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융조 교수와 떠나는 역사문화탐방 - ⑧
이융조 교수와 떠나는 역사문화탐방 - ⑧
  • 연지민 기자
  • 승인 2010.08.24 22:5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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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석기인 흥수아이는 누구일까 ②
한반도 첫 사람유골을 발굴한 청원 두루봉동굴의 모습. 겹겹이 둘러쳐진 지층 들이 신비로움을 더해주고 있다.

세계적 유적지 평가 불구 아직도 공사현장으로 남아

이 교수 "현장보존 위한 기관 관심·지속적 연구 필요"

고고학자들의 노력과 김흥수씨의 제보 속에 오랜 역사의 베일을 드러낸 청원두루봉동굴은 우리 고장 충북이 시원문화로의 가치를 높여주었다. 흥수아이는 한국 민족의 기원 연구에 큰 성과를 가져왔으며, 세계적인 유적지로의 평가를 받고 있다.

이러한 유적지의 평가와는 달리 두루봉동굴 현장에는 아직도 석회암을 출토하는 공사현장으로 남아 있다. 그나마 유적지를 돌아가며 공사가 진행되고 있지만 구석기 유적지에 대한 보존 노력이 시급한 실정이다.

이융조 교수는 "10차례에 걸쳐 두루봉 동굴에 대한 조사가 진행됐지만 아직도 연구해야 할 것들이 많다"며 "당시 원숭이뼈와 코끼리 상아뼈가 출토된 뒤 여러 나라 학자들이 심도있는 연구로 앤더슨원숭이뼈라는 사실과 옛 코끼리의 상아뼈라는 사실이 밝혀졌다"며 현장 보존을 위한 관계 기관의 관심과 지속적인 연구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융조 교수가 구석기 동굴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청원지역에는 구석기 시대 외에도 우리나라 농경문화의 시작을 알 수 있는 소로리볍씨출토지도 오창 과학산업단지 내에 있다. 1994년 충북대박물관의 지표·발굴조사에서 출토된 소로리볍씨는 고대벼와 유사한 종으로 농경문화의 역사를 1만3천여 년 전으로 끌어올렸다.

이 교수는 "소로리볍씨는 여러 지구 중 A지구 토탄2구역에서 발굴됐다"며 "당시 볍씨를 찾기 위해 많은 동네 아주머니들이 체에 흙을 걸러내며 얻은 결과물"이라고 들려줬다.

이어 "2000년 벼 유전학 국제학술회의에서 소개된 뒤 다양한 국제 학술회의를 통해 소로리볍씨가 세계 최고의 볍씨이며, 재배 단계 이전의 순화벼로 인정받았다"고 말하고 "앞으로 아시아의 농경문화와 경로 등을 밝힐 귀중한 유적지"라며 가치를 설명했다.

 

1994년 충북대박물관의 지표·발굴조사에서 출토된 소로리볍씨.
'이융조 교수와 떠나는 역사탐방'에 4번째 참여한 이경래씨 가족 모습.


◈ 가족 탐방후기

"훼손된 유적지 보니 마음 아파"

△ 이경래(어머니)

기습적인 빗방울이 '이융조 교수와 떠나는 역사탐방' 4차를 힘차게 알리며, 다시금 시작된 설렘과 호기심으로 과거 속의 여행길에 올랐다. 이번 여행길에 특별한 손님들도 함께 동행해 더욱 뜻깊었다. 말로만 듣던 '흥수아이'의 첫발견 제보자이신 김흥수님도 함께 하셨고, 신형식 교수와 역사탐방의 진행과정을 생생히 담을 SBS기자들도 함께했다.

역사탐방을 하다 보면 언제나 안타까움과 우리의 무지함을 새롭게 깨닫게 된다. '청원 소로리 유적'은 한 알의 볍씨가 가져다 주는 중요한 역사적인 의미를 말해주고 있다. 그런데 유적출토지를 알리는 표적지가 그 모습이 참으로 애처로웠다. 무관심과 관리소홀로 유명무실하게 방치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뿐인가! '작은 용굴'의 암벽에는 여기저기 훼손의 흔적과 낙서들로 몸살을 앓고 있었다. 문화재 보호와 발굴을 위해서 그 지역을 특별히 보호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화려한 인공장식으로 많은 사람들의 구경거리로 전락한 것 같아 아쉬웠다.

더욱 마음이 아픈 것은 한반도 첫 사람유골을 발굴한 '흥수굴' 또한 처음의 모습과는 많이 달라지고 훼손돼 발굴이 어렵게 됐다는 교수님의 말씀을 통해 우리역사의 중요성과 귀중함을 알지 못하고 홀대하고 방치해 두었다는 반성과 함께 정부와 지방자치 단체에서도 지속적인 관심과 도움을 줬으면 하는 바람을 가져 본다.

이 교수님께서 바쁜 일정에도 불구하고 왜 이리도 열과 성을 다해 역사성을 강조하시는지 확실히 알게 돼 가슴이 뭉클했다.

△ 전주성(청주중 1학년)

이융조 교수님과 벌써 역사탐방을 한 지 4번째가 됐다. 이제는 이융조 교수님이 왜 이 역사탐방에 많은 애착과 관심을 갖고 열강을 하시는지 알 수가 있을 것 같다.

나의 장래 희망이 '고고학자' 또는 '역사학자'가 되는 것인데 교수님을 통해 많은 감명과 꿈을 갖게 됐다. 고고학이란 것이 어떤 것인지 한 발짝 더 가까이 다가선 것 같아 감사하다.

처음에는 엄마의 강요로 따라 나선 탐방이었지만 이제는 기다림과 설렘을 갖게 되었고 그래서 이번 탐방에는 친구 2명을 데리고 왔는데 친구들도 즐거워했다. 구석기에도 아파트가 있었나 보다. 두루봉 흥수굴은 현대의 아파트 구조와 비슷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겹겹이 둘러쳐진 지찼?이 너무도 멋지고 웅장했다. 무분별한 개발로 훼손이 많이 됐다고 하니 조금은 불만이 생겼다.

어른들은 왜 지금 눈앞의 일들만 중요하게 생각할까 어른들은 우리에게 미래를 강조하지만 '과거가 없는 미래는 없다'는 어느 책에서의 말을 이야기해 주고 싶다.

△ 전유진(내덕초 4)

흥수굴을 가는 길은 너무 찐득찐득하고 힘들었지만 흥수굴의 배경은 너무도 멋지고 아름다웠다.

흥수아이는 구석기 시대에도 아파트에 살았나 보다. 굉장하다. 몇 층에서 살았을까 어떻게 들어가고 나왔을까 나는 7~8층이 좋은데.

△ 전지성(내덕초 1)

책에서 읽은 흥수아이를 박물관에서 직접 만나게 돼 신기했고, 흥수아이가 있던 집에 가보니 무척 멋졌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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