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지와 증도가 속에서
직지와 증도가 속에서
  • 충청타임즈
  • 승인 2010.09.14 2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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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논단
강태재 <충북시민사회단체연대회의 직지포럼 대표>

최근 남명천화상송증도가(南明泉和尙頌證道歌)를 인쇄했다는 금속활자가 발견돼 그 진위가 논란이 되고 있습니다. 이 증도가자가 진품이고, 이것이 국내외적으로 공인된다면, 그 위상은 매우 높다고 할 것입니다. 일부에서 금속활자 '활자본(책)'과 '활자'는 엄밀히 보면 서로 다른 것이라는 견해도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증도가자의 위상이 달라지는 것은 아닙니다. 책이든, 활자든 다 같이 금속활자인쇄술을 증거하는 자료이기는 마찬가집니다. 이런 일은 앞으로도 겪을 수 있고, 따라서 근본적인 대처방안이 강구돼야 합니다.

이번 증도가자 논란을 계기로 청주시의 직지세계화사업에 일대 전환이 있어야 합니다. 그동안 청주시는 '세계최고 금속활자 직지'에 지나치게 몰입함으로써 스스로 입지를 좁히고 한계를 드러내며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는 직지가 갖고 있는 문화사적 가치와 의미를 제대로 인식하지 못한 탓이라 생각됩니다.

직지의 문화사적 가치와 의미는 활자인쇄술에 대한 시대적 요청에 대한 연구와 그러한 시대적 요청을 현실로 만들어낸 문화와 과학기술의 수준에서 가늠해 봐야 합니다. 고려시대 우리 민족의 금속활자 인쇄술은 시대적 요청이 이루어낸 총체적 산물이라고 봅니다. 인쇄술은 그 시대의 문화적 수준이 어디에 있었는가를 가늠하는 결정적 잣대라는 것이 역사의 상식이 아닙니까. 고려는 세계 최초로 금속활자 인쇄술을 발명했던 당대 세계 최고의 문화선진국이자 지식과 정보강국이었기에 단시간에 다양한 정보의 생산이 필요했던 것입니다.

우리가 금속활자 인쇄술을 탄생시켜 자유자재로 활용하고 있을 때 중국은 목판인쇄에 만족하며 정보혁명의 새로운 미디어, 즉 활자인쇄에 대한 시대적 요청이 없었습니다. 손으로 베껴 쓰는 필사에 만족하고 있던 유럽은 15세기 넘어서야 활자인쇄술에 대한 시대적 요청이 생겨났습니다. 구텐베르크가 우리의 금속활자 인쇄술을 차용했던, 독자적으로 발명했던 간에 유럽은 우리보다 200여년이 훨씬 지난 후 새로운 미디어 기술을 필요로 하는 시대에 도달했던 것입니다.

지난 천년 세계 최대의 사건이었다는 미디어 혁명이 세계에서 맨 처음으로 이 땅, 우리 조상에 의해 시작되었다는 것이 얼마나 자랑스러운 역사이며, 이러한 역사적 사실이야말로 세계 속에 빛나는 우리 민족의 가장 찬란한 문화유산이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바로 여기에 금속활자인쇄술이 갖는 인류문화사적 의미가 있는 것입니다. 이런 맥락에서 직지는 고려가 당대 세계최고수준의 지식정보문화강국으로서 금속활자인쇄술을 창안하고 실용화한 살아 있는 증거입니다. 더욱 직지는 당시 고려사회가 도성뿐만 아니라 지방도시에서도 또 민간차원에서도 금속활자를 사용할 만큼 수준 높은 사회였음을 나타내는 것입니다. 만약 증도가자가 진품이라면 '책'에 더하여 '활자'까지 갖추는 것이기에 금속활자 종주국의 지위는 한층 더 올라가는 것이지요.

문제는 이러한 논란, 연구의 중심이 '청주고인쇄박물관'이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박물관에 사업부서인 '직지사업과'를 붙여 박물관 고유의 기능이 모호해지고 핵심인 학예연구실은 뒷방신세로 물러앉아 버렸습니다. 청주시는 이제라도 고인쇄박물관의 위상과 기능을 제대로 세워야 합니다. 이와 함께 본청조직에 가칭 '직지문화국'을 설치하여 직지문화정책을 새롭게 설계해야 합니다. 직지와 증도가 속에서 헤매지 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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