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안하다, 너희 탓이 아니다
미안하다, 너희 탓이 아니다
  • 충청타임즈
  • 승인 2010.08.16 22:09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낮은 자의 목소리
강연철 <음성 감곡성당 보좌신부>

"신부님! 우리도 휴대폰 주시면 안 돼요? 휴대폰 없으니깐 불안해 못살겠어요."

"맞아요, 가만 있으면 제 주머니에서 막 진동이 울리는 것 같은 느낌이 들어요."

"너도 그래? 자기도 모르게 벨소리가 들리는 것 같아 마음이 막 불안해지지 않냐?"

"맞아, 나도 친구한테서 문자오기로 했는데... 어떻게 해..."

중고등학생 여름행사를 할 때 학생들의 휴대폰을 모두 걷었더니만, 그날 저녁에 아이들이 난리가 났습니다. 휴대폰을 다시 돌려달라고 말입니다. 함께 참여했던 다른 성당에서는 아마도 휴대폰을 걷지를 않았던가 봅니다. 그래 몇몇 아이들은 제게 따지듯 이유가 무엇인지를 묻기도 하였습니다. 중고등학생들이 사업을 하는 것도 아니고, 무슨 휴대폰이 그렇게 필요한 것일까? 특히 여학생들의 경우에 병적이었습니다. 저희들끼리 하는 말이 '금단현상'이 나타난다는 표현을 쓸 정도이니 얼마나 휴대폰의 노예가 되고 있는가를 스스로 보여주는 것이었습니다.

남학생들에게는 휴대폰에 대해서 거기까지는 아니지만, 다른 분야, 즉 컴퓨터 게임이라는 부분에서 거기 못지 않은 중독 증세가 나타납니다. 한번은 게임에 중독된 아이와 등산을 가게 되었는데, 이 아이는 상대방이 그 내용에 관심이 있든 없든, 알아 듣건 말건 간에, 줄기차게 게임 이야기를 했습니다. 그래서 "아니, 넌 게임 이야기 말고는 할 얘기가 없니?" 하고 물으니 자기 머릿속에는 오로지 게임 생각만이 있어서 할 이야기가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한창 책을 읽고, 미래에 대해서 고민도 하고, 다른 유익한 것들을 열심히 배워도 시원찮은 그 소중한 때에, 그 아이의 머릿속에는 부수고, 때리고, 찌르고, 죽이는 게임만이 가득하다는 것이었습니다. 막 피어나는 아름다운 청춘의 아이들이 그깟 조막만한 기계의 노예가 되어 온통 정신을 빼앗기고 있고, 컴퓨터 게임의 노예가 되어 황폐해 지고 있는 모습입니다. 그렇다면 누가 이 아이들에게 코뚜레를 뚤어 끌고 가고 있는 것일까? 그것은 죄악으로 기울고 있는 이 사회의 분위기입니다.

천주교 대전교구장 유흥식 주교님은 이번 성모승천 대축일을 맞아 담화문을 발표하셨습니다. 거기서 주교님은 간디 무덤 입구에 새겨진 문구를 인용하셨습니다. '국가가 멸망할 때 나타나는 사회악'이란 "원칙 없는 정치, 노동 없는 부(富), 양심 없는 쾌락, 인격 없는 교육, 도덕 없는 상업, 인간성 없는 과학, 희생 없는 종교"라고 말입니다. 그러면서 주교님은 이 말이 "우리 사회를 너무도 잘 표현하고 있는 듯하여 마음이 씁쓸하고 답답해 온다"는 말씀도 덧붙이셨습니다.

주교님께서 인용하신 문구처럼 우리 사회에는 모든 부분에서 좋지 않은 징조가 드러나고 있습니다. 그중에서 특히나 상업의 도덕성 결여는 이 사회가 황금만능주의로 질주하게 만들고 있습니다. 그리하여 이 사회는 돈이면 모든 것이 해결되고, 그 돈을 벌기 위해서는 물불을 가리지 않게 만듭니다. 대상이 코흘리개 아이이건, 연로하신 어르신이건 간에 그들은 소비자이고, 돈입니다. 그 소비자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고, 나아가 사회에 어떤 악영향을 미치는지는 고려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우리 어린 학생들마저도 휴대폰을 목에 하나씩 걸고 다니게 되었으며, 틈만 나면 컴퓨터 모니터를 쳐다보며 자판과 마우스를 현란하게 움직이는 달인이 되게 만들었습니다. 어린 싹들이 황폐해지는 것을 기업들은 아는지 모르는지, 돈 버는 데 혈안이 되어있습니다. 그래서 당분간은 환호할지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끝까지 그들이 그리 웃을 수 있을까? 배가 가라 앉는데, 꼭대기에 있다고 안전할 수는 없습니다. 한 몸이기 때문입니다. 눈앞의 이익에 급급하는 어리석음을 떨쳐 버리고, 함께 모두가 살길을 기업들이 찾게 되기를 소망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