깊어가는 가을
깊어가는 가을
  • 충청타임즈
  • 승인 2010.10.18 21: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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낮은 자의 목소리
최현성 <용암동산교회 담임목사>

지난주 우리는 기쁨과 감사로 추수감사예배를 드리고, 오후에는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자연으로 나가 온 성도가 함께하는 단풍예배를 드렸습니다. 어릴 때 표현으로는 소풍입니다. 예나 지금이나 소풍은 우리에게 설렘으로 다가옵니다.

전교인 단풍예배!

혼자 생각하기를 '이름도 참 잘 지었다'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 말속에 여러 가지 정감들이 묻어나는 느낌이 드니까요?

아이에서 어른까지 모두 하나가 되는 잔치의 날, 혹은 '제의 날'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시골의 작은 학교이지만 널따란 운동장과 그곳을 말없이 지키고 있는 나무들, 그 나무들이 오색찬란한 옷으로 갈아입고 맘껏 맵시를 뽐내고 있습니다. 노랑, 빨강, 갈색, 푸르름으로 옷 입은 그들을 보면서 '아무리 인간이 비싸고 좋은 옷으로 치장을 한들 거기에 비교할 수 있으랴!'하는 생각이 듭니다.

맘껏 웃는 성도들의 모습은 아름다움 그 자체였습니다. 드높은 하늘과 떠가는 뭉게구름, 내리쬐는 햇살과 간간이 부는 바람, 갈색으로 물들어 황금물결을 이루고 있는 벼이삭들과 어우러져 우리들을 이야기 속으로 이끌어 한마음이 되게 하고 있습니다.

축구! 이것은 감동이었습니다.

초등학교 어린이부터 70이 넘은 어른들까지 그야말로 60년의 세월을 뛰어넘어 맘껏 하나님이 주신 육신과 마음을 부대끼는 시간이었습니다. 운동장이 떠나갈 듯 소리 소리 질러가며 손주를 부르고, 할아버지를 부르고, 누구하나 힘들고 지친 기색 없이 서로를 격려하며 기쁨으로 운동장을 누비는 온 성도들의 모습은 하나 되기에 충분한 것이었습니다.

아이들이 낙엽을 모아서 던지며 해맑게 웃는 모습들, 부담 없이 아이들이 우루루 몰려 다니며 뛰어노는 모습들, 새끼를 엮어서 돌리는 모습들, 나무그늘에 앉아 살아가는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들, 옹기종기 모여 앉아 싸온 음식을 나누며 웃는 모습들, 이 모든 모습들 속에서 우리가 살아있음을 깨닫게 됩니다. 시골길을 오가면서 느꼈던 감동을 이렇게 적어보았습니다.



이 가을에 숲 속으로 난 좁은 산길을 걸어 보라!

완전하게 단풍은 들지 않았지만 부끄러운 모습으로 살짝 홍조를 띠운 단풍이 너무 마음에 와 닿지 않는가? 많지는 않지만 떨어진 낙엽의 부스럭거림이 느슨했던 마음을 긴장가운데로 이끌어 주고 있지 않는가? 조금은 어설프지만 완전한 것보다 더 보기에 좋다.



이 가을에 물줄기를 따라 물길을 걸어 보라!

여름처럼 시원한 느낌이나 겨울처럼 찬 느낌은 없지만 고요하게 흐르는 맑고, 깨끗한 물에 흠뻑 빠져들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는가 홍수로 넘실거리는 냇가보다, 가물어 바짝 타들어가는 실개천보다, 꽁꽁 얼어붙어 물소리조차 들리지 않는 하천보다 훨씬 더 보기에 좋다.



이 가을에 논과 밭둑으로 좁게 늘어진 들길을 걸어 보라!

농부들의 피와 땀의 결실인 황금들녘의 모습이 마음을 풍요롭게 해주지 않는가? 푸른 줄기와 잎에 빨갛고, 희고, 연분홍으로 곱게 물든 코스모스의 하늘거림이 마음을 흐뭇하게 만들지 않는가, 길옆에 변함없이 자라고 있는 이름 모를 잡초의 푸르름이 마음을 푸르게 해주지 않는가 세상의 다른 어떤 값진 것들보다 훨씬 더 보기에 좋다.



산길을, 물길을, 들길을 거닐며 하늘을 바라보라!

푸르고 푸른 하늘이 우리의 마음을 더 높고, 더 넓게 만들어 주지 않는가? 하늘에 떠가는 흰구름이 어수선하고 복잡한 우리의 마음을 깨끗하게 해주지 않는가?



아동문학가인 안데르센은 "여행은 나에게 있어서 정신이 도로 젊어지는 생이다."라고 말한 것처럼 전교인 단풍예배를 통해 하나님을 향한 우리들의 마음이 점점 더 활력을 느끼고 있음을 깨닫게 됩니다.

함께한 모든 이들의 모습을 바라보면서 사는 것이 바쁘고 분주하지만 잠깐 시간을 내어 산길이 되었든지, 들길이 되었든지, 물길이 되었든지 한번 걸어보면서 깊은 숨 몰아쉬고, 가슴에 맺힌 상처나 복잡한 생각들을 자연 속에 묻어 버리고, 좋은 기분으로 생활하길 소망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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