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러나는 양심이라도 보았으면
물러나는 양심이라도 보았으면
  • 권혁두 기자
  • 승인 2010.08.23 22:1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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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논단
권혁두 국장 <보은·옥천·영동>

'혹시나' 했더니 '역시나'다. 오히려 의혹의 수위는 높아지고, 해명에 나선 당사자들의 후안무치는 심해졌다. 요즘 인사청문회장에서 진땀을 빼고 있는 인사들 얘기다.

한 장관 내정자는 도시 빈민의 애환과 고혈이 배어 있는 쪽방촌 건물에까지 투자의 손길을 뻗쳤다가 문제가 되자 '노후대책'이라고 버젓이 해명했다. 상가를 3개나 갖고 있고 두둑한 노후연금이 보장된 고위공직자가 쪽방촌에서 노후대책을 찾는 기괴한 현실 앞에서 서민들은 경악하고 있다. 또 다른 장관 내정자는 1년에 평균 한 번꼴로 17차례나 부동산 거래를 했으나, 주거용 부동산 구매는 3건이고, 나머지는 콘도미니엄과 오피스텔, 토지, 아파트 분양권 전매 등이었다. 시세차익을 노린 투기 흔적이 뚜렷하다.

아파트 매입자금 출처에 대해 의혹을 받던 총리 내정자는 선출직 공직자에게는 있지도 않은 퇴직금을 받아서 충당했다고 둘러대 의혹을 부풀렸다. 말도 안 되는 해명이 다시 문제가 되자 퇴직금을 곧바로 적금수입 등으로 정정하는 순발력을 보였다. 국민과 술래잡기를 하자는 것도 아니고 아예 가지고 노는 식이다.

드러나는 문제점들이 워낙 다양하고 치졸하다 보니 '위장전입' 같은 사례는 이제는 하자 축에도 끼지 못하게 됐다. 명백한 현행법 위반임에도 불구하고 청문회장에서도 거의 거론되지 않는다. 그러나 최근 한 중앙언론이 여론연구소와 공동으로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국민의 정서는 전혀 다른 것으로 나타났다. 이 조사에 응한 시민 65%는 위장전입 전력자의 고위직 임명 여부를 묻는 질문에 "임명해선 안 된다"고 답했다. "위장전입을 했더라도 능력이 뛰어나면 기용해도 된다"는 답변은 절반도 안 되는 31.9%에 그쳤다고 한다. 당사자와 국회의원들은 이제는 위장전입 정도는 허물도 아니라는 안일한 인식을 갖게 됐지만 국민들의 도덕적 잣대는 엄격하다. 선량들조차 국민의 공분은 아랑곳하지 않는다는 얘기다.

문제는 도덕 불감증이 일반 대중에게로 전염되고 있다는 점이다. 고위직 인사 때마다 각종 의혹들이 춤을 추다 보니 대한민국 지도층 인사들의 보편적 도덕성이 원래 이 정도 수준인지 의문을 갖던 국민들이 이제는 확신을 품게 됐을지도 모른다. 중앙부처 1급 이상 고위 공직자와 정부 산하단체 기관장 708명 중 20%인 142명이 서울 강남과 경기도 과천의 재건축 아파트를 소유하고 있다는 결과가 공개돼 서민들에게 허탈감을 안긴 것이 엊그제 일이다. 27명은 거주지 외에 상가·오피스텔 등 4채 이상의 부동산을 갖고 있었고, 최대 7채까지 보유한 사람도 드러났다. 본인 스스로 공직자윤리위에 신고한 내역이니 실제는 더할 것이다. 기용하는 고위직마다 구린내를 풍기는 것이 이해가 간다. 어쩌다 신호등 한 번을 어기고도 누가 보았을까 스스로 자책하는 선량한 서민들에게 현행법과 상식을 다반사로 뒤엎고도 당당하게 입신양명하는 인사들의 행렬은 박탈감과 배신감을 안긴다. 그 박탈감의 종착지는 "나만 법대로인가"라는 세상에 대한 항변과 가치의 혼란일 것이다. 사회의 건강성을 야금야금 좀먹는 파행인사가 거듭되고 있지만 당사자나 청문회장에 앉아 있는 국회의원들은 물론 인사권자까지도 그 심각성에 대한 인식은 없는듯하다.

공직 상?恝?도덕적으로 성한 인물이 없어 결함 투성이들을 기용할 수밖에 없다고 치자. 그렇다면 최소한의 염치라도 보여줄 인물이라도 나와야 하는 것 아닌가. 본인이 알아서 책임지고 물러나는 인사라도 한 명 나와주었으면 좋겠다는 얘기다. 이런저런 핑계를 대며 도망치다 퇴로가 완전히 막혀버리면 '실수였지만 부적절한 행위였다'는 식으로 넘어가는 비겁한 대응방식이 이제는 교과서가 됐다. 내정자들 속에서 국민들의 답답한 심정에 한 줌 훈풍이나마 가져다 줄 양심을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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