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고-윤진철
특별기고-윤진철
  • 충청타임즈
  • 승인 2006.04.20 2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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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사리 장애인야학의 학생인 권은춘씨(34·지체1급)가 얼마 전 둘째 아이를 출산했다.

모두들 축하하는 속에서 정작 남편인 이응호씨(38·뇌병변1급)는 얼굴이 유난히 어두웠다.

이 부부는 둘 다 중증지체장애인으로 활동보조인이 없으면 생활 하기가 어렵기 때문이었다.

권은춘씨가 임신 9개월째 부터는 혼자 식사를 준비하는 것이 어려웠지만, 활동보조인이 제도화되지 않은 현실에서는 자원 활동가나 지인들의 도움만이 유일한 방법이었다.

하지만 한계는 분명했고, 가끔은 산모가 끼니를 거르는 일 또한 일어났다.

이제 이들 부부는 둘째아이의 육아문제에 대해서 고민하고 있다.

필자는 예전 권은춘씨로 부터 첫째아이의 얘기를 들은 적이 있는데 중증장애인으로 아이를 키우기가 어려워 얼마간 고모들에게 보냈다고 한다.

얼마 후 고모들 손에 성장하던 아이를 만났는데, 자기가 엄마인지 몰라 본다며 한참을 울면서 얘기했었던 것이 기억난다.

4월20일 오늘은 26번째 맞이하는 장애인의 날이다.

이날은 재활의 의미가 있는 4월에 통계적으로 비가 제일 오지 않는 20일로, 1981년에 시작되었다고 한다.

장애인에 대한 이해와는 전혀 상관없는 날짜에 ‘장애인들의 날’이라고 행사를 진행하고 있는 것이다.

지난 15일 서울시청에서는 장애인이면서 장애인의 날에 초대 받지 못한 풍경이 있었다.

30여일째 서울시청 앞에서 활동보조인 제도화를 요구하며 노숙농성을 벌이고 있는 중증장애인들, 바로 옆 국가인권위원회에서 장애인교육지원법 제정을 위해 38일째 목숨을 건 단식을 하고 있는 장애인부모들이 있었다.

대조적으로 그 한편에선 장애인의 날 행사에 초대되어 비장애인들의 시혜와 동정의 눈초리 속에 364일을 포기한 채 단 하루 밝은 얼굴로 언론의 플래시 세례를 받는 장애인들이 있었다.

이날의 대조되는 두 풍경은 하나는 ‘빛’ 또 다른 하나는 ‘어둠’이었다.

364일 집안에만 갇혀 지내다 4월 20일 단 하루, 장애인들은 정부 또는 관변단체가 동원한 행사에 참여해 볼거리와 먹을거리를 제공받으며, 행복한 모습으로 언론에 비춰진다.

하지만 이 긴 하루가 지나면 언제 그랬느냐는 듯, 장애인들은 다시 방구석으로 돌아가 364일 후 다시 돌아오는 장애인의 날을 기다려야 한다.

전체 장애인들 중 이동 수단이 마땅치 않아 매일 외출하지 못하는 장애인이 40%에 달하고, 70% 이상의 장애인들이 실업에 허덕이고 있으며, 50%가 넘는 장애인들의 학력이 초등학교 졸업 이하다.

장애인의 날에 대한 정부 차원의 대대적인 광고와 선전 덕분에 장애인들의 실체적인 현실은 저 깊은 땅 속에 숨겨지고, 장애인의 날을 이용해 온갖 경제적, 정치적 이득을 노리는 사람들만 득세하고 있다.

364일 사회적 차별과 시혜와 동정의 눈초리 속에서 살아가고 있는 장애인들의 삶, 그리고 하루동안의 웃음, 우리 사회의 기만적인 모습이다.

더 이상 억압받고 차별 받는 장애인을 이용하는 장애인의 날이 아닌 4월 20일 하루만이라도 장애인의 목소리에 귀기울여 장애인의 현실을 이해하고 공감하며 시혜와 동정의 날이 아닌 장애인의 차별을 함께 깨어나가는 날이 되어야 한다.

올해는 통계적으로 비가 오지 않는다던 4월 20일에 비가 내린다고 한다.

가뭄에 단비가 내리듯 지난 26년간의 잘못된 장애인의 날은 빗물에 씻겨내고 새로운 장애인의 날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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