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랫목과 윗목
아랫목과 윗목
  • 문종극 기자
  • 승인 2010.09.27 20:5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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時論
문종극 편집국장

농사일로 바빴던 일가친척이 서로 만나 하루를 즐기는 날이 한가윗날이다. 추석날 일가친척이 모두 한자리에 모이는 것은 농경사회가 아닌 지금도 마찬가지다.

중로상봉(中路相逢)이라고 하는 반보기도 있다. 아주 먼 옛날에는 시집간 딸이 마음대로 친정 나들이를 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모녀가 서로 중간 지점에서 만나 한나절 동안 그동안 나누지 못했던 회포를 푸는 것을 말한다. 안사돈들이 함께하는 경우도 있었다. 또 마을의 여인들이 이웃 마을의 여인들과 경치좋은 곳에 집단으로 모여 우정을 쌓으며 하루를 즐기던 것을 이르기도 한다. 자연스럽게 동네의 이슈가 윗동네에 전달되는 경로가 된다. 그 옛날 민심은 우물가에서 나온다고도 했다. 마을 주민들이 모두 함께 사용하는 공동우물은 자연스럽게 동네 아녀자들이 함께 모이는 장소가 됐다. 그렇다 보니 이곳에서 별의 별 이야기가 다 나온다.

일가친척, 마을 사람, 동창생 등 여럿이 모이면 공통된 화제가 있다. 삶을 공유하는 집단의 공통된 얘기가 곧 민심이다. 집단의 구성원들이 논쟁을 벌인 후 공감함으로써 결론에 도달한 쟁점이 민심인 것이다.

이번 추석명절도 예외는 아니다.

올 추석민심은 '먹고살기가 너무 힘겹다'는 것이다. 여느 때와 같이 정치적인 쟁점이나 지역의 현안 등보다도 전국적으로 공통된 민심은 '삶이 팍팍하다'는 것이다. "아랫목은 따뜻하다는데 윗목은 여전히 냉기가 돈다"고 입을 모은다. 수출도 잘되고 고가의 명품도 잘 팔리는 것을 보면 가진 자들은 더 없이 살기 좋다고 하는데 왜 없는 사람들은 여전히 "먹고 살기가 어렵냐"는 얘기다.

아랫목이 따뜻하면 당연히 그 온기가 윗목으로 전해져야 하는데 무슨 이유인지 윗목의 냉기가 가시지 않는 것에 대해 서민들은 고개를 갸우뚱한다.

도대체 그 이유가 무엇인가. 아랫목과 윗목 사이에 열전도를 막는 절연체(絶緣體)라도 설치한 것인가. 그렇다면 그 절연체는 무엇일까. 이번 추석민심을 파악한 정치인들이 너도나도 한마디씩 한다. 서민경제를 살려야 한다고.

민심의 눈초리가 매서워지고 있는데 신경을 쓰는 수준이지만 서민경제살리기가 매우 중요하고 시급하다는 것에 공감하는 분위기다. 때문인지 여당은 민생이 화두다. 서민경제를 빨리 살리는 게 과제라고 외치고 있다. 경기회복을 실감하는 계층이 분명히 있는데도 밑으로 내려가지 않는 게 문제라는 진단도 내놓는다. 아랫목의 온기가 윗목에 전해질 것이라는 말을 들은 게 1년이 넘었는데 이러다 윗목은 영원히 추운 것 아니냐는 우려 섞인 시각도 있다. 여당이 위기의식을 느끼는 것일까. 야당이 파악한 민심도 별반 다르지 않다.

서민들이 박탈감을 느낀다. 작년보다 경기가 더 안 좋고 특히 물가가 많이 올라 걱정이다. 쌀값 폭락으로 절망감에 빠져 있다. 청년 구직자들이 분노하고 있다. 정부는 경제가 잘되고 있다고 하는데 전혀 피부에 와 닿지 않고 오히려 서민은 허리가 휜다. 장사가 안된다며 전통시장 상인들의 아우성이 끊이지 않는다 등등.

여야가 공감했다면 이제는 아랫목과 윗목 사이의 절연체를 뽑아내는 정책에 몰입해야 한다. 국가경제 시스템에 문제가 없는지, 분배정책에 동맥경화 현상은 없는지, 대기업 위주의 정책이 중소기업을 죽이는 것은 아닌지.

민심을 파악하는 것으로만 그치지 말고 해결책을 찾으란 말이다. 정권유지 또는 창출의 수단이 아닌 오로지 민생만을 위한 위정(爲政)을 하라는 것이다.

국민의 분노가 극(極)점에 다다르면 극도의 혼란이 온다. 배고픔에서 폭발하는 분노는 더욱 위험하다. 그것이 민심의 위력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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