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오는 날의 수채화
비오는 날의 수채화
  • 충청타임즈
  • 승인 2010.08.10 0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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낮은 자의 목소리
최현성 <용암동산교회 담임목사>

지난주에 많은 비가 내렸습니다.

덥다가 비가 내리니 모두들 비가 고맙다고 생각하지만 조금 지나면 척척하다고 짜증을 내며 햇볕을 그리워하게 됩니다. 그러다 비가 지나가고, 또 무더위가 시작되면 덥고 끈적끈적하다고 짜증을 내며 비가 내릴 때가 더 좋았다고 말을 합니다.

그만큼 내 생각과 내 형편에 모든 것을 맞추어 생각하는 간사한 동물()이 바로 인간입니다. 만족하지 못하는 우리의 모습 속에서 "모든 일에 감사하며 산다는 것이 무엇일까"를 생각하게 됩니다. 비가 퍼부어도, 햇볕이 내리쬐어도 감사할 수는 없는 것인지.

비가 내리면 가장 많이 보이는 것이 우산입니다. 높은 곳에서 보면 우산의 행렬이 너무나도 멋이 있습니다. 이런 저런 색의 아름다움이 조화되어 걸어가는 모습이 정겹게 보입니다. 어릴 때 불렀던 동요가 생각나 그 가사를 음미해 보았습니다.

이슬비 내리는 이른 아침에

우산 셋이 나란히 걸어갑니다.

빨간 우산, 파란 우산, 찢어진 우산

좁다란 학교 길에 우산 세 개가

이마를 마주 대며 걸어갑니다.

문득 우산의 모습을 바라보면서 나 자신의 존재의미를 깨닫게 됩니다. 모진 비바람이 불어도 우산이 있으면 비를 피하고, 바람을 피하고, 밖으로 나가 활동할 수가 있습니다. 그런데 우산은 받았지만 빗발이 세차게 후려치고, 바람이 불면 우산이 미치지 못하는 아랫도리는 젖어있는 모습을 봅니다. 그 모습 속에서 '나 자신이 모든 이들의 어려움을 피하게 해주는 우산이 되어야지'하는 좋고, 아름다운 마음이 생깁니다.

예배당에서 올라 기도하다가 꽃에 붙어 숨죽이고 있는 '여치' 한 마리를 발견했습니다. 얼마나 예쁘게 보이던지 사진기를 가져다 한 장 찍었습니다. 마치 우리들이 기도하고, 찬송하고, 말씀을 묵상하는 소리를 들으며 함께 은혜를 나누고 있는 것 같았습니다.

여치에게 물어보았습니다. "여치야! 너 거기에서 무엇을 하고 있니"그랬더니 여치가 하는 말, "내가 이 예배당을 늘 지키고 있지."

아주 작아서 잘 보이지는 않지만 강단의 십자가와 꽃과 어우러져 참 예쁘고, 아름답게 보입니다. 우리들의 모습도 이처럼 아름다웠으면 합니다.

교회 앞 주차장에서 우산을 받쳐 들고 예배당을 바라보았습니다. 비가 억수같이 내리는 데도 우리 교회의 십자가는 억센 빗줄기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그 비를 다 맞으며 그 자리에서 우리들을 지켜보고 있습니다. 우리의 슬픔을 대신해 아픔을 나누고 있는 예수님을 생각해 봅니다. 우리들의 마음도 어떤 고난이 와도 이처럼 흔들리지 않고 든든했으면 합니다.

목양실 유리창을 세차게 때리는 빗소리가 정겹게 다가옵니다. 마치 가을을 재촉하듯이 힘차게 내리고 있습니다. 빗줄기에 사물이 잘 보이지는 않지만 그 비를 맞으며 생명이 성장하고, 생명이 기쁨 속에 웃고 있는 모습을 봅니다. 우리들의 삶도 이처럼 많은 이에게 기쁨과 위로를 주었으면 합니다.

지난주 입추(立秋)도, 말복(末伏)도 한꺼번에 지났습니다."참으로 절기는 신기하다!"라는 생각을 해 봅니다. 때가 되면 그 무더웠던 기운도 한풀 꺾이고 선선해지니 말입니다.

올해는 9월 중순까지 무더위가 계속된다지만 그래도 입추가 지나고, 말복도 지났으니 가을이 성큼 다가왔음을 느낍니다. 비 내리는 오후 조용한 마음으로 하나님께 기도해 봅니다.

"주님! 풍성한 가을을 맞기 위해 우산처럼 이웃을 돌아보는 마음으로, 여치처럼 조용한 기다림과 지킴으로, 십자가처럼 흔들리지 않는 든든함으로, 빗방울처럼 기쁨을 주기 위해 힘찬 모습으로, 조금만 더 힘을 내서 얼마 남지 않은 여름을 알차고 보람 있게 보내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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