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목련
백목련
  • 충청타임즈
  • 승인 2006.04.12 2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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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사는 친구한테서 아침 일찍 전화가 왔다.

친정아버지 때문에 속상하다고 하소연을 늘여놓았다.

그 친구 아버지는 5년 전 엄마와 사별하고 올해 예순 둘이 되셨다.

수제화점을 운영하시며 즐겁고 건강하게 살고 계신다고 했다.

아들 딸 모두 결혼을 해서 가정을 꾸렸고, 혼자 남게 된 아버지를 계속 혼자 사시게 할 수 없어 오빠에게 아버지를 모시라고 했단다.

오빠 부부는 차라리 재혼을 시켜드리는 게 어떻겠냐고 의견을 내놓았다는 것이다.

아무래도 모실 바에는 재혼 시켜드리면 자식들의 책임이 줄어드는 일이라고 생각한 모양이라고 했다.

오빠 말은 아직 연세도 젊으시고 혼자 보다는 좋은 여자분 만나 남은여생 사시는 것도 괜찮지않느냐는 것이다.

이 친구는 굳이 반대할 이유가 없고 그래서 재혼을 전문으로 하는 곳에 상담을 하게 되고, 아버지 연세와 엇비슷한 여자를 찾아 우여곡절 끝에 맞선 자리에까지 모시고 나갔다.

하지만 아버지는 싫다고 하시길 여러 번. 그러던 어느 날 아버지보다 열두 살이나 아래인데다가 보기에도 너무 젊은 여자를 사랑한다는 소릴 하신 것이다.

자식들은 아버지에게 맞지 않는 사람이라고, 또 너무 젊다는 이유로 반대를 했다.

그러거나 말거나 아버지는 둘이 살 집을 보러 다니고, 커플 핸드폰도 함께 했다고 한다.

완강히 반대하는 자식들에게 아버지는 “그래, 늙은것이 사랑해서 미안하다.

그런데 니들만 사랑하냐? 늙은 것은 사랑하면 안 되냐?” 하시며 화를 내셨다는 것이다.

친구는 거의 반포기 상태로 지켜만 볼 뿐 어찌할 도리를 못 찾고 있다고 했다.

흔히들 말도 안되는 소리를 하는 사람에게 면박 주는 말을 하곤 한다.

소설 쓰고 있냐고, 너 무슨 드라마 쓰냐고 말이다.

그런데 소설 같은 이야기, 텔레비전에 나오는 드라마 같은 이야기가 실제로 일어나고 있다.

이야기 속에 나오는 아버지가 내 아버지라면 나는 어땠을까. 나는 과연 이런 상황을 어떻게 받아들였을까?이혼하는 사람들이 많아지자 자연히 재혼하는 사람들도 많아졌다.

첫 번째 결혼에는 실패했지만, 두 번째 결혼으로 행복하게 사는 사람도 많다.

중장년층 재혼 문제는 예전부터 있어왔지만, 사회 관습상 그들의 재혼에 대해서는 너그럽지 못했던 게 현실이다.

‘살 만큼 살았는데 나이 먹어 재혼은 무슨, 그냥 이대로 살다 죽으면 되지.’‘다 늙어서 주책이야. 자식들 보기에 민망스럽게…….’이렇게 생각하는 노인들이 있는가하면 친구 아버지처럼 ‘내 인생 내가 당당하게 살겠다는데, 너희들이 무슨 상관이냐’는 분도 계실 것이다.

서로의 삶의 가치관과 인생관이 다를 뿐이지 이것이 맞고 저것이 틀리는 건 아니다.

예전에 비해 노인 복지가 많이 좋아진 건 사실이다.

서로 어울려 지낼 수 있는 공간도 많이 생기고, 복지관이나 경로당에서 시간을 보내는 노인들도 많다.

하지만 재혼을 간절히 원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네들 마음속엔 ‘자식들 다 내보내고 늙어서 등 긁어줄 사람 하나 옆에 있었으면’하는 간절함이 서로를 원하는 것뿐이리라.사회 통념상 부끄럽고 창피하다고 드러내지 못하는 노인들의 ‘사랑’을 우리는 잠시 생각해봐야 할 것 같다.

젊은 남녀의 사랑만 뜨겁고, 노인들의 사랑은 별거 아니라는 생각은 버리자. ‘사랑’ 뿐만 아니라 모든 문화의 중심부를 차지하고 있는 젊고 아름다운 사람들에 비해서 노인들은 언제나 주변으로 멀리 떨어져 소외되고 있을 뿐이다.

그 주변에 있던 늙고 못생긴 그들의 사랑도 따지고 보면 정말 하나 다를 바 없는 다 똑같은 ‘사랑’인 것이다.

/글쓰기 지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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