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협, 농정의 주체로 거듭나야
농협, 농정의 주체로 거듭나야
  • 권혁두 기자
  • 승인 2010.10.25 23:3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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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논단
권혁두 국장 (보은 옥천 영동)

이명박 대통령은 지난 18일 '일부 중간상의 독과점과 담합'을 지적하며 농수산물 유통구조를 개선하겠다고 밝혔다. 1주일 만인 24일 정부와 한나라당은 내년부터 이번에 파동을 일으킨 배추와 무 생산량의 최대 50%까지 사전에 매입하는 방안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지역농협과의 사전계약을 통해 매입해 배추값 폭등 등의 재발을 막겠다는 것이다. '사후약방문(死後藥方文)'의 아쉬움이 크지만 어쨌든 농업인들에게는 반가운 소식이다. 이번 배추파동에서 산지에서 밭떼기로 포기당 300원에 팔린 배추가 소비자에게는 1만5000원에 판매된 사례까지 드러났던 만큼 농수산물 유통구조 개선에 대한 대통령의 의지가 결실에 이르기를 기대해 본다.

그러나 정부 방침을 전해들으면서도 답답증을 벗지못하는 것은 이 같은 방침의 주체가 농협이 아니라 정부라는 점 때문이다. 계약재배 확대를 위한 사업예산은 물론 추진기구도 농협이 떠맡는데도 결정과정에는 대통령의 지시와 정부의 하명만이 있을 뿐이다. 대통령이나 정부의 의지와 상관없이 한국 최대 농업생산자조합인 농협이 스스로 먼저 내놓아야할 대책 아닌가. 거대 농업인조직이자 180조원이 넘는 은행자산과 28조원의 보험자산을 소유한 공룡 금융조직이 여전히 부처의 산하기관에 머물고 있는 초라한 위상이 확인되는 대목이다.

밭떼기로 농산물을 매집하는 산지수집상들이 이번 배추파동의 공범으로 몰려 한꺼번에 매도를 당했지만 일각에서는 이들을 '필요악'이라고 옹호한다. 농산물은 예측하기 어려운 가격 변동의 위험을 가지고 있다. 농산물 판매유통사업이 어려운 이유다. 밭떼기를 하는 수집상들은 이런 위험부담을 들어 자신들의 입장을 변호한다. 방식이 문제지만 농협이 해야할 기능을 대신하는 것 아니냐는 항변도 내뱉는다. 생산자들에게 최소한의 수익은 보장해주는 것 아니냐는 논리다. 농협의 저조한 계약재배 실적과 비교할 때 완전한 궤변만은 아니다. 농협이 사전계약을 통해 생산자에게 일정가격을 보장해주는 계약재배 물량은 전체 농산물의 10%도 안 된다고 한다. 심지어 이번 국감에서는 농협이 배추를 계약재배한 사례가 한 건도 없다는 질책이 나오기도 했다. 영세사업자가 사채업자에 운영자금을 빌려쓰듯 농업인들이 밭떼기 매집상들에 의존할 때, 농협은 수익성 좋은 안정적 판매사업에만 주력한 셈이다.

이 같은 안정적 경영으로 얻은 과실이 농촌에 온전하게 재투입됐다면 그나마 다행이겠지만 실상은 '천만의 말씀'이다. 지난 2005년 이후 농협이 직원들에게 나눠준 성과급은 1조5575억원에 달한다. 같은 기간 직원자녀 학자금으로 1308억원, 명예퇴직금으로 1972억원이 지급됐다. 임원들 평균 연봉은 2억원을 넘는다. 신용불랑자로 몰려 정부 지원도 받지못하는 농업인들이 숱한데도 농협의 호화판 돈잔치는 해가 거듭될수록 기름져간다.

윗물이 이런데 아랫물이라고 기특할 리 없다. 지역농협들도 대형마트 유치 등 수익사업에 치중하며 돈벌이에 급급하는 것이 현실이다. 많이 남는 사업을 한 지역조합은 우수조합으로 선정돼 인센티브를 누린다. 이래서 이번 배추파동은 일본과 비교된다. 일본 같았으면 농촌현장에 포진한 지역농협들이 배추시장 수급불안과 시장의 이상현상을 즉각 중앙에 보고해 농협이 선제적 대응에 나섰을 것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대형 유통업체가 이상기후에 대비해 일찌감치 농산물 수입에 나선 것과 비교할 때 사전 예측을 못하고 있다가 시장에 당한 농협의 무심은 비난받아 마땅하다.

농협은 경제와 신용사업을 분리하는 등 사업구조 개편을 추진 중이다. 경제사업 활성화를 취지로 내세우고 있지만 현재 농협의 행보로 봐서 구호에 그칠 공산이 높다. 개편과 개혁에 앞서 자신들이 누구인지 정체성부터 회복하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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