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대운동회, 무엇을 남겨주어야 할까?
가을대운동회, 무엇을 남겨주어야 할까?
  • 충청타임즈
  • 승인 2010.10.25 23: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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낮은 자의 목소리
강연철 <음성 감곡성당 보좌신부>

저는 시골의 작은 초등학교를 다녔습니다. 제가 학교다니던 시절만 해도 초등학교 운동회 날짜는 특별한 일이 없는 한 추석명절 다음날이었습니다. 그랬기 때문에 운동회날에는 맛있는 먹을거리가 많았고, 가족과 가까운 일가 친척까지, 오시는 분들도 많았습니다. 그야말로 아이들의 잔치가 동네 어른들의 잔치였습니다. 한 달여 운동회 준비를 한 아이들은 부모님과 일가 친척들 앞에서 맘껏 뽐내며 보여드릴 수 있다는 기대에 더 설레고 즐거웠지 싶습니다. 그와 같은 초등학교 시절의 운동회에 대한 좋은 추억 때문에라도, 저는 가능하면 운동회를 찾아가 보려고 애를 쓰고 있습니다.

운 좋게 지난 부임지 증평도 그렇고 현재 부임지 감곡도 그렇고 아직까지는 정겨운 시골의 느낌이 남아 있는 곳입니다. 어린 시절  느꼈던 시골 운동회의 향수를 느낄 수 있는 곳이었습니다. 작년에는 수녀님과 함께 운동회에 갔었는데, 아이들이 간절히 부탁을 하는 통에 수녀님은 머리수건을 휘날리며 운동장을 몇 바퀴 뛰기도 했습니다. 아이들이 '치마입은 아줌마와 달리기'라는 지시 내용을 뽑았는데, 운동회에 치마입고 온 아주머니가 거의 없었습니다. 아줌마는 아니더라도 아쉬운 대로 치마를 입으셨으니 수녀님은 아이들 손을 잡고 달려야 했던 것입니다.

올해도 운동회가 열린다 하여 초등학교에 예고 없이 찾아 갔습니다. 성당에서만 보다가 성당 신부를 학교에서 보게 되니 신기했던지 평소 인사만 하고 도망가던 녀석들까지 달려와 친한 척을 했습니다. "신부님! 어떻게 오셨어요?", "왜 오셨어요?" 저도 반기는 아이들이 고마워 "어떻게 오긴. 너희들 보러 왔지! 아이스크림 사 줄까?"하며 먹을 것을 사주기도 했습니다. 어떤 아이는 제 곁에 붙어 다니기도 했는데, 그 아이에게 친구들이 "너네 아빠야?"하고 묻기도 했습니다. 또 어떤 아이는 "신부님! 오늘은 왜 그렇게 멋을 내고 오셨어요?"하고 물었습니다. 사실 멋이라고 해 봤자 로만칼라에 평소 잘 입지 않는 양복을 걸쳤을 뿐인데 아이들은 어색했던가 봅니다. 명색이 성당의 신부인데, 꾀죄죄한 모습으로 가면 창피해 할까 봐 나름 신경을 쓰긴 했던 것입니다. 이런 것이 아빠의 마음일는지 모르지만….

아이들의 해맑은 웃음이 변하지 않았듯이, 운동회의 내용 또한 20년 전이나 크게 다르지 않았습니다. 하늘에는 만국기가 휘날리고, 청군백군 응원전이 펼쳐지고, 엄마가 싸 오신 맛있는 음식을 먹을 수 있는 점심식사 시간이 있었습니다. 마지막에는 이어달리기를 하는데, 배턴을 놓쳐 원성을 듣는 주자가 있는가 하면, 역전의 용사가 영웅으로 탄생하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한편으로 과거에는 볼 수 없었던 변화된 낯선 풍경도 눈에 들어왔습니다. 자기 자식들이 나오는 시간이면 사진기를 들이대는 엄마들의 모습이었습니다. 엄마들은 달리기 트랙 안이건 말건, 경기에 방해가 되건 말건 사진기자인 양 달려들었습니다. 공연 전체의 분위기가 망쳐지건 말건 내 자식의 예쁜 모습만 담으면 된다는 식으로 무질서하게 행동하는 모습이었습니다.

자식 사랑의 엄마 마음을 욕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하지만, 아이들을 위하는 길, 아이들에게 부끄럽지 않은 부모가 되는 길이 어떤 길일까 생각해 볼 일입니다. 당장 눈에 보이는 예쁜 모습을 사진에 담아 주는 것도 좋고, 기죽지 말라고 멋진 옷을 입히고, 맛있는 것을 사 먹이는 모습도 나쁘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겉이 번지르한 만큼 내실도 채울 수 있도록 균형을 잡아주는 것. 그것이 부끄럽지 않은 부모의 모습이 아닐까 싶었습니다.

먼저 부모들이 선생님 말씀을 존중하는 예의를 보이고, 다른 사람을 배려해 질서를 지킬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예절과 질서가 바로 서 건강하게 웃을 수 있는 사회를 물려주는 것이 아이들을 위한 보다 큰 선물이 아닌가 생각했습니다. 아이들의 해맑은 웃음은 변함이 없지만, 어른들의 어둡게 변화된 모습으로 어수선해지는 운동회를 다녀오며 느낀 생각을 나눠 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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