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뿌리를 찾아서
기독교뿌리를 찾아서
  • 충청타임즈
  • 승인 2006.05.03 2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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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대한감리회 대소원교회
충주시 이류면 대소원(大召院)은 조선시대에 역원(驛院)이 있던 곳으로 대촌(大村)이라 불렀다.

지금은 충북선 철도가 횡단하고, 중부내륙 고속도로 충주IC와 연결된 3번 국도가 지나는 곳으로 지난해부터 충주산업단지 조성사업이 인근에 추진중이고, 충주대학교와 극동정보대학이 자리하고 있다.

기독교대한감리회 대소원교회(담임목사 황대성)는 아직은 전교인 150여명 정도로 전형적인 시골 교회지만, 이곳이 충북의 초대교회이다.

대소원교회는 충주 지방이 감리교 선교 구역이 된 이후 주변에 여러 교회를 설립할 당시 충주읍교회에서 1915년에 개척한 교회다.

교회창립 90년이 넘었지만, 1915년 교회창립년도 외에는 어떠한 역사자료도 남아 있지 않다.

이는 그동안 역대 교역자들의 잦은 전·출입과 일제강점기 한국전쟁 등 세속의 모진 바람속에서 교회역사 기록서를 보관하기란 쉽지 않았음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으며, 우리 민족의 아픈 상처를 되돌아보게도 한다.

대소원교회 마당에 들어서면 희뿌연 대기 아래 어깨를 억누르고 있는 도회지에서 잠시나마 벗어났다는 안도감으로 평안과 여유로움을 느낄 수 있었다.

“교회가 그리스도의 몸으로 살아 있을 때 하나님의 나라는 확장되고, 영적으로 살아서 역사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 대소원교회를 시무한지 6년째인 황대성 목사는 교회가 지역사회에 건강하게 뿌리내리고, 활기찬 교회로 바로서기 위해 무진 애를 쓰고 있다.

교인 수는 150명 남짓이지만 이 지역 주민 50%가 대소원교회 교인이라고 말하는 황 목사는 “주일 예배가 끝나면 차 한잔을 나누며 가족 같은 친교를 나눌 수 있는 교인들이 있어 세상에서 나는 가장 행복한 목사입니다.

”라고 말했다.

전 교인이 가족 같은 교회. 본래 초대교회는 가족교회였다.

가족이 모이고 가정이 모여 확대된 교회이 듯, 대소원교회 교인들도 가족들이 많고, 또 전체가 교회 가족이 되었다.

70, 80년대 젊은 청년들이 하나 둘 떠나버린 농촌, 그래서 시골목회는 실패라고 홀대받는 소외 속에서도 교회와 지역사회에 새바람을 일으키는역량을 보여준 미래지향적인 교회가 바로 대소원교회이다.

“모든 육체는 풀과 같고 그 모든 영광이 풀의 꽃과 같으니, 풀은 마르고 꽃은 떨어지되 오직 주의 말씀은 세세토록 있도다.

”(베드로전서 1:24∼25)“교회도 문화가 있어야 한다”고 말하는 황 목사는 시인이다.

오래전부터 중앙문단에서 활발한 활동을 하며 많은 문인들과의 교류를 가진 황 목사는 지역사회와 선교의 일익을 담당하고자 하는 비전으로 몇년 전부터 교회뜰에 봉숭아를 심었다.

봉숭아가 절정을 이루는 여름. 교회 마당에 무대를 설치하고 ‘봉숭아 꽃밭에서 시가 있는 음악회’를 주제로 시낭송과 정상의 음악가들을 초청해 공연을 펼쳐 교인 및 지역민들로부터 좋은 반응을 얻었다.

처음에는 소박하게 교회내 행사로 시작한 ‘봉숭아 꽃 잔치’는 해를 거듭하면서 교회가 주체가 돼 지역축제로 발돋움하고 있다.

지난해 ‘제4회 봉숭아 꽃 잔치’행사때는 ‘이류면 봉숭아 꽃잔치 위원회’가 발촉되기도 했으며, 충주시와 충주MBC, 충주예총이 후원하는 시 문화축제의 장이 되기도 했다.

이날 축제에는 충주시장과 국회의원 등 충주시 관계자와 한국기독교감리회 충북연회 이돈하 감독과 이병우 총무, 선교국 이요한 총무가 이 곳을 찾는 등 충주시와 감리교회뿐만 아니라 각 언론사 취재로 전국적으로 유명한 축제로 자리매김했다.

특히 손수건과 스카프에 봉숭아물을 들이는 체험코너, 교회마당에 설치한 조롱박 터널, 봉숭아 화전 코너를 마련해 행사장을 찾은 많은 관광객들로부터 감탄을 자아냈다.

황 목사가 대소원교회 부임당시만 해도 대소원교회는 90여년의 역사에 걸맞지 않게 침체의 늪에 빠져 있었다.

교회 안팎으로 갈등의 골이 깊었고, 노년층이 주류를 이루었다.

그러나 황 목사의 직접 선교와 제자훈련 등 열정적인 교육을 펼치는 가운데 어려움을 겪던 대소원교회 어린이집 운영이 정상 괘도에 오르면서 20-30대의 젊은 청·장년들이 교회의 주축을 이루고, 새신자 등록이 점점 늘어나자 교회는 활력을 되찾고 활력을 가진 교회로 탈바꿈하기 시작했다.

몇회에 걸쳐 봉숭아꽃잔치를 성공적으로 이끌어낸 황 목사는 “교인들이 자부심을 갖게 되었다는 것과 교회가 사회문화를 선도해 갈 수 있다는 것을 입증하게 된 것이 가장 큰 성과”라며 “교인들의 봉숭아 꽃잔치가 새신자들과의 거리감을 없애는 중요한 선교행사가 되고 있다”고 말했다.

또한 이러한 사실이 주위에 알려지자 지역사회의 불신자들 중에서도 함께 돕겠다는 자원봉사자들이 찾아오고 있다고 한다.

이처럼 교회가 역사 속에서 어떤 의식으로 살아가고 있느냐 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지역사회를 위해 교회가 수고하며, 관심과 사랑을 나누고자 할 때 접촉점을 얻게 되고, 복음을 전할 수 있는 관계중심적 전도가 되어질 때 교회에 속한 사람 하나하나가 진정으로 건강하고 행복한 믿음의 사람으로 거듭난다는 것을 황 목사와 대소원교회 교인들은 몸소 보여주고 있다.

흔히 말하는 중대형교회가 아닌 시골마을을 지키는 작은 교회임을 생각할 때 대소원교회의 ‘봉숭아꽃 잔치’는 농촌교회를 부흥시키는 좋은 모델이 되고 있다.

읍내도 아닌 작은 면단위에서 초대교회가 그랬던 것처럼 지역복음화와 강화된 역량의 고성이 교회와 지역을 넘어서 전국과 열방에 울려 퍼지길 기대해 본다.

/신준수기자lovemunhak@cctime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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