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융조 교수와 떠나는 역사문화탐방 -⑦
이융조 교수와 떠나는 역사문화탐방 -⑦
  • 연지민 기자
  • 승인 2010.08.17 21:5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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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석기인 흥수아이는 누구일까 ①

시민 제보로 깨어난 구석기 역사

석회암 채취 발파 작업중 동굴 드러나
사람뼈·석기·동물화석 발굴 높은가치
김흥수씨 공로 인정 '흥수아이' 이름

충청타임즈가 주관하고 청주문화원·충청북도·한국선사문화연구원이 함께한 '2010대충청방문의 해' 역사문화유적탐방이 지난 14일 청원 일원에서 진행됐다. 참가자 80여명이 함께한 이날 행사는 이융조 교수의 안내로 구석기 대표유적인 청원 두루봉동굴과 청원 소로리볍씨출토지를 탐사했다.

아침부터 컴컴했던 하늘이 급기야 장대비를 뿌렸다. 역사탐방 참가자들이 몇이나 올까 싶을만큼 비는 그치지 않았다. 오전 9시 청주문화원에 도착하니 우려와는 달리 많은 학부모와 학생들이 세미나실을 가득 메우고 있었다. 이번 탐방은 청주·청원지역이라 참가자가 두 배였다. 4번째 탐방을 진행하는 동안 이제 가족처럼 느껴지는 탐방참가자들도 많았다.

 

 


발굴 현장 탐사에 앞서 이융조 교수의 강연으로 발굴 당시의 현장을 생생한 사진과 목소리로 들려주셨다.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세계인들도 궁금해 하는 청원 두루봉동굴에 대해 이 교수는 "현재 이곳은 세계 구석기유적지로 높이 평가받고 있지만 1970년대만 해도 석회암을 채취하던 공사장이었다"며 "1976년 이 일대에서 석회암 채취를 위한 발파작업을 하던 중 드러난 동굴을 연세대학교와 충북대학교 박물관이 긴급발굴에 나서면서 구석기문화유적지로 판명됐다"고 설명했다. 또 "청원 두루봉유적지에는 2굴, 15굴, 새굴, 처녀굴, 흥수굴 등의 여러 굴이 있으며, 사슴과 동물의 턱뼈, 원숭이 아래턱, 큰 곰의 송곳니 등이 발견됐다"면서 "그중 흥수굴에서는 완전한 사람뼈와 석기, 동물화석들이 모두 제자리에서 발견되었고, 이후 연구를 통해 사람뼈 중 1호는 만 6~7세의 어린아이의 것으로 지금의 흥수아이로 명명됐다"고 들려줬다.

청원두루봉동굴의 가치는 석기와 짐승뼈, 사람뼈 등 구석기 유물이 모두가 발굴된 이상적인 동굴이라는 게 이 교수의 설명이다. 특히 흥수아이의 발굴은 역사상 구석기 발굴에 획기적인 획을 그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하지만 흥수아이의 발굴에는 숨은 공로자가 있다. 바로 김흥수씨다. 석회암을 채취하던 현장에서 인부들이 찾아낸 사람이빨을 제보하면서 청원두루봉동굴은 새로운 역사를 쓰게 됐다. 잠시 김흥수씨에게 당시 상황을 들어보았다.

 

 


◇ 흥수아이 발굴에 결정적인 제보, 김흥수씨

"청원두루봉동굴이 구석기 유적지로 판명나면서 수많은 학자들이 발걸음을 했어요. 발굴로 인해 공사는 계속 지연되면서 손해도 많이 봤어요. 이융조 교수님은 거의 매일 현장을 방문해 뭔가 나오면 꼭 전화해 달라고 신신당부를 했지요."

당시를 회상하던 김흥수씨는 이 교수의 열정 아니었으면 뭉개버렸을 거라며 너털웃음을 지으셨다.

