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걸리 업계 돕겠다는 대기업
막걸리 업계 돕겠다는 대기업
  • 권혁두 기자
  • 승인 2010.08.02 22:2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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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논단
권혁두 <편집부국장>

시골에서 양조장은 술도가로 불렀다. 양조장 주인은 정미소 주인과 함께 지역을 대표하는 토호로 통했다. 그만큼 술시장에서 막걸리의 위상은 절대적이었다. 농민들은 중노동의 한계와 허기를 막걸리 한잔으로 극복했다. 도시 서민들도 만만한 가격에 김치 한점도 훌륭한 안주가 되는 막걸리 한잔으로 일상의 애환을 풀었다.

막걸리의 인기는 이농현상이 본격화하고 수입 위스키 등 고급술들에 시장을 뺏기기 시작한 80년대 들어와 급속도로 시들기 시작했다. 면 단위마다 한두개씩 들어서 성업을 누리던 양조장은 하나둘 자취를 감추기 시작해 이제는 천연기념물이 될 정도가 됐다.

이 막걸리가 최근 들어 제2의 전성기를 구가하고 있다. 2008년 3000억원 규모였던 시장이 지난해에는 4200억원으로 40%가량 성장했고, 2012년에는 1조원대까지 커질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제2의 막걸리 전성기는 운영난에 허덕이면서도 묵묵히 전통주의 자존심을 지키며 시장을 유지해온 시골 술도가와 군소 막걸리 공장들의 '고군분투'가 가져온 결과다. 지자체들도 와인이나 각종 과실주에는 토속주 개발이라는 미명을 내세워 지원을 아끼지 않았지만 막걸리에는 관심을 두지 않았다.

30여년 만에 부활한 막걸리 시장에 최근 들어 대기업들이 앞다퉈 진출하고 있다. 이미 전국적 유통망으로 지방 제조업체를 유혹해 제휴하거나, 주문자상표부착생산(OEM) 방식으로 납품받아 수출에 나선 기업도 있다. 그러나 막걸리가 창출한 시장은 그동안 막걸리 명맥을 유지해온 지방 술도가와 기술개발로 붐을 일으킨 중소기업들이 나눠야할 몫이지, 대기업이 압맛을 다실 곳은 아니다. 더욱이 대기업은 소주시장 확대와 위스키와 와인의 무차별 수입으로 막걸리 시장을 위축시킨 장본인들이다. 잠식과 공략의 대상이었던 막걸리 시장이 이제는 돈이 된다고 하니까 숟가락부터 들이미는 이들의 몰염치는 할 말을 잃게 한다. 22개 중소업체가 모인 '한국막걸리제조자협회'가 대기업의 시장 진출을 비판하고 나선 것은 당연하다. 사회적 비판을 의식해서인지 말은 번지르르하다. "생산은 중소기업이 맡고 우리는 유통과 기술개발로 지원하겠다"고 하신다. 전국 막걸리공장을 납품업체로 하청화하겠다는 얘기다. 대기업에 고혈을 빨리는 우리나라 하청 중소기업의 비참한 현실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유통과 기술개발로 생산공장을 돕겠다는 선의(?)를 막걸리 업계가 극구 사양하는 이유는 대기업 스스로 잘 알 것이다.

대통령은 지난달 "대기업과 중소기업이 동반 발전할 수 있는 방향으로 기존 산업정책을 원점에서 재검토하라"고 경제부처에 지시했다고 한다. "대기업은 스스로 잘할 수 있는 능력이 있으니 정부가 직접 돕는 것이 아니라 규제 없이 길만 열어주면 되고, 중소기업은 정책을 가지고 도와야 한다"고도 했다고 한다. 대통령은 대기업이 사상 최대 실적잔치를 벌이고 있으나 대기업을 하청한 중소기업의 체감경기는 나아지지 않는 사실이 답답했을 것이고, 하청 중소기업을 옥죄는 대기업의 횡포가 더 이상 방치할 수 없는 수준에 이르렀다는 판단을 내렸기 때문일 것이다.

전경련은 지난달 28일 제주도 하계포럼에서 "정부와 정치권이 중심을 잡아 장차 국가가 어떻게 나아가야 될지 방향을 명확하게 제시해야 한다"며 행정부와 국회를 훈계했다. 중소기업과 서민의 신음, 공기업들의 지리멸렬 속에서 대기업들만이 경제적 과실을 누리는 것이 이 나라가 지향하는 목표가 돼야 하는지 되묻고 싶다. 그러나 중심을 잡고 일하라는 전경련의 충고만큼은 대통령이 받아들여 이참에 노예제에 버금가는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 일방적 관계를 확실하게 개선해 줬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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