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종환선생님과 함께 한 선운사 문학기행
도종환선생님과 함께 한 선운사 문학기행
  • 충청타임즈
  • 승인 2006.05.05 2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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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이 피는가 싶더니, 나무에서 핀 꽃들은 하나 둘씩 지고 있었다.

내심으론 ‘선운사 동백꽃이 아직도 피어있을까?’ 궁금증을 며칠전부터 가지고 ‘시인 도종환과 함께 떠나는 봄 문학기행’을 불혹의 나이에 수학여행 날을 잡아 놓은 여고생처럼 설레며 기다렸다.

열두 살 꽃다운 딸아이를 대동하고 나서는 발걸음은 세상 무엇하나 부럽지 않았다.

벼르고 벼른 날이 황사의 영향도 있고, 새벽엔 잠시 비가 내렸었나 보다.

만남의 장소에 모여 버스에 오르니, 반가운 지인들의 얼굴에 가볍게 때론 정답게 악수를 나누기도 하는 글벗들……. 문학을 사랑하는 사람들은 나이도 성별도 직업도 다 떠나서 공감을 할 수 있어 좋았다.

차를 타고 가는 그 길목에서 즉석에서 이어지는 삼행시 한마당에선 글꾼들의 타고난 감성과 끼를 느낄 수 있었고, 때론 미당의 시 한 편을 낭랑한 목소리로 낭송을 하는 여인들이 있으니 이 어찌 봄에 피는 꽃만 아름답다 하겠는가. 지친 몸이지만 차 안에서 미당 서정주 시인의 시 세계와 역사의식이 결여되어 오명으로 남는 일련의 시……. 문인의 펜대가 어찌 보면 무인의 칼보다 더 강하다는 것을 새삼 느끼게 했던 순간이었다.

정읍 나들목을 들어서니, 온통 세상은 꽃 분홍 철쭉과 흰 철쭉의 아름다움으로 나도 모르게 감탄사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어찌 자연은 이리 아름다운가! 겨우내 차가운 땅속에 영양분 곱게 모았다가 봄 한철 그 모든 것을 연둣빛 잎과 함께 꽃을 피우지 않는가.선운사에 도착해 안내자를 따라 보람 있는 기행을 하며 보니, 아직 동백은 피어 있었다.

지난해 3월 초 어느날 보지 못한 그 동백은 붉게 피어 있고, 어느 것은 논개의 절개처럼 꽃송이가 떨어져 있고, 경내 앞으로 하얀 수선화가 곱게 피고, 개울가를 따라 늘어선 나무들도 연둣빛 물감으로 옷을 입고 있었다.

미당문학관에 들려 한 시대를 풍미하며 살다간 시인의 흔적을 밟으며, 유독 많이 눈에 띄던 노부부의 사진에 나도 모르게 시선이 가는 것은……. 일제 강점기 때의 글은 불운한 시대, 주권을 잃은 식민지 문인의 초라한 변명, 아니 삶을 이어간 모습이라 하더라도 5공화국까지 이어지는 그의 행적들……. 그것은 그가 오래 살아 어쩌면 오명을 남기는 흔적을 더 보여주진 않았을까 하는 인간적인 안타까움을 느껴지지만, 시인 미당 서정주의 작품은 문학적 가치론 누구도 말을 하지 못하리라.붉은 황토밭 땅은 벌써 여름을 준비하고 있는 듯……. 그렇게 넓은 평야를 지나 동학 기념관까지 우리의 가슴속에 자유와 문학의 소중함을 일깨워 준 값진 하루의 해는 서산을 향해 지고 있고, 우리를 태운 차는 직지의 고장을 향해 힘차게 달리는 차에 몸을 의지한채 각자의 가슴 속엔 한폭의 수채화를 하나 둘씩 그리면서 우린 다시 글로 만날 것을 약속하며 이별을 고했다.

/이정아(민예총 문예창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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