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정이라고 하는 것이 대부분 그렇게 치우쳐 쏠리는 마음을 일컫는 말일 터, 그래서 감정의 기복에 휩쓸리지 않고 어떤 것이든지 그저 담담하게 보겠다고 하며 살아왔고, 제법 그만큼은 되었다고 생각했는데, 최근 몇 가지 일들은 그런 생각이 착각이었음을 스스로에게 폭로시키기에 조금의 모자람도 없다는 생각이다.
엊그제 또 늘 가까이서 본 사람과 만나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다.
처음엔 간단한 내 이야기를 하려고 자리를 만들었는데, 내 이야기는 그야말로 몇 초 사이에 다 했는데, 그의 이야기는 밤을 새울 만큼 길어지고 있었다.
평소에도 그의 삶이 가파르다는 것을 어느 정도는 느끼고 있었는데, 이야기를 나누면서 두어 갈피 더 깊은 곳과 두어 발짝만큼의 넓이를 더 보니 그동안 알던 것과는 그야말로 새발의 피라고 할 만큼 훨씬 복잡하고 거칠고 팍팍한 곳을 헤쳐나가느라고 견딜 수 없도록 지쳐 있는 모습을 보게 된 것이다.
게다가 그렇게 지쳐서 무엇이 최선인지, 어느 방향이 나아가야 할 곳인지에 대한 감각까지도 심하게 흐트러져 있다는 것이 내가 본 그의 모습이었다.
문제는 그걸 보는 내 마음의 흔들림이었다.
그가 내 마음에 차지하고 있는 비중이 얼마나 되는지를 또렷하게 느끼는 순간이기도 했다.
사정없이 뒤엉켜버린 그의 삶 앞에서 내가 걷잡을 수 없이 흔들린다는 것.무엇인가 하고 싶다는, 그렇게 도와주지 않으면 안되겠다는 마음이 자꾸만 꿈틀거렸다.
그걸 보면서 그렇게 비어져 나오려는 마음을 꾹꾹 눌러 억제하면서 나를 정리하는 데에는 그로부터 꼭 하루가 걸렸다.
그가 아무리 힘들어도, 그리고 그를 내가 아무리 아껴도 그를 도울 수 없다는 것, 비록 내가 또렷한 답을 알고 있다 하더라도 마찬가지라는 것이 마지막 내 판단이었다.
어느 한사람의 운명에 개입한다는 것이 부질없고 섣부른 일이라는 생각과 함께 더구나 감정의 이입 때문에 팔을 걷어붙이는 일은 잘못된 판단이라는 것을 알았다.
그것은 일을 풀기보다는 오히려 더 꼬이게 만들기 십상이라는 것까지 다시 확인했을 뿐만 아니라, 그동안 그렇게 ‘있는 그대로 보기’를 연습했다고 했는데, 그게 어림도 없었다는 자신의 한계까지 보게 된 것이 그 순간이었으니, 때로 시간이 스승일 수도 있음을 다시 확인한 경험이기도 했다.
이제 다시 마음을 추슬러 겨우 균형을 잡기 시작했다.
그동안 나를 폭풍처럼 흔들었던 몇 가지 일들과 사람들, 결국은 내 유약함이 빚어낸 감정의 흔들림일 뿐이었음을 자각하고 모든 사람들이 그렇게 흔들리며 살아간다는 것이며, 내가 중심과 균형을 세우지 못할 때는 그 흔들리는 사람들이 다가와서 기대거나 안긴다 하더라도 함께 쓰러질 수밖에 없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문제는 상대방의 것이 아니라 내 중심과 균형이 중요한 것이다.
힘든 사람이 나일 때 그만큼 힘든 사람을 만나는데, 그 중 먼저 중심을 잡는 사람이 없이 기대거나 손을 맞잡으면 둘 다 걷잡을 수없이 무너져내리고 만다는 것까지를 배우면서 이번 흔들림에서 다시 나를 되찾는 일이 바로 지금 내 안에서 일어나고 있다.
그리고 이제는 그가 와서 내게 답을 묻는다면 내가 본 것들을 말해 줄 수도 있지 않겠는가 싶은데, 아직 그는 자기 문제를 말하기는 했으나 내게 답을 묻지는 않으니 아직은 말을 할 시점은 아니라는 생각이다.
그저 기다릴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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