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립무원(孤立無援)의 농촌
고립무원(孤立無援)의 농촌
  • 권혁두 기자
  • 승인 2010.09.06 2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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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논단
권혁두 국장 (보은 옥천 영동)

우리나라와 페루의 자유무역협정(FTA)이 지난달 30일 체결됐다. 이로써 우리가 맺은 자유무역협정은 칠레와 인도, 미국, 유럽연합(EU) 등 8개, 국가 수는 45개국으로 늘어났다. 지나간 대부분 협정과 마찬가지로 이번 칠레와의 무역협정도 농수산 분야를 제물로 삼았다. 가장 큰 혜택을 누릴 품목으로는 9~17%의 높은 관세가 적용됐던 자동차·컬러텔레비전·세탁기·냉장고 등이 꼽힌다. 특히 국산 자동차의 가격 경쟁력이 강화돼 10% 이상 판매증가가 예상된다. 페루로 수출하는 상용차 관세가 즉시 철폐되고 3000㏄ 미만의 승용차도 5년에 걸쳐 단계적으로 철폐되기 때문이다.

반면 국내 농수산물 분야에선 피해가 불가피하다. 정부는 민감한 품목인 쌀·쇠고기·고추·마늘 등 107개 품목은 이번 자유무역협정 대상 품목에서 제외했지만, 나머지 202개 농·수산물은 협정 발효 10년 뒤 관세가 철폐된다. 페루의 관심이 높았던 오징어는 5~10년 안에, 커피는 협정 발효 즉시 수입관세가 철폐되며, 아스파라거스와 바나나 등은 3~5년 안에 관세가 없어져 국내시장을 본격 공략할 전망이다.

농업인들 입장에서는 울고 싶은데 뺨 맞은 격이다. 자동차와 가전제품을 독점하는 대기업에 혜택이 집중되고, 그렇지 않아도 거듭된 시장 개방으로 초토화된 농수산업은 치명타를 맞는 상황인데도 걱정해주는 소리는 어디에서도 들리지 않는다.

사실 우리 농업, 특히 과수농업은 이미 2004년 칠레와 자유무역협정을 체결하는 순간 조종을 울렸다. 충북에서도 한·칠레 자유무역협정 이후 2008년까지 4년간 2400여 과수농가가 농업을 포기한 것으로 알려졌다. 1750여 복숭아 재배농, 670여 포도 재배농이 농사를 포기하고 폐원 보상금을 받았지만 이들이 다른 유망한 대체작목을 찾았다는 소리는 거의 듣지 못했다.

칠레와 협정 후 피해 과수농가 구제용으로 책정한 이른바 'FTA 지원금'도 갈수록 줄어들어 이제는 해당 지자체에 떨어지는 예산이 잔돈푼 수준이다. 자유무역협정만이 한국경제가 살길이라고 목을 매며 농촌에는 충분한 피해 보상을 하면 된다고 앞장섰던 중앙언론은 갑자기 'FTA 지원금 1000억원이 낭비됐다'고 시비를 걸고 나왔다. 준공한 지 1년도 안 된 '거점산지유통센터'들이 적자를 본다고 트집을 잡으니 아예 농업을 포기하고 자동차나 만들자는 소리다.

정부의 보완대책이 농업 경쟁력 강화보다 피해 보상이나 사양화 촉진 수준에 머무른 것도 문제다. 폐업 지원, 은퇴 유도, 피해 보전 등 피해 보상 중심으로 짜여진 정책 속에서 농업인들이 대안을 찾고 재기하기란 하늘의 별 따기다.

올해는 하늘까지도 농업인들을 외면하고 있다. 충북에서도 연초부터 이어진 이상기후에 태풍까지 겹치며 과수의 작황은 나빠지고 수확량은 줄어드는 이중의 피해가 발생하고 있다. 특히 수확기를 맞은 사과의 경우 태풍 곤파스로 심각한 낙과 피해를 본 데다 최근엔 과일 표면이 검게 썩어 들어가는 탄저병까지 극성을 부려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다. 탄저병은 복숭아, 포도, 감, 고추 같은 다른 과수와 작물로도 확산되고 있다고 한다. 내수면 양어장에는 불볕 더위로 수온이 오르며 잉어류에 치명적인 바이러스병이 번지고 물고기 기생충까지 발생해 어업인들을 울리고 있다.

그야말로 '고립무원(孤立無援)이요, 사면초가(四面楚歌)의 처지이다. 자신을 목조이는 자유무역협정을 반대하는 목소리조차 내기 어려울 정도로 위축돼 있는 것이 농촌의 현실이다. 정부의 친서민정책이 진정성을 가지려면 무엇보다 농촌의 시름부터 담아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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