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추(晩秋)의 단상
만추(晩秋)의 단상
  • 문종극 기자
  • 승인 2010.11.07 2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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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논단
문종극 편집국장

연방 "덥다 더워"를 버릇처럼 내뱉었던 여름이 어느새 까마득히 멀어지고 그 여름을 밀어내면서 슬금슬금 다가온 가을마저 어느 결에 깊어졌다. 그야말로 만추(晩秋)다.

이번 주말도 충청지역 유명산이 오색단풍을 즐기려는 사람들로 발디딜틈이 없었다. 속리산, 월악산, 계룡산, 칠갑산, 충주호 주변 등은 물론이고 도심 주변의 작은 산마저 온통 단풍인파다.

평소 그다지 산행을 즐기지 않았던 방콕(방에만 콕 박혀 있는 사람)들도 절정의 가을 정취에 이끌려 집 밖으로 나올 수밖에 없었던 모양이다. 어느 산이나 인산인해다.

그래서 그런지 '만산홍엽(滿山紅葉)' 단풍을 만끽하는 만추지정(晩秋之情)의 사람들 표정은 모두가 시인이다. 금방이라도 시 한 수 멋드러지게 지어낼 것 같다.

/시몬, 나무 잎새 저버린 숲으로 가자 /낙엽은 이끼와 돌과 오솔길을 덮고 있다 /시몬, 너는 좋으냐? 낙엽 밟는 소리가~로 시작되는 시가 있다.

프랑스의 소설가이자 시인인 '레미 드 구르몽(Remy de Gourmont)'의 시 '낙엽(원명 La Feuille)'이다. 시를 잘 모르는 사람들도 깊은 가을 수북히 쌓인 낙엽을 밟을라치면 전문은 아니지만 한구절 읊조린다.

/시몬, 너는 좋으냐? 낙엽 밟는 소리가/

구르몽의 '낙엽'은 낙엽을 시의 제재로 삼아 인생에 대한 단상을 상징적으로 노래한 것이지만 만추에 흠뻑 취해 있는 사람들은 그저 가을과 낙엽을 노래하는 데 안성맞춤으로 이 구절을 읊조리곤 한다. 그것도 아주 멋스럽게 애송한다.

문뜩 수년전에 가봤던 북쪽의 뛰어난 절경, 금강산이 궁금해진다. 그곳의 가을도 깊어지고 있을 게다.

계절마다 독특하고 매혹적인 장면을 연출한다고 해서 계절따라 다른 이름을 가지고 있는 금강산. 봄에는 '금강산(金剛山)', 여름에는 '봉래산(蓬萊山)', 겨울에는 '개골산(皆骨山)'이라 불린다.

그리고 가을에는 '풍악산(楓岳山)'으로 불린다. 붉게 타는 단풍이 바위, 소나무와 조화롭게 어울려 절경을 이룬다는 것이다.

지난 1998년 금강산관광이 시작되면서 한국 분단 50여 년 만에 남한의 주민들에게 개방된 최초의 북한관광지이기도 하다.

가을 금강산 '풍악산(楓岳山)'의 만추는 어떠했을까.

그곳에서 지난 5일까지 제18차 이산가족 상봉행사가 열렸었다. 60년 만의 짧은 만남을 뒤로하고 다시 긴 이별에 들어갔다.

이들에게는 금강산의 절경이 눈에 들어오지 않았을 것이다. 풍악산의 '만산홍엽' 대신 마음속 깊이 애수(哀愁)만이 그득했을 것이다. 떠나오면서 하염없이 서글퍼지는 슬픈 시름에 젖었을 것이다.

남한의 누구든 한 번쯤 가고 싶어 하는 금강산, 그것도 가을 금강산에서 만추지정을 느끼지 못하고 그곳에 애수를 담고 왔을 터이다.

1985년 처음 시작된 이산가족상봉은 그동안 총 18차례 열렸다. 그러나 재상봉은 한 번도 이뤄지지 않았다. 이번에 상봉한 이산가족들도 기약없는 이별에 들어간 셈이다.

그러니 어찌 이들의 눈에 풍악산이 들어왔을 것인가. 오히려 풍악산의 절경이 이들의 마음을 더 우울하게 했을 수도 있다. 깊은 애수에 빠지게 했을 것이라는 생각이다.

생존 이산가족 8만3000여명 가운데 70세 이상 고령자가 전체의 77%나 차지한다. 매년 수천 명이 이산의 한을 풀지 못하고 유명을 달리하고 있다. 이들이 마음놓고 북의 가족을 만나고 그들과 함께 금강산에서 만추를 만끽할 수 있도록 정부가 특단의 조치로 '수시상봉'을 이끌어주길 촉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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