"어느 날 두루봉에서 흙을 파던 사람들이 이빨 2개를 주웠어요. 이빨을 들고 제보를 해야 할지 말아야 할지 3일간 고민했어요. 그러다 후회할 일을 만들지 말자는 생각에 이 교수님께 전화했지요."

전화를 받고 현장에 달려온 이융조 교수는 주변 일대를 조사하게 된다. 12월이라 땅이 얼고 날씨는 추웠지만 당시의 발굴작업은 우리나라 구석기 역사를 새롭게 쓰는 계기가 되었다. 바로 지금의 흥수아이가 깊은 시간의 베일에서 깨어난 것이다. 김흥수씨의 제보가 없었다면 흥수아이는 후세들이 짐작조차 할 수 없었을 것이다. 이런 공로로 출토된 어린아이에 흥수라는 이름이 붙여졌다.

"오래된 일이 역사에 기록돼 아이들과 함께 와 보니 새롭다"는 김흥수씨는 "아직도 우리나라 곳곳에선 개발로 인해 묻히는 역사유적이 많다"며 법과 제도를 바꿔 문화재 보존에 나서야 한다고 피력했다.

 


◈ "유적지 무관심·보존 아쉬움 가득"

 

참가학생 탐방후기 청주 내덕초 3학년 이진영

8월 14일 토요일. 날씨하늘이 화난날

오늘은 차를 타고 이융조 교수님을 만나기 위해 청주문화원으로 '고고 씽~'. 이융조 교수님과 떠나는 선사유적 탐방 4차날이다. 시작한 지 얼마되지 않은 것 같은데 벌써 4차라니. 이제 조금이지만 선사유적이 무엇이 있는지, 어떻게 발굴된 것인지 잘 알 수 있었다.

이번 탐방은 청주문화원에서 2시간 정도의 강의를 듣고 시작됐다. 정말 교수님은 대단하신 분인 것 같다. 어쩜 그렇게 설명을 재미있게 잘해 주시는지.

우리들은 첫 번째 코스인 충북대 박물관으로 갔다. 그곳에서 흥수아이를 만났다. 남자인지, 여자인지 알 수는 없었지만 착하게 생겼다. 그리고 충북대 박물관팀이 10차례 발굴한 굴 2굴, 새굴, 처녀굴, 흥수굴이 있는데 그곳에서 나온 석기, 짐승뼈, 사람뼈 등 구석기 유물이 발굴됐다고 하셨다. 이 세 가지 유물이 함께 발견된 곳은 이곳밖에 없다니 가깝게 사는 내가 정말 자랑스러웠다.

많은 유물 중에서도 아득이유적인 별자리 돌판이 가장 기억에 남았다. 대청댐 수몰지역에서 발굴된 청동기시대의 남성무덤에서 발견된 것인데 돌에다 별자리를 그려 넣은 판이었다. 선사시대 사람들이 그렇게 지혜로웠다니 정말 신기했다.

두 번째 코스는 오창과학산업단지 공사 중 발견된 청원 소로리 볍씨 유적지이다. 그곳은 가장 오래된 볍씨가 출토된 곳으로 우리나라 농경생활의 시작이라고 하셨다. 청원 소로리 유적지에는 기념 비석이 있었는데 풀과 나무에 가려져 잘 보이지 않았다. 위치를 잘 모르는 사람들은 그냥 지나칠 수 있어 아쉬웠다. 힘들게 발굴한 곳인데.

마지막 코스는 바로 청원두루봉이었다. 그곳도 역시 너무 안타까운 곳이었다. 광산 작업도중 발견된 곳이여서 일을 해야 하기 때문에 그대로 보존할 수가 없었다고 하셨다. 그 현장을 보고 마음속으로나마 흥수아이에게 고맙다는 말을 했다. 한국민족의 기원연구에 도움이 될 수 있어서. 이융조 교수님과 발굴작업하신 분들, 제보해 주신 분들께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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