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크로드 42회
실크로드 42회
  • 충청타임즈
  • 승인 2006.04.11 2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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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 8시 50분 난저우에서 지아위관행 열차에 올랐다(침대칸 121元). 눈을 뜨니 벌써 아침 7시다.

끝없는 들판과 옥수수 밭, 키 큰 포플러나무 숲이 창밖으로 스쳐가고 있다.

밤새 기차는 사막 속을 달리고 있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끝없이 넓은 평야와 민둥산들이 시야에 들어왔다.

가끔씩 스치는 옥수수 밭과 해바라기 꽃이 철로 연변을 스쳐가고 붉은 산들이 가슴을 드러낸 채 햇살을 쬐고 있다.

메마른 물길과 들판은 진흙으로 덮여 있다.

작열하는 햇살이 주는 사막의 황량함이야말로 실크로드의 실체를 조금씩 실감나게 해 주고 있다.

난저우에서 시작된 사막화 현상을 지켜보면서 점점 더 깊숙이 실크로드 속으로 빠져 들어가고 있다는 것을 실감하게 된다.

실크로드는 동서 문화를 교류시킨 세계화의 첫번째 통로였다.

바닷길이 열리지 않았던 시절 육로로 통하는 가장 길고 가장 복잡한 정치·경제적 이해관계가 얽혀 있던 길이다.

중국과 로마를 연결하는 강력한 제국들의 문화가 이 길을 통해 교류하고 자극을 주고 받으며 발전을 거듭했던 인류문화의 교통로였다.

멀고 거친 이 사막 길을 통해 동서양의 종교와 문물이 만나고 명멸했던 곳이다.

종교인들에겐 성지순례와 구도의 길이였으며, 사막의 캐러밴에게는 동서의 물자를 교류하는 자유무역로였다.

아마 이 길이 열리지 않았더라면 중앙아시아와 중국의 역사는 많이 다른 모습을 하고 있을지 모른다.

공산주의 해체와 더불어 옛소련 연방에서 독립한 중앙아시아 국가들은 뉴실크로드 프로젝트를 추진하며 금세기에 자국의 발전 동력으로 삼고자 하는 의욕을 보이고 있다.

오전 10시쯤 옥수수 밭과 해바라기 꽃 속에 묻힌 몇 채의 주택과 밀 타작을 한 건초더미가 보인다.

넓은 자갈밭이 펼쳐지고 물이 흐른 자국이 남아 있는 큰 하천엔 물웅덩이 몇 개만 남아 있다.

10시 5분 시골마을이 밀집해 있는 작은 역에 도착하자 많은 사람들이 기차에서 내렸다.

밭에는 밀이 익어 추수가 한창이다.

지우추안(酒泉) 마을의 벽돌 토담집이 지나가고 있다.

술주(酒)에 샘천(泉)이란 지명의 유래는 하서회랑에서 흉노족을 물리쳤던 한나라 때 장군 곽거병에게 황제가 그 전공을 치하하여 술 한병을 하사하였는데 단 한병의 술로는 부하들과 함께 나누어 먹을 수가 없어 곽 장군은 그 술을 샘 속에 붓고 골고루 섞은 다음 병사들과 함께 솟는 샘물을 퍼 마시고 모두가 기쁨에 취했었다는 일화 때문에 붙여진 지명이다.

참으로 부하를 사랑하는 지혜로운 장수와 그런 장수와 함께 전쟁터에서 동고동락했던 병사들의 가슴 따뜻한 이야기가 전해지는 주천 마을이다.

벌거숭이산들이 눈앞에 더욱더 바짝 다가오고 있다.

작은 산들마저 사라지고 끝없는 황무지 벌판이 전개되는데 메마른 들판엔 염소 떼들이 풀을 뜯고 있다.

하천에 검은 진흙탕 물이 얕게 흐르고 있다.

이 삭막한 땅 가운데 하천이 흐르고 있다는 것이 신기하게 여겨졌다.

오전 10시 35분 지아위관 기차역에 도착했다.

4차로 도로를 따라 시내로 들어섰다.

현대식 고층건물이 몇 채 보이고 도시는 한산했다.

깨끗한 거리와 잘 가꾸어진 가로수들이 매우 인상적이다.

버스터미널에 도착하여 둔황(敦皇)가는 버스표를 예매했다.

지아위관에서 둔황까지 기차와 버스 둘 다 있지만 둔황은 기차역에서 시내까지 1시간 정도 버스를 타고 들어 가야하는 불편한 점이 있어 오아시스 마을들을 구경하면서 갈 수 있는 버스 노선을 택했다.

버스비용에 보험료를 30元 추가로 내었다(차비 67元). 철로를 선택하면 안전하고 비용이 적게 들지만 버스를 타고 오아시스 마을을 하나씩 보는 재미도 그에 못지않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점심 식사 후 택시를 타고 지아위관으로 향했다.

성곽 입구엔 포플러나무가 늘어서 있다.

지아위관은 하서회랑의 중간 부분에 위치하고 있으며, 만리장성 서쪽이 시작하는 곳이라는 뜻에서 얻어진 이름이다.

