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 차례주(茶禮酒)
추석 차례주(茶禮酒)
  • 김영일 기자
  • 승인 2010.09.19 2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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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논단
김영일 본보 대기자

내일모레면 추석차례를 지낸다. 일부 국민들은 종교나 집안사정 등을 이유로 차례를 생략한다. 차례를 지내지 않는 집에서도 추석음식을 장만하여 먹는다. 우리민족은 특별한 날에 먹는 음식에는 술을 꼭 포함시켰다. 물론 우리에게는 술과 함께 밥을 먹는 반주문화가 있다. 이 뿌리가 깊은 반주문화도 일제강점기에 시련을 겪었다.

고대시대부터 우리민족은 술을 일상에 먹는 음식으로 여겼다. 그래서 집에서 술을 빚는 가양주(家釀酒)문화가 있어 집안마다 전래하는 특유의 술을 가지고 있었다. 문헌상에 있는 전통주의 종류가 600가지가 넘고 조선말기에는 여섯 집에 한 집꼴로 그 집만의 술이 있었다고 한다.

일제는 민족문화를 말살하고 식민지 수탈정책의 선봉으로 술을 이용했다. 조선총독부는 1905년부터 4년간 우리나라의 술에 대해 조사했다. 우리민족의 술 만드는 상황을 파악한 일제는 1909년 술을 세금원으로 정한 주세법을 공포했다. 이에 따라 주류제조면허제를 시행하고 가양주도 자가(自家)제조면허를 받아야만 가능했다.

일제가 얼마나 악랄하게 우리를 수탈했는지는 자가제조면허수의 변화를 보면 알 수 있다. 1916년 31만이던 면허수가 28년에 3만개로 줄어들고 29년에는 전년도의 1%도 되지 않는 265개로, 32년에는 1개로, 그리고 1934년에는 아예 폐지했다. 이에따라 집에서 술을 빚는 게 불가능해졌다.

그래서 가양주는 밀주(密酒)의 형태로 명맥을 유지할 수밖에 없었다. 대신에 일제는 자기네 술인 사케(청주)를 만드는 제조장을 늘려 나갔고 이 술을 권장했다. 우리가 알고 있는 정종(正宗:마사무네)은 일본식 청주이다. 이것도 술의 종류가 아닌 사케의 상표명이다. 일제는 이 땅에서 가양주문화를 몰아내고 사케문화를 심고자 한 것이다. 술을 민족문화말살정책에 이용한 것이다. 조상에게 차례를 올리는 데 제주로 일본식 술을 쓸 수밖에 없게 만들었다. 그런 속에서도 밀주를 만들어 조상에게 예를 올리다가 발각되어 고초를 겪기도 했다.

일제말기의 가양주 상황은 광복을 이룬 후에 다소 호전되는 듯했지만 식량사정이 여의치 않자 제3공화국 들어서는 수출용 약주와 일본식 청주를 제외하고는 쌀로 술을 못 빚게 했다. 1990년 이 조치가 해제되기까지는 밀가루와 고구마, 감자 등으로 술을 빚었다. 일제강점기부터 1990년까지 전통술이 아닌 밀가루로 만든 약주나 일본식 청주가 차례상에 올랐다.

지금은 쌀이 남아돌게 되자 정부가 쌀로 술을 만들게 장려하고 있다. 민속주나 전통주란 이름으로 다양한 방법에 의해 우리 술이 만들어지고 있다. 가양주도 가능해졌다. 자가소비일 경우 세금이 없어 밀주에서 해방됐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아직까지 일본식 술을 차례상에 올리는 집안이 있는가 보다. 추석을 앞두고 일본식 청주를 들기 좋게 포장해 놓은 상점이 많은 것을 보면 그런 생각이 든다.

2006년부터 막걸리 바람이 불고 있고 이에 편승하여 가양주가 부활하고 있다고 한다. 우리 술에 대한 관심이 커진 것이다. 우리 술의 시장점유율이 80년대부터 3~5%에 머물렀는데 지난해 7.8%로 상승했고 올해는 12%를 보이고 있다. 이 점유율 속에 일본식 술도 포함돼 있다.

우리가 우리식으로 만든 소주를 수출하고 있고 막걸리시장을 개척하고 있는 상황에서 일본 술이나 일본식으로 만든 술을 먹지 말자는 얘기는 아니다. 술이 음식이기에 기호에 맞는 것을 먹어야 한다는 것을 부정하지 않는다. 다만 조상에게 드리는 차례상에서는 일본식 술을 몰아냈으면 한다. 상점에서 차례용 우리 술을 구별하는 것은 의외로 쉽다. 데워먹을 수 있는 술을 피하고 '약주'라고 쓰인 것을 찾으면 된다. 옛날 우리 조상들은 따뜻한 상태에서 술을 마시지 않았고 일본에는 약주가 없기 때문이다.

전통문화의 계승과 발전의 한 분야에 우리 술이 분명하게 포함된다. 가양주를 담그는 가정이 늘어나 이를 전통으로 물려주는 풍습이 살아나길 바란다. 또 국민 모두가 우리 술을 찾아서 차례를 올리는 후손이 되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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