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행복합니까
당신은 행복합니까
  • 충청타임즈
  • 승인 2010.10.13 21: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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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논단
오창근 <칼럼니스트>

행복전도사로 각종 매스컴에서 이름을 날리던 최윤희 씨의 동반자살 기사를 보고 충격을 받은 사람이 많을 것이다. '행복전도사'라는 타이틀과 자살이라는 간극은 많은 사람을 혼란하게 만들기에 충분하다. 아침 방송에 출연해 '행복'이라는 주제를 가지고 위기에 놓인 사람들에게 희망의 메시지를 전달하던 본인이 사회적으로 예민하게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자살이라는 방법으로 생을 마감한 것은 그분을 텔레비전에서 본 시청자라면 다들 의아하게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

각 신문의 칼럼을 조회해 보고 인터넷 기사를 검색해 보면 그분의 죽음을 안타까워하지만, 그 사건이 확대되어 극심한 고통에 시달리는 말기 암 환자들에게 악영향을 줄 수 있다는 걱정과 인간의 생을 본인 손으로 마감하는 것은 옳지 않다는 의견이 주를 이룬다. 되풀이되는 유명인사의 자살이 우리 사회에 미치는 영향력이 대단하다. 그러나 늘 별다른 대책 없이 감성에 호소하는 현실 또한 안타깝다.

종교적 관점에서는 신이 부여한 생명을 여타 이유로 자신 스스로 목숨을 끊는 것은 신의 뜻에 부합하지 않는다는 관점이 지배적이다. 일반론으로는 자살이 주는 여파가 남겨진 가족과 더 나아가 사회적으로 부정적 결과를 초래하기 때문에 자살을 미화하는 것 자체를 금기시하고 있다. 반면에 종교적 사명감으로 선택한 죽음은 순교라는 이름으로 찬양하고 혹은 국가에 대한 충성심의 발로로 죽음을 택한 이들은 의사로 추앙받는 이중적인 잣대를 가진 것 또한 우리 사회가 안고 있는 모순이라고 할 수 있다.

프랑스의 사회학자 에밀 뒤르켐(Emil Durkheim, 1858~1917)은 1897년에 펴낸 <자살론>에서 자살을 '이기적 자살'과 '이타적 자살', '아노미적 자살'로 분류해서 설명한다. 사회의 통합력이 강해 개인을 규제할 때는 드러나지 않지만, 사회적 통합이 약해지면 사회에 대해 무관심해지고 사회적 자아를 희생시키며 개인이 자아를 주장하게 된다. 지나친 개인주의가 만연할 때 발생하는 것이 이기적 자살이다. 결국은 절망을 죽음으로 해결하고자 하는 형태이다.

이타적 자살은 개인에 대한 사회의 통합이 지나치게 강할 때 발생한다. 남편이 죽어 화장시킬 때 아내도 함께 화장시키거나, 남편이 죽은 직후 아내 스스로 따라 죽는다는 인도의 전통사상인 수티 (suttee)나 국가나 조직을 위해 할복을 함으로써 책임을 다한다는 일본 무사들의 자살이 여기에 속한다. 정치적 이유나 종교적인 이유의 순교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아노미적 자살은 급격한 환경변화에 대처하지 못해서 발생한다. 부자로 살던 사람이 하루아침에 길거리로 나앉거나, 이혼과 같이 미처 대처하지 못한 상황이 발생했을 때 개개인의 목표나 도덕적 지침을 갖지 못한 무규범 상태에서 일어나는 자살이다. 특히 급격한 산업화로 인한 사회적 변동과 빈부격차로 인한 상대적 빈곤이 그 원인이 되기도 한다.

자살을 선택한 사람은 모두 절박한 사정이 있다. 공감할 수 있는 부분도 있고 조금 더 신중했으면 굳이 자살이라는 극단의 방법을 선택하지 않아도 되는 상황도 있다. 이렇듯 죽은 자는 말이 없고 걱정과 염려는 남아 있는 자의 몫이 된다. 여중생 투신부터 유명 인사에 이르기까지 자살로 생을 마감하는 것을 보면 우리 사회가 병들어 가고 있는 것은 확실하다. 각종 자살 예방대책을 내놓아도 이런 사건이 한번 터지면 사회적 파장은 만만치 않다. 옛사람들은 행복의 조건으로 오복(五福)을 꼽았다. 수(壽), 부(富), 강녕(康寧), 유호덕(攸好德), 고종명(考終命)의 다섯 가지 복으로, 이는 각각 '장수', '부', '건강', '덕', '제 명대로 살다가 편히 죽는 것'을 이른다. 자다가 죽는 것이 제일 큰 복이라는 노인의 말이 딱 들어맞는 사회가 된 현실이 그저 안타까울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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