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방교회(17)
묵방교회(17)
  • 충청타임즈
  • 승인 2006.04.12 2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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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믿음의 요람, 꿈의 산실 묵방교회연초록 잎새들로 인해 눈도 마음도 싱그러운 계절이다.

하루가 다르게 구색을 갖추어 가는 산등성이를 바라보며 청주를 벗어나 내수방면으로 조금 달리다보면 ‘묵방교회’ 이정표가 보인다.

방향을 틀고 보면 짐작으로도 아! 저기구나 하고 느껴지는 방주모양의 초 현대식 교회건물이 눈앞에 성큼 들어온다.

오솔길 같은 진입로를 따라 들어가면 여기저기 흩어져 있는 건축 자재들에서 성전건축이 마무리 단계에 있음을 느낀다.

“성도들의 성숙함이 없이는 교회가 성장할 수 없습니다.

”나즈막한 언덕위에 자리하고 있는 대한예수교 장로회 묵방교회(담임목사 박덕래)는 오는 5월 6일 창립 100주년 기념대회를 앞두고 성숙한 모습으로 감동과 메시지를 전하고, 선교에 열매 맺는 교회가 되기 위해 전 교인들이 하나된 모습으로 매진하고 있다.

◇ 복음의 씨앗의병의 선봉장이던 한봉수가 새티고개에 진을 치고 왜병과 대항할 무렵 묵방리 마을청년 이종익과 안경연은 군자금 관계로 의병에 시달리다 안경연은 청주읍 선교사가 있는 곳에 일시 피신해 있었다.

이 때 미국 선교사 민노아에게 복음을 전해들은 안경연은 기꺼이 고향 묵방리로 돌아와 복음을 전파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오랜 세월 유교의 전래 풍습에 젖어 있던 마을 사람들에게 그리스도의 복음이란 조소와 반대 뿐이였다.

그러나 군계일학이란 말이 있듯이 복음에 눈을 뜬 사람이 있었다.

이마을 이대성의 조부, 이종익, 이치수, 강명수, 이규환 등 젊은 청년들이였다.

이들은 안경연의 사랑방에 모여 마태복음, 마가복음, 누가복음, 요한복음 등 주기도문을 외우고, 음정 박자도 없는 찬송을 천태만상으로 부르기 시작하면서 하나, 둘 사람들이 모여들기 시작했다.

박 목사는 교회초창기 교인들의 신앙의 주춧돌이 됐던 성경주석을 교회내 전시 보관하고 있다.

장소가 협소해지자 이종환의 아버지 이선달이 자신의 사랑채를 내주어 40여명이 모여 예배를 보게 되었다.

이 때 안경연은 모이는 사람들 대부분이 한글을 몰라 성경이나 찬송을 읽지 못하는 것이 안타까워 문맹퇴치의 일환으로 교회내 청북(淸北) 학교를 설립하고 안경연이 교장을 역임했다.

청북학교는 1909년 정식인가를 받아 보통교육과정을 교육하게 됐는데, 이는 농촌지역을 계몽하고 문맹을 퇴치하며 생활을 개선하는데 큰 역할을 했다.

교육 과목은 국문, 학문, 산술, 창가, 체조였다.

학생들의 나이는 10세부터 20세까지 차이가 많았으며, 개화기 직후 향학심과 애향심 애교심은 충일되어 있었다.

1932년 일제의 폐쇄정책에 못이겨 청북학교는 학술강습소로 개칭되면서 학교 간판을 내리게 됐다.

◇ 언덕위의 작은 교회그후 교회 청년들은 70, 80여명이 예배를 볼 수 있도록 토담으로 예배당을 지었다.

교인은 날이 갈수록 늘어 이창재 전도사가 부임하게 되었고, 민노아 선교사가 시무하기도 했다.

이때 예배당은 휘장을 처서 남녀 교인들이 서로 보지 못하도록 했다.

이후 1927년 1차 현대식 건물 예배당을 건축하고, 1977년 현대양식의 교회를 건축 했으나 30여년이 되면서 예배당이 낡아 지난 2004년부터 예배당 건축을 시작해 마무리 단계에 있다.

1927년 11월 신문 기사를 보면 “묵방리는 100여 세대가 살고 있는 농촌마을이지만 신도 120-130명이 예배에 참석하고 청북학원까지 운영하는 등 농촌에서는 보기드문 아름다운 교회다”라고 소개되기도 했다.

이 교회 출신 박덕봉은 자신이 이 교회에 다니며 보고, 듣고, 느낀것들을 기록한 책 ‘언덕위의 작은 교회’를 1988년에 펴냈다.

이 책은 묵방교회 초창기부터 교회 50년 문화와 역사를 고스란히 수록하고 있다.

박덕봉은 이 책에서 “개화기 직후 위생관념이 없던 때 학교에서 소금을 주고 이를 닦게 하고, 앞 시냇가에서 때를 닦기도 했다”고 밝히고 있다.

또한 “묵방교회 초대교인들은 눈물과 기도로 교회를 부흥 발전시켰다”고 기록하고, ‘언덕위의 작은 교회’란 시를 남겼다.

나즉한 산 허리에 떨어져 떨어져/ 토담집 예배당 지었다네/청년 안 아무개 이 아무개/ 그리고 몇몇 안악인들이/예수 사랑하심은 거룩하신 말일레/묵청 도꾸어 찬미 부르며/즐거이 즐거이 주의집 지었다네/칠흙같이 어둡던 개화기/고루한 선비랑 양반들의 입김도 사나운 시절/조소하는 눈초리에도 굴함 없이/주여 저희들이 가는길/등불 밝혀 주옵소서/ ‘언덕위의 작은 교회’ 일부분이다.

◇ 선교 2세기를 열어가는 성숙한 교회묵방교회 100년 역사 중 20대 교역자로 시무하고 있는 박덕래 목사는 교회 표어를 ‘선교 2세기를 열어가는 성숙한 교회’에 두고 기도 중에 있다.

특히 유기농과 생태계에 관심이 많은 박 목사는 우르과이라운드로 인해 농촌도 경쟁력이 없으면 안된다는 것을 감안해 지역주민들과 더불어 유기농 농업을 교육 실천하려는 의지를 보이고 있다.

또한 교회 창립100년을 기념해 △열심히 전도해 신도수를 늘리고 교육해 교회를 성장 △이 시대에 필요로 하는 100년 기념교회 설립 △동족선교를 위해 10년 기도해온 북한성전 건축 △흩어져 있는 묵방교회 역사를 정리해 묵방교회 100년사 발간을 목표로 두고 있다.

박 목사는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마28:19∼20)”는 말씀을 깊이있게 묵상하면서 천국같은 교회, 기쁨과 평안과 행복이 가득한 교회가 되도록 사역을 펼쳐 나가겠다”고 다짐했다.

/신준수기자lovemunhak@cctime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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