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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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충청타임즈
  • 승인 2006.04.11 2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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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의 마음이 어느 한쪽으로 기울어 쏠리는 것은 매우 위험하다.

감정이라고 하는 것이 대부분 그렇게 치우쳐 쏠리는 마음을 일컫는 말일 터, 그래서 감정의 기복에 휩쓸리지 않고 어떤 것이든지 그저 담담하게 보겠다고 하며 살아왔고, 제법 그만큼은 되었다고 생각했는데, 최근 몇 가지 일들은 그런 생각이 착각이었음을 스스로에게 폭로시키기에 조금의 모자람도 없다는 생각이다.

엊그제 또 늘 가까이서 본 사람과 만나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다.

처음엔 간단한 내 이야기를 하려고 자리를 만들었는데, 내 이야기는 그야말로 몇 초 사이에 다 했는데, 그의 이야기는 밤을 새울 만큼 길어지고 있었다.

평소에도 그의 삶이 가파르다는 것을 어느 정도는 느끼고 있었는데, 이야기를 나누면서 두어 갈피 더 깊은 곳과 두어 발짝만큼의 넓이를 더 보니 그동안 알던 것과는 그야말로 새발의 피라고 할 만큼 훨씬 복잡하고 거칠고 팍팍한 곳을 헤쳐나가느라고 견딜 수 없도록 지쳐 있는 모습을 보게 된 것이다.

게다가 그렇게 지쳐서 무엇이 최선인지, 어느 방향이 나아가야 할 곳인지에 대한 감각까지도 심하게 흐트러져 있다는 것이 내가 본 그의 모습이었다.

문제는 그걸 보는 내 마음의 흔들림이었다.

그가 내 마음에 차지하고 있는 비중이 얼마나 되는지를 또렷하게 느끼는 순간이기도 했다.

사정없이 뒤엉켜버린 그의 삶 앞에서 내가 걷잡을 수 없이 흔들린다는 것.무엇인가 하고 싶다는, 그렇게 도와주지 않으면 안되겠다는 마음이 자꾸만 꿈틀거렸다.

그걸 보면서 그렇게 비어져 나오려는 마음을 꾹꾹 눌러 억제하면서 나를 정리하는 데에는 그로부터 꼭 하루가 걸렸다.

그가 아무리 힘들어도, 그리고 그를 내가 아무리 아껴도 그를 도울 수 없다는 것, 비록 내가 또렷한 답을 알고 있다 하더라도 마찬가지라는 것이 마지막 내 판단이었다.

어느 한사람의 운명에 개입한다는 것이 부질없고 섣부른 일이라는 생각과 함께 더구나 감정의 이입 때문에 팔을 걷어붙이는 일은 잘못된 판단이라는 것을 알았다.

그것은 일을 풀기보다는 오히려 더 꼬이게 만들기 십상이라는 것까지 다시 확인했을 뿐만 아니라, 그동안 그렇게 ‘있는 그대로 보기’를 연습했다고 했는데, 그게 어림도 없었다는 자신의 한계까지 보게 된 것이 그 순간이었으니, 때로 시간이 스승일 수도 있음을 다시 확인한 경험이기도 했다.

이제 다시 마음을 추슬러 겨우 균형을 잡기 시작했다.

그동안 나를 폭풍처럼 흔들었던 몇 가지 일들과 사람들, 결국은 내 유약함이 빚어낸 감정의 흔들림일 뿐이었음을 자각하고 모든 사람들이 그렇게 흔들리며 살아간다는 것이며, 내가 중심과 균형을 세우지 못할 때는 그 흔들리는 사람들이 다가와서 기대거나 안긴다 하더라도 함께 쓰러질 수밖에 없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문제는 상대방의 것이 아니라 내 중심과 균형이 중요한 것이다.

힘든 사람이 나일 때 그만큼 힘든 사람을 만나는데, 그 중 먼저 중심을 잡는 사람이 없이 기대거나 손을 맞잡으면 둘 다 걷잡을 수없이 무너져내리고 만다는 것까지를 배우면서 이번 흔들림에서 다시 나를 되찾는 일이 바로 지금 내 안에서 일어나고 있다.

그리고 이제는 그가 와서 내게 답을 묻는다면 내가 본 것들을 말해 줄 수도 있지 않겠는가 싶은데, 아직 그는 자기 문제를 말하기는 했으나 내게 답을 묻지는 않으니 아직은 말을 할 시점은 아니라는 생각이다.

그저 기다릴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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