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대강 앞에서 등 돌린 이웃사촌
4대강 앞에서 등 돌린 이웃사촌
  • 권혁두 기자
  • 승인 2010.10.11 21:3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충청논단
권혁두 국장 (보은·옥천·영동)

보은군 내북면 궁저수지 주변 마을들이 요즘 냉기류에 휩싸였다. 저수지를 경계로 상하류 주민들이 대립하고, 한 마을 주민들끼리도 등을 돌리는 상황이 됐다. 이웃사촌은 옛말이 될 정도로 험악한 분위기다. 정부가 4대강 사업의 일환으로 추진 중인 저수지 둑높이기 사업이 불화의 단초다.

정부는 전국 113개 저수지에 2조7049억원을 들여 둑높이기 사업을 추진할 계획이다. 충북에도 16개 지구에 3480억원이 투입된다. 궁저수지도 그중 하나로 농어촌공사가 480억원을 들여 2012년까지 현재 25m인 둑높이를 38m로 13m 높인다. 농어촌공사는 주민공청회와 자체 심의를 거쳐 시공사도 결정했고 현재 실시설계를 진행 중이라고 한다. 그러나 지난 6일 댐 인근 상궁리와 신궁리 일부 주민들이 기자회견을 갖고 사업 철회를 촉구하고 나서 공청회를 통해 주민 동의를 구했다는 주장은 무색해졌다.

특히 상궁리는 사업 찬성으로 돌아선 이장에 대해 반대 주민들이 사퇴를 요구하고 나서는 등 분열상이 심각하다. 마을이 완전 수몰돼 전체가 이주하는 하궁리 주민들은 찬성이 절대 우세이고, 상류라도 수몰지역에서 배제된 마을이나 하류 쪽은 반대가 주류이다. 13일에는 사업을 찬성하는 주민들이 사업 추진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계획하고 있어 찬반의 골은 더 깊어질 전망이다.

얼마 전 주민 반대로 둑높임 사업이 백지화된 보은군 쌍암저수지 인근 마을들도 찬반 주민들 간 앙금이 가라앉지 않은 상태다. 반대하는 주민과 단체들은 충북도청에서, 찬성하는 주민들은 보은군청에서 각각 기자회견을 갖고 목소리를 높였다. 찬반으로 나뉜 일부 주민들은 대화까지 단절한 상태라고 한다.

물부족 현상을 막고 하천환경을 보호하겠다는 근사한 취지로 추진하는 사업이 환영은커녕 곳곳에서 분란만 초래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무엇보다 사업의 필요성에 대한 논리가 취약하고, 해당 지역에 대한 설득과정도 허술하기 때문이다.

하천 유지를 위한 환경용수를 공급하고, 수자원을 추가확보해 홍수조절 기능을 강화하겠다는 것이 정부의 목표다. 그러나 쌍암저수지를 비롯해 상당수 사업 대상지에서 오히려 환경훼손을 들어 반대하고 있는 것은 사업목적이 전혀 설득력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다는 반증이다. 댐도 아니고 농업용 저수지 용량으로 홍수를 조절한다는 것도 이해하기 어려운 대목이다.

저수지 담수면적이 넓어지면 안개일수 증가와 일조량 감소로 농작물 냉해를 피할 수 없다. 습도 변화로 주민들의 건강에도 문제가 생긴다. 농업용수가 달리거나 상습적으로 수해를 겪는 곳도 아닌데 갑자기 저수지를 확장하니, 충분한 보상을 받아 전업이 가능한 농업인들을 제외하고는 반대하는 것이 당연하다.

정부 스스로 줏대없이 사업을 추진해 불신을 자초한 면도 적지 않다. 궁저수지의 경우 둑을 4.6m, 7m, 10m, 13m 등으로 높이는 4개 안을 놓고 주민들과 협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결국 보상지역 확대를 원하는 주민들의 요구로 가장 높은 13m안이 결정됐다. 사업 규모가 3배 가까이 차이나는 복수의 안을 들고 나와 주민들의 판단에 맡겼다는 자체가 사업 검토가 부실했다는 반증이다. 정부는 또 주민이 반대하는 곳은 사업을 취소하겠다는 으름장을 놓음으로써 이 사업이 절박하지 않음을 자인하고 있다.

저수지 공사 입찰에는 이미 대형 건설사들이 뛰어들어 치열하게 경쟁하고 있다. 사업의 수혜자가 누구인지 짐작되는 대목이다. 취약한 사업명분과 주민피해, 민민갈등 등을 땜질해 가면서 강행하는 사업의 결과가 좋을 리 없다. 사업을 전면 재검토하고 주민들이 수용할 수 있는 취지와 당위논리를 개발해 재추진하거나, 이 예산을 지방에 배분해 스스로 필요한 사업을 발굴 추진토록 해야 한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