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 아들을 위한 가장의 죽음
장애 아들을 위한 가장의 죽음
  • 권혁두 기자
  • 승인 2010.10.18 21: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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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논단
권혁두 국장 (보은·옥천·영동)

올 국정감사에도 어김없이 공직의 일탈이 다양하게 드러났다. 전체 직원의 40%가 연봉 1억원을 넘는 한국거래소는 직원 1인당 연차휴가보상금으로 600만원씩을, 초·중·고교에 다니는 직원 자녀에게 사설학원비로 연간 120만원씩을 지급했다. 부채가 17조원이 넘는 가스공사는 당기순이익 2380억원을 냈다면서 주주들에게 배당금 559억원을 지급했다. 배당의 최대 수혜자는 대주주인 정부와 한전이다. 서민 연료값 인상을 통해 이룬 부끄러운 흑자로 제 식구를 챙긴 것이다.

수협은 직원 자녀 학자금 전액을 무상으로 지원하면서도 정작 농어민 대학생 자녀에게는 까다로운 대출기준을 들이대고 있다. 지난해 직원자녀 학자금 무상지원과 월차수당 등으로 모두 272억원을 퍼부었다. 수협은 국민의 혈세인 공적자금 1조1581억원이 투입된 기관이다. 어민들의 빚은 가구당 3500만원이고 파산을 신청한 어민만도 1284명이다. 농협도 지난 2005년부터 2009년까지 직원 성과금비 명목으로 1조8513억원을 집행했다.

국가보훈처는 체육행사에서 배구경기를 하다 다친 직원, 문지방에 발이 걸려 넘어져 다친 직원 등을 국가유공자로 지정했다. 전체 직원 가운데 42명이 국가유공자로 지정됐으나 순수 근무 유공자는 3명(7%)에 불과하고 체육대회나 출퇴근 때 다친 유공자들이 70%에 달한다. 이들은 매년 수십만원의 수당을 지급받고 자녀들이 대학 졸업 때까지 학자금을 지원받는 등 다양한 혜택을 누린다.

올해는 복지기관도 이 대열에 가세했다. 결핵협회는 올해 휴대폰 전화료, TV시청료, 기관장 차량유지비, 인터넷사용료 등 실질적 관서운영비를 지난해보다 3배 늘어난 5억2000만원으로 편성해 운영하다 질타를 받았다. 재원은 십시일반의 국민 정성이 담긴 크리스마스 씰 모금액이다. 국민성금을 관리하는 사회복지공동모금회의 한 지회 간부는 유흥주점 등에서 법인카드를 3300만원이나 긁어댔다.

잘 배우고 사회에 덕망도 쌓아 공동모금회 간부가 된 그분과 달리 A씨는 전과 10범이다. 강도까지 저질러 30대 중반까지 교도소를 제집처럼 드나들었다. 그가 정신을 차린 것은 50이 다된 15년전, 남의 집살이를 하며 이곳저곳을 전전하던 B씨를 만나고서였다. 결혼한 두 사람은 닥치는 대로 일하며 새로운 인생을 일궈나갔지만 배운 것 없는데다 전과자 낙인까지 찍힌 남편과 남의 집살이로 전전한 탓에 호적은커녕 주민등록도 없는 아내가 얻을 일은 하루 일당 버는 데 급급한 일용 노무직밖에 없었다.

부부 사이에 태어난 아들은 왼팔이 마비된 지체 장애아였다. 온전치 않은 아들을 돌보며 생계를 꾸려야 했지만 부부에게 세상은 호의적이지 않았다. 일이 없는 날이 잦아지고 하나밖에 없는 아들의 장래에 대한 암울함에 짓눌린 A씨는 술로 처지를 달래는 날이 늘어났다. 아들에 대한 정부나 구호기관의 지원을 알아봤지만 멀쩡하게 부모가 살아 있는 상황이 결정적 장애가 됐다.

이제 50대 초반인 A씨는 지난 6일 서울의 한 공원에서 목매 자살한 시체로 발견됐다. 그는 "일자리 구하기가 너무 힘들다. 내가 없어져 아들이 정부 혜택이라도 제대로 받았으면 좋겠다"는 유서를 남겼다. 아들과 자신의 입에 풀칠을 하기 위해 하루하루 아등바등해야 하는 부인은 남편의 장례조차 치르지 못했다.

부부가 발악하듯 살아도 최소한의 인간적 삶에 도달하지 못하는 인생들이 도처에 널린 것이 아직까지의 이 나라의 저변이다. A씨는 장애 아들의 미래를 위해 자신의 목에 새끼줄을 걸면서 무슨 생각을 했을까. 후안무치한 혈세잔치판에 던지고 싶은 질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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