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느님은 깡패? 대통령은 서민?
하느님은 깡패? 대통령은 서민?
  • 충청타임즈
  • 승인 2010.10.04 2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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낮은 자의 목소리
강연철 <음성 감곡성당 보좌신부>

동생집에 명절을 지내러 갔는데 동생이 그랬습니다. 아파트 엘리베이터를 타는 곳에 초등학생 글씨로 낙서가 되어 있는데, 내용이 너무 웃긴다고 말입니다. 나중에 가서 보니 이렇게 적혀 있었습니다. "하느님은 깡패! 천벌밖에 모르심!" 말썽을 많이 부려 자주 꾸짖음을 듣는 개구쟁이 중의 하나가 써 놓은 것 같았습니다. 아이 입장에서 꾸중을 듣게 되니 하느님은 벌만 주는 분인가 보다 느껴 쓴 것 같았습니다. 사실 하느님은 사랑자체이고, 사랑밖에 모르는 분인데 말입니다. 아이는 눈앞의 사건만을 자기 눈높이로 보고 그리 말했던 것 같습니다.

그 아이도 자라면서 자신이 보고 이해한 것만이 전부가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될 것입니다. 자라면서 많은 일을 경험할 것이고 그만큼의 대가를 치르면서 시야가 넓어지게 될 것입니다. 자신이 본 것은 극히 일부분이고, 잘못 이해했던 것도 많았다는 것을 알게 될 것입니다.

이렇듯 우리는 눈에 보이는 현상만을 가지고 그것이 전부인줄 알고 살아가는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사람들이 입으로 그렇게 이야기 하고, 눈에 보이면 그것이 다인 줄 압니다.

요즘 배추값이 고기값보다 더 비쌉니다. 배추값이 금값이다 보니 배추김치가 기본 반찬인 서민의 고통은 말할 수 없습니다. 서민이 고통 받고 있다고 하니 '친서민'을 내걸고 있는 정부가 가만 있을 수 없었을 것입니다. 대통령님이 청와대 식탁에 배추 김치 대신 양배추 김치를 올리라 지시했다는 보도도 나왔습니다. 친서민을 표방하는 대통령님은 시장에서 오뎅을 사 잡숫고, 시장 상인에게 자신의 목도리를 둘러 주었던 마음으로 양배추 김치를 말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양배추 김치에 대한 사람들의 반응은 냉랭하기만 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오뎅과 목도리에 넘어 갔듯이 양배추 김치 이야기를 듣고 사람들이 '아! 우리 고통에 동참하시는구나.' 감동 받을 줄 기대했을 것인데, 이번에는 민심이 좋지 않습니다. 배추도 양배추도 똑같이 비싼데, 그런 사정도 모르면서 무슨 친서민이냐? 이거 쇼 아니냐? 하며 인터넷 댓글들의 분위기가 심상치 않습니다.

왜 배추가 금값일까? 물론 태풍 곤파스와 그 뒤 이어졌던 지루한 빗줄기가 문제였습니다. 하지만, 아무리 그렇다 해도 고기는 리필이 되면서 김치는 리필이 안 되는 시대가 올 수 있단 말인가? 매년 태풍과 물난리는 있었습니다. 그렇다면 또 다른 이유가 있을 텐데, 그것은 무엇일까? 그만큼 공급을 담당하던 경작지가 줄어 들었기 때문입니다. 4대강 사업으로 수도권 유기농 채소를 다수 공급하던 팔당 단지가, 부산에 상추와 배추를 공급하던 낙동강 삼락둔치가, 전국 미나리의 반 이상을 공급하던 영산강 둔치가 사라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런 사실은 사람들에게 잘 알려지지 않고 있고, 애꿎은 곤파스 바짓가랑이만 잡고 늘어지는 형국입니다. 어떻게든 사람들의 시선을 돌려 보겠다는 심산으로 양배추 김치를 들고 나왔건만, 목도리와 오뎅 때와는 분위기가 다릅니다. 사람들은 이제 목도리를 걸어 줄 때, 그 상인의 목만 잠시 따뜻했고, 오뎅을 팔아 줄 때 그 상인만 하루 수입이 조금 올랐을 뿐임을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보여지는 쇼 말고, 서민들을 위한 어떤 움직임도 실질적인 정책의 입안이 거의 없었음을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처음 목도리를 둘러 줄 때, 시장을 찾아와 오뎅을 사 드실 때, 우리는 그러한 사실을 챙기지 못하고 눈에 보이는 것에만 열광했습니다. 아직 우리의 시선이 어린 탓입니다. 크게 볼 줄 모르는 우리 국민의 탓입니다. 눈에 보이는 쇼에 쉽게 넘어가 버렸고 착한 것인지, 멍청한 것인지 잘 이용 당하였습니다. 우리는 비싼 수업료를 치르며 이제 그것을 깨닫고 있습니다.

하느님은 깡패가 아니라 사랑이시라는 사실을 아이가 알아 나가듯, 실질적인 법률의 입안이나 개정 없이 외치는 친서민은 쇼에 불과하다는 것을 알아가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 사실을 많은 사람들이 알아 차리기 전까지 또 얼마나 많은 수업료를 내야 하는 것일까? 우리는 이미 넘치도록 많은 수업료를 치렀습니다. 이제는 성숙한 눈높이를 우리 안에 갖고 있어야 할 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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