지아위란 뜻은 아름다운 골짜기란 뜻이다.

남쪽은 치롄(祁連)산맥이 뻗어 내리고 북쪽은 마종산 동쪽은 지우추안 분지, 서쪽은 가파른 절벽으로 둘러싸인 하서회랑의 가장 좁은 곳에 위치해 있다.

치롄(祁連)이란 말은 흉노족의 토속어로 하늘이란 뜻을 포함하고 있다.

중국에서 하늘과 통하는 천산(天山)산맥과 기련산맥은 같은 어원을 가지고 있는 셈이다.

만년설이 녹아 오아시스를 만들어 모든 생명체를 잉태하고 살아가게 하는 치롄산맥이야 말로 하늘이 내려준 천산이기 때문이다.

버드나무 가로수 길을 지나면 천하제일웅관(天下第一雄關)이란 성채에 걸린 높은 현판글씨가 보인다.

성채 안쪽 담벽은 진흙으로 깨끗하게 발라 놓았으나 주변의 성벽들은 비가 내리면 흘러내릴 것 같은 진흙덩이로 쌓아져 있다.

철문으로 된 성문의 본채를 들어서면 군사를 조련시켰던 사각형의 넓은 공간이 나타난다.

성문 정면의 천하제일웅관이라 쓴 현판아래 광화문(光化門)이란 매우 낯익은 현판이 나타난다.

광화문 계단을 돌아올라 3층 누각인 광화루 쪽으로 오르면 주변 일대를 한 눈에 조망할 수 있다.

이 성은 명나라 홍무 5년(1372년)에 축조된 것으로 높이 10m, 둘레가 733m로 2∼300명의 병사가 늘 상주하였다고 한다.

전투가 끊일 새 없었다는 지아위관은 성곽이 내외의 이중구조로 축조되어 있다.

외곽성과 11m를 사이에 두고 다시 쌓은 내성의 안쪽 넓은 공터엔 아직도 당시의 우물터가 남아 있다.

요새처럼 쌓아올린 내성에는 적의 동태를 세세히 살필 수 있도록 만든 3개의 뾰족한 망루가 허공을 찌를 듯 솟아 있다.

3층 누각의 성문을 지나면 세 번째 누각인 마지막 성채가 나타난다.

성채에서 앞을 바라보면 잡초들이 듬성듬성 자라고 있는 허허로운 들판과 붉은 산 능선들이 좌우로 펼쳐져 있다.

저 멀리 아득하게 이어지는 장성의 긴 성벽들이 황량한 벌판에서 쓸쓸하게 머리를 맞대고 있다.

눈앞에 펼쳐진 끝없는 고비사막을 바라보니 허허로웠던 내 마음에 한줄기 알 수 없는 그리움이 밀려오고 있다.

고비사막 저편 넘어 피바람을 일으키며 싸우던 병사들의 함성소리는 간 데 없고 낡은 성벽의 잔해만 남아 나그네의 발걸음을 멈추게 한다.

천하를 다투었던 영웅호걸들의 호령소리는 간데없고 번뜩이던 창검의 칼날 소리도 멎은 황량한 사막지대엔 살을 뚫을 듯한 햇살과 모래바다만이 고요히 숨 쉬고 있다.

푸른 하늘에 구름 몇 점만 무심히 흘러가고 있다.

버스터미널에 도착하여 오후 2시 30분 둔황 행 16인승 승합차를 탔다.

아스팔트 도로가 들판으로 이어져 있다.

출발한지 30분도 채 안되어 버스가 고장이 나는 바람에 고칠 때까지 사막의 열기를 견뎌야 했다.

이렇게 낡은 차에 보험료까지 30元을 내야하니 다소 황당했지만, 기다리는 수밖에 도리가 없었다.

수리를 한 후 1시간쯤 달리자 굉장히 큰 주유소가 나타나고 가끔씩 지나치는 작은 마을을 제외하고는 주변은 불모지다.

2시간 정도를 달려서 옥문시(玉門市)에 도착했다.

냇가에는 물이 흐르고 마을 주변의 넓은 들판에는 밀 수확이 한창이다.

들판에 펼쳐진 해바라기 꽃들이 눈부셨다.

마을을 벗어나자 또 다시 펄펄 끓는 사막의 아스팔트길이 계속되고 풀 한포기 없는 붉은 민둥산들을 보면 말로 표현하기 힘든 기묘한 분위기에 사로잡히게 된다.

에어컨도 없는 승합차 속 사막의 뜨거운 열기가 창문으로 쏟아져 들어올 때면 숨이 콱콱 막혔다.

따가운 햇살로 눈이 피로해지고 똑같이 반복되는 사막의 풍경에 지루함을 느끼게 된다.

1시간 반 간격으로 오아시스 마을이 나타났다 사라지고, 그 사이에는 메마른 사막이 놓여 있다.

대상들이 낙타를 타고 하루 간격으로 한 마을씩 지나갔던 길들을 이제야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시인·극동정보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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