저런 마음을 가진 대통령의 국민은 얼마나 행복한 국민일까' 생각했습니다. 참신한 비유로 국민을 일깨우고 참여케 만드는 모습에 놀랐습니다. 그런데 다음날 인터넷 기사를 보면서 저는 한 번 더 놀랐습니다. 이미 그와 똑같은 말을 고 노무현 대통령이 2003년 어버이날에 발표하였음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그 소중한 마음을 모르고, 말 실수만 크게 부풀려 보도하던 언론과 뭔지 잘 알지도 못하며 동조했던 우리들의 모습이 떠올랐습니다. 그때 우리는 그 사람의 소중한 마음을 제대로 알지 못하면서 못된 언론의 선동질에 목소리를 보태다가 참 귀한 사람을 잃고 말았습니다.

한동안 잊혔던 봉하마을이 다시금 시끄러워졌습니다.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의 묘소에 어떤 사람이 인분을 투척하는 사건이 발생했기 때문입니다. 그 사람은 오물을 투척하면서 '친북 좌파세력들이 전교조·전공노 같은 빨갱이 세력들의 생성을 도와서 청소년들의 정신을 세뇌시키고, 국가 정체성을 혼돈에 빠뜨렸다'는 유인물도 살포했다고 합니다. 국가 정체성의 혼돈이라. 그것은 오히려 국사를 왜곡하고 국사 교육을 하찮게 여기는 이들이 여기에 해당되는 것 아닌가 단편적인 흑백 논리와 행동으로 눈살을 찌푸리게 만든 그에게 한마디 하고 싶습니다.

"나대지 마라! 그러다 더 큰 것 잃는 수가 있으니!" 좁은 생각으로 나대지 말고, 큰 틀에서 바라보고 행동하는 이들이 많이 나오길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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