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태적 시각으로 문명 읽기
생태적 시각으로 문명 읽기
  • 충청타임즈
  • 승인 2010.10.14 21: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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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기고
김태종 <생태교육연구소 소장>

내가 어렸을 때 들은 '앞으로 변소에도 전깃불을 켜고 사는 날이 올 것'이라는 말과, '고속도로라는 것이 생겨서 자동차가 시속 120킬로미터 이상으로 달리게 될 것'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앞의 말은 초등학교 때 담임선생으로부터, 뒤의 말은 중학교 때 교감선생으로부터 들었는데, 그 말을 듣던 나와 모두는 누구도 그 말을 믿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된다면야 오죽이야 좋겠는가마는 세상에 이런 일은 있을 수 없다는 것이 우리의 판단이었고, '지식인은 뻥을 쳐도 저런 식으로 치는구나' 하고 생각한 아이들은 몇 있었습니다.

거짓을 사실로 바꾸기도 하고, 사실을 설화나 신화로 바꾸기도 하는 시간의 흐름 안에서 그 황당하기만 하던 거짓말이 모두 사실이 되었고, 그 이상의 엄청난 과학기술에 힘입은 문명화 앞에서 당황하는 사람들과 그들의 뒤죽박죽된 인식체계를 보면서 쓴웃음을 짓곤 하는 요즘입니다.

우스갯소리로 이따금 혼자 요즘 가장 바쁜 것이 무엇인가 생각할 때가 있습니다.

기계가 일상화되고 그 기계를 통해서 추구하는 편리에 대한 인간의 의지, 그러나 무엇이 중요한 것이고 무엇이 군더더기인지에 대한 판단력의 상실에 대한 자문이기도 합니다.

인간은 늘 더 나은 삶을 꿈꾸며 삽니다. 그것 때문에 언제나 현재의 상황에 만족하지 않고 크고 작은 많은 것들을 찾아내거나 만들며 그 지향성을 채웁니다.

문명이라는 것도 그것과 다르지 않을 터이고 말입니다.

문명이라는 말이 나왔으니 말인데, 이 말은 다분히 반자연적 속성을 지니고 있다는 것이 내 생각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문명 그 자체를 악이라고 보지는 않습니다.

어머니 자연의 품은 그야말로 신비로워서 반자연적인 것마저도 자연화하는 놀라운 능력이 있는 것을 살면서 보았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문명논리의 내면에는 다른 집단에 대한 멸시와 폭력성이 있었다는 점은 분명히 짚고 넘어가야 합니다.

그러나 정작 문명에 대한 보다 심각한 문제는 이것이 상업논리 안에 흡수되었다는 점입니다.

편리의 추구가 이익의 추구와 뒤섞이면서 마침내 이익의 추구가 앞에 서고 편리의 추구는 도구와 수단으로 된 자리에서 생겨나는 헤아릴 수 없는 부작용, 부작용, 부작용들. 보다 나은 삶을 주겠다는 광고의 뒷면에 또렷이 새겨진 '돈 가져 오라'는 말, 그들이 주겠다는 앞에 쓰여 있는 '보다 나은 삶'은 불확실하고 애매하거나, 때로 전혀 사실과 다르지만 얼핏 보아서는 보이지도 않는 뒷면의 '돈 가져 오라'는 말은 너무나 분명한, 그래서 생기는 수없이 많은 문명화의 쓰레기들, 그 현혹에 판단력이 마비되고, 마침내 사람이라는 것과, 사람으로 산다는 것, 곧 인간의 정체성과 방향성을 사정없이 뒤흔들고 만 오늘의 현실을 봅니다.

물론 어머니 자연은 마침내는 이것까지도 품어 자연이 되게 할 터이지만 그 가정에서 겪는 어머니의 그 신음 가득한 괴로움은 피해 갈 길이 없다는 것은 틀림없는 노릇입니다.

사람으로 산다는 것 그 자체를 나무랄 사람은 그 어디에도 없습니다.

나는 거기서 한걸음 더 나아가 누가 그 무슨 짓을 한다고 하더라도 그걸 나무라거나 말리고 싶지도 않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참으로 제대로 된 문명을 이룰 수 있는지, 문명이 인간을 행복하게 하기 위해서는 지금 어디로 방향을 잡아야 하는지를 진지하게 한번 물어야 한다는 말은 늦었지만 꼭 해야 할 때라는 생각, 이 물음을 함께 고민해야 하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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